▲3일 국회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더 이상 돌려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더불어민주당이 소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수사/기소권 분리를 이렇게까지 밀어붙이는 데는 지난 3월 9일의 대선 패배가 가장 큰 원인이다.
만약 0.73%포인트가 부족했던 이재명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아마도 검찰 수사권 폐지 이야기는 이렇게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정책 과제이자 입법 과제였던 검찰 개혁에는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을 것이고 '숙의'를 통해 완성도 있는 법안을 만들고 검찰 조직을 설득할 기회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일에 만약은 없다. 패배는 패배일 뿐이다. 그런데 때로는 패배의 반복된 경험은 트라우마를 소환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트라우마는 여러 이름들을 거쳤다. 노무현, 한명숙, 조국. 정반대의 의미로는 우병우와 김학의.
익히 알려졌다시피 트라우마는 이성적인 사고와 반대되는 의미의 무질서(disorder)를 수반한다. 정상적인 정당 일정이라면 대선 패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코 앞에 닥친 지방 선거에 전력투구를 해도 시원찮을 텐데 거의 더불어민주당은 20대 대선의 전장 정리가 대강 끝나기 무섭게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입법, 즉 관련법인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는 것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이는 거의 자동반사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국회 역사에 길이 남을 속전속결
뒤따르는 입법 절차들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국회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당론 채택 사흘 만인 4월 15일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전부 삭제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을 대표 발의했고 현직 의원 172명 전원이 모두 공동 발의했다.
국민의힘과 검찰은 즉각 반발했고 김오수 검찰총장은 이틀 뒤인 4월 17일 사표까지 제출했다. 여야 간 극한 대립 속에 4월 22일 박병석 국회의장이 기존 검찰의 직접수사권인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범죄를 전부 삭제했던 박홍근 원내대표 안에서 부패 범죄와 경제 범죄 수사권을 보전하는 안으로 중재안을 제안해 여야 원내대표가 중재안에 합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내부 합의가 실패해 중재안 합의는 곧 파기되었다.
이후 4월 27일 더불어민주당은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단독 의결하고 본회의 상정했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를 진행했지만 회기 쪼개기로 종료되었고 4월 30일 검찰청법은 본회의 가결되었다. 형사소송법은 쪼개진 다음 회기인 5월 3일 오전에 가결되어 그날 오후 검찰청법과 함께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무회의에 안건으로 올라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망설임 없이 두 법안의 공포안을 의결했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대한 제도적 절차는 마무리되었다. 소요된 날만 헤아려보면 한 나라 형사사법제도의 대수술이 불과 20일도 안돼 끝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