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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수 판화가의 '무문관 연작'
이철수 판화가의 '무문관 연작' ⓒ 이철수
 
무문관(無門關). 문이 없는 문이라는 뜻이다. 중국 송나라 때의 승려 무문혜개(無門慧開)가 선 수행의 규칙으로 삼아야 할 48가지 공안을 고르고 해설과 송(頌)을 덧붙인 책이다.

<문인가 하였더니, 다시 길>. 판화가 이철수 화백이 800년 전의 화두에 응답하면서 나무판에 새긴 글이다. 이 화백은 무문혜개가 던진 화두를 화폭에 풀었다. 또 스승과 대거리를 하듯이 화두를 현실에 맞게 재해석했다. 때로는 판화를 보는 제3자를 화폭 속으로 끌어들여 직접 화두를 풀어보라고 말을 건네기도 한다.   

영적 세계와 예술혼이 어우러진 작품을 선보였던 이 화백. 그가 데뷔 40주년을 맞아 '무문관'을 주제로 한 연작 판화 전시회를 연다. 2011년에 <나무에 새긴 마음-이철수 목판화 30년>, 그 뒤 권정생의 <몽실언니>와 <점득이네>에 헌정의 의미를 담아 삽화를 새기고, 2015년에 <대종경 연작- 네가 그 봄꽃 소식해라> 판화를 새겨 발표한 데 이은 전시회이다.

오늘(17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제2전시장, 12월 7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광주광역시 서구 운천로의 무각사 로터스갤러리에 가면 800년 전 번득이는 질문과 마주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절박함이 묻어나는 물음들이다.
 
 이철수 화백의 작품 ‘그 저녁 일월곤륜도’
이철수 화백의 작품 ‘그 저녁 일월곤륜도’ ⓒ 이철수
 
 이철수 화백의 작품 '흔들릴 것들 다...'
이철수 화백의 작품 '흔들릴 것들 다...' ⓒ 이철수
 
이번에 전시될 작품은 무문관 연작 51점과 관련 작품 4점, 2011년 이후 신작 43점 등 총 98점이다. 최근 충북 제천 자택에서 만난 이 화백은 "800년 전의 화두를 뜬구름 잡는 소리, 선문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장구한 세월이 지나도 살아남은 이유가 있다"면서 "물질의 위력이 정신을 압도하는 시대를 건널 수 있는 지혜의 언어들"이라고 소개했다.  

이 화백은 전시회 초청장에도 이렇게 적었다. 

"벼랑 끝을 걷는 듯 위태로운 경쟁사회, 현실의 거친 물결을 건너갈 수 있을까요? 지난 10년은 그 고민을 화두로 삼고 살았습니다. 이번 전시는 온통 그 이야기들입니다."

그가 이번에 선보이는 무문관 연작의 제작 기간만 해도 족히 10년이 넘은듯했다. 이 화백은 "오래전부터 머리맡에 두고 본 책이 무문관이었고, 책을 읽으면서 틈틈이 800년 전의 화두와 선문답을 서로 주고받으며 메모를 해왔다"면서 "이 공안집을 읽으면서 이철수만의 독법으로 10년 전에 초고를 새겼다"고 말했다. 그 뒤 10년 만에 나온 작품이다. 

[문이 없는 문] 문을 박차고 세상의 낮은 곳으로 나가라
 
 이철수 판화가의 '무문관 연작' 중 후서
이철수 판화가의 '무문관 연작' 중 후서 ⓒ 이철수
 
이 화백에게 '문인가 하였더니, 다시 길'이 무슨 뜻인지 물었다. 그는 무문관의 제일 뒷장인 후서를 새긴 판화를 보여주었다. 문처럼 보이는 두 개의 낙락장송 사이에서 세 사람이 서성이듯 지나가는 모습이 담긴 그림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었다.
 
문인가 하였더니, 다시 길
무문대로에 번지 없는 문이라더니
개도 시끄럽고 문지기도 사납다

진공묘유를 이렇게 어지럽히다니...
쓸고 난 뜰에 다시 쏟아지는 낙엽처럼
쉬지 않는 혓바닥들에게 부탁하노니
보살행·두타행 다 그만두고
없는 문 활짝 열고 낮은데로 낮은데로...

이 화백은 무문관을 뜻하는 '문이 없는 문'을 위와 같이 읽고 해석했다고 했다. 무문관을 통과했다고 해도 다시 길, 머뭇거린다해도 그곳도 길이라는 것이다. 번지 없는 문이라고 해서 들어와보니 개는 시끄럽고 문지기도 무섭다는 형용모순의 상황을 그렸다고 했다. 즉, 하나를 해결해도 그 뒤에도 관문이 쉼 없이 이어지는 마음의 풍경을 '무문관'으로 풀이한 듯했다.

그 다음 문장부터는 이 화두에 대한 이 화백만의 해석이다. '진공묘유(眞空妙有)'. 이는 불가 용어인데, 없어야 할 자리에 묘하게 있다는 말이다. 사실 진공은 공한 세계나 경계를 표현하는 말인데 우리 눈앞에는 현실처럼 묘하게 드러나 있지만 진공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무문관 한권을 가지고 이를 어지럽혔다는 반어적 표현이 4행이다.

