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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에 따라 지인들과 정치 현안을 토론할 기회가 많아졌다. 제 1‧2당 대선 후보가 확정됐기 때문에 아무래도 대통령 선거가 주를 이룬다. 지지성향에 따라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큰 부분에서는 일치한다. "뭔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이대로는 안 된다"로 집약할 수 있다. '변화'를 바라는 민심은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모든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여론은 압도적 우위에 있다. '야당으로 정권 교체'는 '정권 재창출'을 바라는 여론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다. 기득권에 반발하는 변화 요구는 선거 때마다 있어온 일이다. 그럼에도 20대 대선에서 나타난 높은 정권교체 여론은 메시지가 분명하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응답이 높다는 건 현 정부에 대한 실망을 반영한다. 민심이란 게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현안 때문에 돌아서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누적된 결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 국민들은 지난 4년 반 문재인 정부를 지켜본 결과 더는 용인할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여당 입장에서는 이제라도 원인을 살펴 바로잡는 게 마땅한데 오히려 자책골만 재촉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민심과 동 떨어진 방향으로 관성을 강화하는 퇴행적 움직임이 그렇다. 강행하려다 중단한 '언론중재법'은 대표적이고,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도 마찬가지다. 둘 다 의석수를 앞세운 무리수라는 점에서 자책골로 귀결될 게 분명해 보인다.

재난지원금 추가 지원만 해도 국민들이 여당 정치인보다 훨씬 성숙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TBS 의뢰로 조사한 지난 5일~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9명에게 조사한 결과 60.1%는 '재정에 부담을 준다'며 추가 지급을 반대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내수 진작을 위해 필요하다'는 32.8%에 불과해 찬성과 반대는 두 배 가까운 격차를 보였다. 국민들은 싫다는데 민주당은 주겠다는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10명 가운데 6명이 반대한 것도 그렇지만 20대와 자영업자 반대는 특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20대는 68%, 또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으로 실질적 수혜를 입게 될 자영업자도 62.8%나 반대했다. 20대 청년과 자영업자조차 반대한다는 건 민주당이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과 관련 번지수를 잘 못 짚었다는 이야기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을 위해서라고 강변하는데 그들이 위한다는 국민은 누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느닷없는 추가 재난지원금 이슈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 입에서 시작됐다. 그는 후보 확정 이후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을 거론했다. 정권교체 불만 여론을 낮추고, 또 후보 확정 뒤에도 오르지 않는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야당은 국민들 마음을 돈으로 사겠다는 선심성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돈 몇 푼 쥐어주면 국민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발상도 못마땅하지만 침묵하는 여당의 일사불란함도 매한가지다. 170명 넘는 의원 가운데 추가 지급의 불합리함을 주장하는 의원이 한 명도 없는 게 민주당 현주소다.

민주당은 지난해도 13세 이상 통신비 2만원 지원을 놓고도 한바탕 논란을 촉발했다. 당시도 국민 58%는 통신비 지원에 반대했다. 돈 한 푼이 아쉬운 노인층조차 반대 여론은 높았다. 논의 과정에서 지원 대상을 16~34세, 65세 이상으로 축소했지만 갈등만 촉발하는 데 그친 실책이었다. 앞선 실패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추가 재난지원금 지급을 강행하다보니 민주당은 자가당착에 빠졌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추가 재난지원금은 "고통 감내에 대한 지원금도, 소비 진작을 지원금도 아닌 방역물품 지원금"이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국민들은 '방역지원금'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다.

재원을 놓고도 무리수를 계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올해 세수 초과분으로 지급하겠다고 했다가 어렵다고 판단되자 납부 유예를 꺼내들었다. 세금 납부시기를 내년으로 연기해 2022년 예산으로 잡아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초법적 발상이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초과 세수가 발생할 경우 교육재정부담금과 지방교부세, 국가채무 상환에 의무 사용토록하고 있다. 또 국세징수법은 세금 납부 유예 사유를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납세자가 재난 또는 도난으로 재산에 심한 손실을 입은 경우, 또 사업에 현저한 손실이 발생한 경우'다. 홍남기 부총리도 민주당이 추진하는 방역지원금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 "법적으로 어렵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국민들은 받지 않겠다는데, 국가재정법과 국세징수법 등 현행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추가 지급을 밀어붙이고 있다. 통신비 2만원이나 재난지원금 20~25만원으로 여론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1차원적이다. 지금 민주당에게 필요한 건 통렬한 반성의 토대 위에서 공감대를 넓히려는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다. 출범 초기 80% 넘었던 지지율이 30%대로 주저앉은 원인을 헤아리는 게 급선무다. 나아가 겸손하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노력이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보다 훨씬 효용적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념이 아니라 실용을 바탕으로 국가경영 판을 새롭게 짜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게 중요하건만 엉뚱한 다리를 긁고 있다.

엊그제 만난 지인은 자신은 민주당을 지지해왔지만 정권교체는 찬성한다고 했다. 그는 "잘못하면 누구든지 바뀔 수 있다는 신호가 필요하다"고 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악으로 규정한 채 어떤 일이 있어도 정권교체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앞선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60% 국민은 민주당은 선, 국민의힘은 악이라는 이분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여론은 누가 국민들 뜻에 부합하는 정책을 펼치느냐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국민들이 집권 초기에 80%대 지지율을 보낸 것도 그 때문이고, 최근 60%에 달하는 정권교체 여론도 이 때문이다. 현상을 제대로 헤아려야 정권 재창출에 가까이 갈 수 있을 터인데 자꾸만 헛발질하니 안타깝다.

#정권교체 여론 우위#재난지원금 추가 지급#방역지원금#선과 악 이분법#선심성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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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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