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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자료사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자료사진. ⓒ 국회사진취재단

지난해 6월, 해군 해난구조전대(아래 SSU) 훈련을 받던 A하사는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됐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상실감에 괴로워하던 그는 군대 내 병영생활전문상담관(아래 상담관) B씨를 만났다. 하지만 상담과정은 그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겼다. B상담관이 A하사에게 "무지하다", "머릿속에 든 게 없는 상태", "대학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 등 부적절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A하사는 국방통합인권시스템인 '군인권지키미'에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3주여를 기다려 받은 답변은 '(진정) 접수가 어렵다'는 답변이었다. 해군본부 인권과는 군인권업무 훈령을 언급했다. 피진정인이 장병·군무원으로 규정돼 있어 공무직 근로자인 B상담관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군대 내에서 인권침해를 당해도 가해자의 신분에 따라 인권침해를 신고(진정)하지 조차 못하는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후 <오마이뉴스>의 취재가 시작되자 해군은 "처음에는 접수가 어렵다고 했지만, 여러 논의를 거친 결과 인권 침해 재발방지 차원에서라도 훈령의 정의를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라면서 "해군본부 인권(해군인권센터)과 차원에서 조사를 검토 중에 있다"라고 입장을 바꿨다. 

어머니 사망, 상실감 호소하자 돌아온 답변은...
 
A하사 :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좀 (이런 마음이) 해결될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B상담관 : "안돼, 절대로 안 돼. 더 병이 깊어질 뿐이에요. 마지막은 (A 하사는) 죽을 겁니다. 자살할 거예요. 나는 그런 경우 많이 봤어요. 죽습니다."

A하사 : "저는 죽을 생각이 없습니다."

B상담관 : "그건 모르지 그거는 모르죠..(허허허) 죽는다는 게 있잖아요. 죽는 사람이 내가 죽어야지 그렇게 죽는 게 아니라니까.(허허허) 어느 순간에 삶에 회의가 느껴진다든지... 그래서 순식간에 그렇게 돼요."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A하사와 B상담관의 대화 녹취록에 따르면, 지난 2월 18일 두 시간여 이어진 대화에서 B상담관은 A하사에게 반복적으로 "우울증인데 약을 당장 먹지 않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라면서 "이 방을 나가서 죽을 수도 있다"라는 등 상담관으로서 부적절한 말을 했다. 

B상담관은 이어 "(A하사는) 정말 힘든 게 뭔지 아직 다 겪어보지 못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갔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모르는 것"이라며 "멍하니 있거나 운동만 하지 말고 책을 읽어라"고 했다. A하사가 상담관을 찾게 된 결정적 이유인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해서 B상담관은 "부모가 있다 없다를 떠나서 자신을 안 믿는 게 문제"라고 언급했다.

A하사의 어머니는 지난해 6월 26일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휴게실에서 사망한 청소노동자 이아무개씨다. 이씨의 죽음은 지난해 7월 고인의 남편이 기자회견을 열며 세상에 알려졌다. 중간관리자가 이씨를 포함한 청소노동자들에게 '건물 이름을 영어로 쓰시오' 등 업무와 상관없는 시험을 보게 해 모욕감을 줬다는 사실이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A하사도 어머니가 겪은 일은 뉴스를 통해 알게 됐다. 그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25주간의 훈련 중 일정 시간을 채워야 하는 SSU의 훈련 규정 때문에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딱 하루 있었다. 마음이 많이 안 좋았다"라면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도 억울한데 모욕감을 느끼며 일했다는 뉴스가 계속 나와 속상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어 "이런 상황을 상담관에게 다 설명했는데, 상담관은 훈련을 포기한 것만 지적하며 최선을 다 하지 않았다고 질책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했더니 더 살아봐야 한다면서 웃기까지 했다. 어머니의 죽음과 내 상황이 폄하된 거 같아 불쾌했다"라고 토로했다. 

반면, B상담관은 "오히려 피해자는 나"라고 반박했다. 그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전문가의 입장에서 A하사를 설득하기 위해서 다소 거친 표현들을 사용한 것"이라며 "A하사에게 여러 심리검사를 해봤는데 (정신건강이) 정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나 있었다. 보통 한 시간 정도 상담하는데, A하사와 두 시간 넘게 상담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 몰래 (A하사가) 상담 내용을 녹음했다면 내가 인권침해당한 것이다. 상담내용을 왜곡해 자의적으로 판단까지 했으니 내가 피해자다. 화도 나고 착잡한 마음이 든다"라고 덧붙였다. 

피진정인 '장병·군무원'만 가능... 왜?
 
 군인권지키미 홈페이지
군인권지키미 홈페이지 ⓒ 인터넷 갈무리

A하사와 B상담관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인권침해 여부를 가릴 수 있을지 미지수다. A하사가 해군인권센터에서 받은 답변에 의하면 군인권업무훈령(아래 훈령)에 따라 공무직근로자인 B상담관은 피진정인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훈령 제2조는 진정인(피해자)과 피진정인의 정의를 달리하고 있는데, 진정인은 '자신 또는 제3자' 모두 해당하지만 피진정인은 '장병·군무원'으로 한정돼 있다. 

현재 훈령대로라면 군대 내에서 인권침해를 당한 공무직 근로자는 진정인은 될 수 있지만 피진정인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공무직 근로자가 공무직 근로자에게 인권침해를 당할 경우 국방통합인권시스템인 '군인권지키미'를 통해 진정을 제기할 수는 있어도 사실상 접수조차 되지 않는 구조인 셈이다. 

하지만 국방부를 비롯해 군대 내에는 장병·군무원 외에도 다양한 공무직 근로자가 존재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방부·산하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직 근로자가 1만여 명에 달한다. 업무 역시 상담관을 비롯해 시설관리, 전투훈련지원 등 다양하다. 

군 관계자 역시 훈령의 미비점을 일부 인정하며 "해당 훈령에 다소 문제가 있는 게 맞다. 군대 내에 다양한 업무가 있는 만큼 누구나 언제든 피진정인으로 지목받을 수 있다. 훈령이 미처 이 부분까지는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추후 훈령 개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군대 내 인권침해를 보다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해결하겠다며 군인권시스템 등이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훈령에 근거해 피진정인이 (장병·군무원으로) 한정되면 사실상 이 제도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라면서 "군대 내 인권침해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고 마련한 제도·훈령인 만큼 피진정인과 관련한 부분은 당장 개선돼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한편, 해군 관계자는 "해군에서 상담관과 관련해 인권침해, 진정이 처음 있는 일이라 초기 대응에서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 피진정인 정의 등을 포함한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훈령에 언급된 피진정인을 폭넓게 해석하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라면서 "진정 접수 후 해당 사안에 대해 사실 관계를 확인 중에 있으며, 병영생활상담관의 부적절한 언행이 확인될 경우 법과 규정에 의거 엄중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서울대 청소노동자#해군#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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