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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입주자 대표를 선발한단다. 두 명의 후보자 얼굴의 사진과 그동안의 공적, 그리고 공약이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붙었다. 휴대폰에 전자 투표를 해달라는 문자가 울려, 두 후보의 공약을 보았다. 한 후보의 공적 사항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경비원과 환경미화원 임금 삭감으로 관리비 절감.'

엥? 저게 내세울 공적이라고? 자본주의에서 돈은 남의 주머니를 가볍게 만들어, 내 주머니를 부풀리는 게 아닌가. 누군가의 희생을 발판 삼아 만들어진 일이, 공적이 돼 버린 세상. 이렇게 된 지 오래지만, 입이 썼다.

두 후보 모두 비슷한 공적을 안 내세운 게 다행이다 싶었다. 도긴개긴이겠지만 차선을 선택할 수 있었다.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대표자 선발 전자 투표를 마친 뒤 씁쓸했다.
 
 아파트 등에 근무하는 경비원이 경비 업무 외에 수행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는 내용 등을 담은 새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이 시행된 21일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에 경비업무 도우미 수첩이 걸려있다.
아파트 등에 근무하는 경비원이 경비 업무 외에 수행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는 내용 등을 담은 새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이 시행된 21일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에 경비업무 도우미 수첩이 걸려있다. ⓒ 연합뉴스
 
책장에 꽂혀 있던 '임계장(임시계약직노인장)이야기' 책이 떠올랐다. 임계장 이야기는 지방 소도시에 살며 공기업 사무직으로 38년간 일했던 조정진씨가 퇴직 후 아파트 경비원, 빌딩 청소부 등을 하며 쓴 노동 일지다.

아파트 관리하시는 경비원과 미화원은 딱 봐도 60대 이상이다. 경비원은 아파트를 수시로 순찰하며 주차 단속을 한다. 재활용 분리수거, 음식물 쓰레기통 청소 등 궂은 일은 그들의 몫이다.

미화원은 수레를 끌고 다니며 1400여 세대의 쓰레기를 치운다. 몇 달 전에는 끌개를 가지고 아파트 출입구 타일 틈 청소까지 했더랬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상부의 지시일 테니 그들도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일 테다.

정년퇴직 후 남은 건 몸뚱이밖에 없다. 생의 최선을 다하느라 이 몸뚱이마저 관절은 닳았고 체력은 달린다. 정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변변찮은 직장조차 구할 수 없다. 언제 일이 잘리지 모르는 계약직에, 최저임금으로 채워지는 월급에 그저 감사해야할 따름이다.

임계장 이야기를 읽고 나는 수시로 신랑에게 '60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계장의 일상은 이미 내 부모의, 내 이웃에서 일어나는 삶이며, 그 삶이 내 일상이 될지 안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파트 입구에는 전구 눈사람이 반겼고, 나무는 전구를 칭칭 감았다. 어둠이 내리면 빨갛고 노란 전구가 나무마다 요란스럽게 반짝인다. 아이들은 그 모습에 "나무가 반짝인다"며 즐거워했다. 난 반갑지 않았다. 혼자 중얼댔다.

"쏟아지는 빛 공해에 나무는 못 쉬겠구나. 저 전기는 그냥 만들어지나? 저게 다 전력낭비 아냐?"

내가 입주자 대표 후보자라면, 이렇게 공적을 쓰고 싶다.

'허투로 낭비되는 전기요금을 아껴 경비원과 미화원 임금 인상을 시켰음.'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중복 게시 됩니다.


#공적#입주자대표#임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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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시골기자이자 두 아이 엄마. 막연히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시간이 쌓여 글짓는 사람이 됐다. '엄마'가 아닌 '김예린' 이름 석자로 숨쉬기 위해, 아이들이 잠들 때 짬짬이 글을 짓고, 쌓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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