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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순창군 동계면 귀주마을 양호규(59) 이장
전북 순창군 동계면 귀주마을 양호규(59) 이장 ⓒ 최육상


"10년 전에는 제가 이장을 맡기에 좀 이르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쭉 살았으면 모르는데 객지 생활하다가 2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마을 동향 같은 것도 파악해야 돼서 흔쾌히 수락을 못했어요. 한 10년 쯤 지나니까 어르신들이 '이제 젊은 사람이 한 번 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하도 말씀들을 하셔서 올해 처음 이장을 맡았어요."

'3개월 차 새내기' 이장

전북 순창군 동계면 귀주마을 양호규(59) 이장은 '3개월 차 새내기 이장'이다. 그는 10년 간 마을을 두루 살핀 뒤에야 이장을 맡게 된 소감을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이장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감투가 아니다"며 "마을 구석구석을, 주민 한 분 한 분을 제대로 알아야 마을의 화합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화를 지켜보던 한 주민은 양 이장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장님이 나이는 좀 어리지만 성실하고 어른들 공경 잘하고 경우가 밝아요. 이장님 농막이 마을 길목에 있어요. 주민들이 오가며 농막에서 쉬고 커피 대접도 받고 그러죠. 솔직히, 이장님이 10년을 기다려 이장을 맡았잖아요. 하물며 정치하는 사람이 경력과 능력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국가를 책임지겠다고 막무가내로 나서는지 모르겠어요."

봄이 왔음을 알리듯 따사로운 햇살이 섬진강 물줄기를 내리치며 유난히 반짝거렸다. 햇살의 눈부심이나 물결의 반짝임보다 더 빛난 건 대화 내내 양 이장이 내어 보인 사람 좋은 미소와 투박한 웃음소리였다.

지난 3일 오후 1시 30분 무렵,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일터에서 만난 양 이장은 속된 말로 '서울 물 좀 먹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군대 제대하고 스물네 살에 상경해서 마흔아홉에 돌아왔어요. 25년 동안 서울에서 일했죠. 이제 쉰아홉이니까 고향에 온 지 한 10년 됐어요."

'쉰아홉이면 청년이네요?'라고 묻자, 그는 "청년 맞죠, 하하하" 쑥스러운 듯 웃었다.

'남원양씨' 집성촌, '귀미리' 이름 찾아야

"귀미 마을이 상당히 큰 마을이에요. 저희 클 때만 해도 가구 수가 300호 정도 됐어요. 귀미마을에만 별도로 초등학교 하나가 있을 정도로 컸어요. 지금은 젊은 사람들은 다 떠나고 쭉 살아오시던 저희 어머니아버지 세대, 그분들이 주로 계시죠."

귀주마을은 현재 한 70세대 정도고, 독거노인 분들이 많으셔서 주민은 80명~90명가량이라고 한다. 여느 농촌 시골마을처럼 귀주마을 역시 인구소멸에 따른 생존을 고민하고 있다.
  
 ‘구미리’로 돼 있는 마을 안내 표지판. 양호규 이장은 “우리 마을은 ‘남원양씨’ 집성촌이고, 마을 이름도 ‘구미리’가 아닌 ‘귀미리’가 맞다”고 말했다.
‘구미리’로 돼 있는 마을 안내 표지판. 양호규 이장은 “우리 마을은 ‘남원양씨’ 집성촌이고, 마을 이름도 ‘구미리’가 아닌 ‘귀미리’가 맞다”고 말했다. ⓒ 최육상
 
양 이장은 마을 이름과 관련해서 의외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금 행정구역명칭(법정리)으로는 우리 마을이 '구미리'로 되어 있어요. 옛날 어르신들과 딴 동네 분들은 그냥 '귀미리'라고 불렀어요. '귀미리'가 맞아요. 그런데 우리 귀주마을과 용동마을이 속해 있는 귀미리를 '거북 구'자 이것만 계산해서 언젠가부터 '구미리'로 부르고 있어요. 저희가 옛날 명칭을 찾자고 일단 마을 입구에 세운 표지석부터 '귀미리'라고 바꿨어요."

시골 농촌에서 마을 이름은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다. 마을의 역사와 정체성이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양 이장은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다소 높였다.

"저희 동네가 원래 '남원양씨' 집성촌이에요. 지금도 종가와 종손이 이곳에 살거든요. 마을이 한 650년 정도 됐다고 얘기를 하는데, 마을 이름이라도 통일시켜야죠."