쓸고 난 뜰에 쏟아지는 낙엽은 무슨 일을 마친 뒤에도 계속 쌓이는 마음의 풍경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 화백은 잘난 체 하거나 감언이설로 세상 속이는 모든 '입'들에게 부탁한다. 보살행과 계율만을 잘 지키며 사는 두타행은 당연한 일이기에 그냥 두고 문을 활짝 열고 세상으로 나가라! 그는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현재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등을 맡으면서 환경과 생명 평화운동에 직접 나서고 있다. 그 이유가 무문관을 박차고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깨달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무문관을 판화에 새긴 것조차 무문관을 깨고 나오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판화에 새긴 후서에서 그의 행동이 읽혔다.

[남전이 고양이를 죽였다] 800년 전 동당·서당 분쟁에서 남북 관계를 읽다
 
 이철수 화백 작품(남전이 고양이를 베다)
이철수 화백 작품(남전이 고양이를 베다) ⓒ 이철수
 
'불살생(不殺生)'은 불교의 대표적 계율이다. 하지만 '남전참묘'라는 공안에는 살생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려는 내용이 담겼다. 위의 화폭에서 칼을 든 사람은 남전 화상이다. 동당과 서당의 학인들이 고양이를 서로 자기의 것이라고 다투자 남전 화상은 그동안 배운 것 중 "한 마디라도 일러보아라"라고 말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고양이 목을 벨 것이라고 다그친다. 

결국 고양이는 죽었다. 저녁에 돌아온 조주 화상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니 짚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나가버렸다. 이를 본 남전 화상은 "네가 거기에 있었다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다"고 한탄한다. 무문혜개는 이 공안에 대해 "조주 화상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남전의 칼을 빼앗아서 남전이 목숨을 살려달라고 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 화백은 "모든 화두에 장학퀴즈처럼 정답은 있다고 여기는 것조차 편견"이라면서 "나는 이 화두를 들고 피를 흘리는 살생을 저질렀고 지금도 대립하고 있는 남과 북을 떠올리며 우리가 이렇게 다툰다면 고양이는 죽고 말 것이다, 남전의 외침처럼 이 화폭을 보는 관객들에게 다그치듯 '한 마디 일러보라'고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800년 전의 화두에 대한 답을 우리 시대에서 찾아야 한다"면서 "남북 화해를 이루기 위해 지금도 번뇌하는 사람들에게 저 질문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절박하게 살아있는 질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이 화백은 조주가 암자를 찾아다니며 암자의 주인을 감파하는 공안에서 건물주와 집주인을 등장시키고 비싼 집세 문제를 이야기(조주가 암자를 감파하다)한다. '동산의 방망이 60대'에서는 마음마저도 상품이 된 현재의 세태를 꼬집는다. 

이 화백은 "선승이 자기를 '주인공아'라고 부른 뒤에 '예'라고 대답하고,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말한 뒤 '예'하고 대답한다는 내용의 '서암언' 공안을 접했을 때 무릎을 치며 경이롭다는 생각까지 했다"면서 "삶 속에서 나를 호명하는 모든 순간에 나 자신을 돌아보고, 언제나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는 듯이 산다면 모든 곳이 도량이고 수행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철수 화백의 작품(서암이 주인공을 부르다)
이철수 화백의 작품(서암이 주인공을 부르다) ⓒ 이철수
 
 이철수 화백의 작품(조주가 암자를 감파하다)
이철수 화백의 작품(조주가 암자를 감파하다) ⓒ 이철수
 
[왜 다시 마음인가] 내 마음 외면하면 어디서 현실 건널 힘을 구하나

이 화백은 이번 전시회를 열면서 '문인가 하였더니, 다시 길'(문학동네 출판)이라는 제목의 책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도 무문관 연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려운 현실을 사느라 마음에 상처가 많아진 우리에게 '마음고요'가 솔깃한 것 당연합니다. 하지만, 검불처럼 바람에 앞서 내달리는 마음은 길들이기 어렵습니다. 내 마음인데 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속수무책입니다. 존재의 실상을 참구하는 공부가 마음에 질적 변화를 가져다주기를 기대합니다. <무문관>은 그 길에 만나게 되는 명품 공안집입니다. 그걸 제 목소리가 담긴 연작판화로 새겼습니다.

왜 다시 마음이냐고 묻습니다. '미술의 역할'이, 급하게 흐르는 강 같은 현실을 건너는 '다리'는 못되어도, 작은 조각배는 되었으면...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외면하고 어디서 현실을 건널 힘을 찾나요?"

 
 이철수 화백의 작품 '에고'
이철수 화백의 작품 '에고' ⓒ 이철수
 
이 화백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기독교 성서로 연작을 하면서 다른 눈으로 기독교적 지혜와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간 선불교에서 지혜를 구했던 이 화백이 기독교로 관심을 튼 것일까? 그는 "불교와 기독교의 껍데기를 존중할 필요가 없고 나는 지혜의 알맹이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정신적으로 어려워진 시대에 쉬운 해답을 찾는 것 지혜롭지 못하다"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때로는 어렵게 더듬어가야 어두운 험로를 뚫어갈 수 있어요. 달콤한 말에 너무 쉽게 속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고민 해결을 남이 대신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고삐를 단단히 쥐는 시기라고 생각하면서 무문관을 새겼습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어려운 시기를 건너는 방법을 함께 이야기하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무문관 연작' 전시회 여는 판화가 이철수 화백
'무문관 연작' 전시회 여는 판화가 이철수 화백 ⓒ 김병기
 
 

#이철수#판화전시회#무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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