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강아지, 비둘기... 운전하다가, 또는 길을 걷다가 그동안 직접 목격했던 차에 치여 죽은 동물들이다. 아니, 아마 더 있었을 것이다. 보고 싶지 않아서,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애써 머릿속에서 지웠을 뿐.
로드킬 현장을 지나치면서 아무것도 보지 않은 척 다시 운전에 집중하지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마저 외면하긴 쉽지 않았다. "저 아이들도 어디선가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을 텐데..."
원혜영이 글과 그림을 그린 <나 여기 있어요>는 인간들이 무심코 지나쳤으나 그들 또한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작은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이다.
함박눈이 세차게 내리는 밤, 소복이 쌓인 눈 위에 쓰러진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기 고양이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몸짓이라고 말하기엔 이미 너무 축 쳐져 있다.
하지만 작가는 '아기 고양이는 기다려요'라는 한마디와 함께 쓸쓸하고 적막했던 회색 눈의 세계를 노란색의 판타지 세상으로 전환한다. 노랑 호롱불을 둔 곰 아저씨의 등장과 함께.
아기 고양이는 곰 아저씨에 품에 안겨 꿈같은 길을 떠난다. 구불구불 고개를 넘고, 울퉁불퉁 들길을 달리고, 사나운 강을 건너고 으스스한 숲을 지날 때도 곰 아저씨는 아기 고양이 곁을 든든하게 지킨다. 곰 아저씨 덕분에 아기 고양이는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놀고 이루고 싶은 꿈을 마음껏 펼친다. 그리고 마침내 보고 싶은 엄마를 만난다.
엄마 고양이를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아기 고양이. 하지만 곰 아저씨가 종을 울리면 새들이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아기 고양이는 엄마와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곰 아저씨와 함께 다시 먼 길을 떠난다.
작은 생명들의 행복을 바라는 따뜻한 판타지
아기 고양이를 끝까지 배웅하던 곰 아저씨가 쓴 모자가 어딘가 낯익다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우리나라 전통 장례식 때 사용되는 상여를 장식하는 나무 조각상인 꼭두가 쓴 모자를 빼닮았다. 그러니까 곰의 존재가 꼭두였던 것. 꼭두는 전통 장례식에서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안내자와 같은 역할을 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불귀의 객'이 된 아기 고양이를 위한 마지막 의식을 치렀던 것이다.
처음 길에 쓰러져 있을 때만 해도 아무 옷도 걸치지 않았던 아기 고양이는 어느새 엄마가 준비해 준 솜바지와 포근한 목도리가 있어 더는 추워 보이지 않는다.
원혜영 작가는 길 위에서 그 어떤 존재보다 더 쓸쓸하게 무지개 다리를 건넜을 동물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전작 <딱 하루만 고양이>로 살면서 한 번쯤은 고양이로 세상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유쾌하게 표현했던 원혜영 작가를 떠올려보면, 어떤 마음으로 아기 고양이가 가는 길을 그렸을지 먹먹해진다.
아름다운 이별을 하는 아기 고양이를 보며 슬며시 미소 짓지만,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독자들은 다시 맨 처음 길 위에 누워있는 아기 고양이를 마주한다. 그리고 고양이 위에 무심하게 쌓이는 눈.
겨우 40쪽짜리 짧은 그림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수많은 사건이 떠올랐다. 입과 코만 흙 밖으로 나오게 한 채 강아지를 생매장한 사건, 길고양이를 무려 600마리나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어 죽인 뒤 건강원에 팔아넘긴 50대 남성, 재미삼아 길고양이의 머리에 사냥용 화살을 쏜 40대 남성...
생명이 생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에서 지금도 발생하고 있는, 형태만 다른 또 다른 '로드킬'이다. 잠깐 귀 기울여 들어보라. 어디선가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는 간절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