"객지 생활, 체질에 안 맞더라고요"

그는 정읍이 고향인 아내와 서울에서 사내 커플로 만나 결혼했다. 자녀 셋은 모두 성인이 돼 객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내와 어떻게 순창으로 내려오게 된 걸까? 양 이장은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내를 채 가지고 순창으로 왔죠. 하하하. 저 같은 경우는 향수병 같은 거 있잖아요. 객지 생활이 체질에 안 맞더라고요. 답답하고 차 막히고. 그래서 서른 되기 전에 고향에 내려온다고 아내를 만났는데, 먹고 살아야 되니까 결혼하고 애들이 어느 정도 컸을 때 내려온 거죠. 아이 엄마 고향도 이쪽이어서 흔쾌히 같이 왔어요."

양 이장은 마을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도시에서의 삶과 시골 농촌에서의 삶은 어떻게 다를까. 양 이장 부부와 자녀 셋, 5인 가족을 기준으로 도시와 시골의 살림살이를 물었다. 양 이장은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순창의 삶에 정말 만족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순창이 낫다고 봐요. 수입 금액으로도 안 떨어져요. 저는 농사짓는 양이 많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생활하는 건 도시보다 나아요. 솔직히 돈을 떠나서 마음이 훨씬 편해요.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고, 하하하. 도시 생활은 맞춰진 시간에 출근해서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고 1년 365일이 똑같잖아요. 여기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고 아내도 만족하고요."
 
"공주밤? '순창 동계밤'이 최고!"


순창 동계밤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양 이장은 '공주밤'에 빗대 '동계밤'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드러냈다.

"순창은 옛날부터 (주변을 가리키며) 보시다시피 나무들도 관리 안 하고 그냥 키워서 수확하기 바빴잖아요. 객관적으로 공주는 수도권도 가깝고. 밤 재배를 늦게 시작해서 접목 같은 것도 체계적으로 하고 수확하기 쉽게 키우고 해서 인지도가 객관적으로 보면 공주밤이 낫다고 하는데, 저희 입장에서는 우리 '순창 동계밤'이 최고죠. 하하하."

3개월 차 새내기 이장은 대화 내내 유쾌했다. 올해부터 이장 임기는 2년에서 3년으로 늘었다. 이장으로서 포부를 물었다.

"배워가는 단계니까 특별히 어려운 건 없어요. 일단 마을 주민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마을에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계세요. 면사무소가 가깝지만 행정에 필요한 서류를 챙기거나 오가실 때 불편하신 게 많으세요. 70대, 80대, 90대 어르신들이 편하게 지내시고 서로가 화목하게 해 드리고 싶어요. 주민들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장이 되고 싶어요."

관광객들의 무분별한 행태 지적
  
귀주마을은 용동마을과 함께 봄가을이면 밀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 귀주마을을 지나쳐야 나오는 장군목길은 대형관광버스가 진입할 수 없다. 주변 도로는 용궐산과 장군목을 찾는 관광버스 행렬로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양 이장은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가장 높였다.

"열심히 농사짓고 있는데, 아무 곳에나 주차하고 아무렇게나 음주가무 하는 모습은 꼴 보기 싫을 때도 있죠. 또 길가에 밤, 두릅, 매실 같은 유실수들은 사유재산인데 관광객들이 그냥 막 가져가 버리세요. 농사짓는 사람들 생각해서 유실수에는 손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양 이장은 섬진강 변에 매실 밭 등을 지킬 목적으로 농막을 지었다. 농막에서는 시베리안 허스키와 사모예드 수컷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면서 일행을 반겼다.

푸른 하늘과 사방으로 불쑥불쑥 솟아있는 산들 그리고 그 가운데를 유유히 가로지르는 섬진강까지, 양 이장의 일터는 자연이었다. 그는 "고향 순창에서 사는 게 정말 행복하다"며 진심으로 웃음 지었다.

농막에서 내려다본 섬진강 물줄기는 양 이장의 웃음소리를 싣고서 드넓은 바다를 향해 쉼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양호규 이장의 농막을 지키는 시베리안 허스키와 사모예드.
양호규 이장의 농막을 지키는 시베리안 허스키와 사모예드. ⓒ 최육상

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3월 16일자에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양호규#전북 순창#동계 귀주마을#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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