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왼쪽), 홍준표 대선 경선 예비후보가 28일 서울 상암동 MBC에서 열린 대선 경선 예비 후보자 4차 방송토론회에서 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2021.9.28
국회사진취재단
강력부 검사 홍준표
공안부 검사와 특수부 검사의 위상이 지난 30여 년간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은 데 비해, 강력부 검사들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덜 받은 편에 속한다. 1990년 10월 13일 노태우 정부가 선포한 '범죄와의 전쟁'이 강력부 검사들의 일거리를 늘려주기는 했지만, 이 분야 검사들의 위상은 정치적 영향을 덜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수부 검사보다는 강력부 검사로 더 많이 알려진 홍준표 검사가 정치적 두각을 보이게 된 데는 외부적 영향에 더해 개인적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고 국가정보원 직원들을 체포한 2013년의 윤석열 검사 같은 대형 사고를 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용납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독단 행동을 많이 했고 이것이 그가 세상의 주목을 받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소신이 있으면 두려움이 없다>에서 회고한 바와 같이, 1985년 1월 청주지방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홍준표가 처음 수사한 사건도 그런 류의 사건이었다. 이때 그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괴산군청 재무과장이 개입된 국유지 불법불하 사건을 고집스럽게 수사해나갔다.
괴산군청은 물론이고 충북도청에서까지 수사를 견제하고 현지 국회의원까지 재무과장을 비호하는 속에서도 그는 재무과장을 끝내 구속했다. 뒤이어 이 사건은 감사원 특별감사로 이어졌다. 그는 이런 식으로 조직폭력배들은 물론이고 권력층으로까지 수사 범위를 넓혀 1995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델이 되고 폭발적인 국민적 관심을 받으며 정치권에 진입했다.
홍준표의 행보는 1987년 이후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 권력층의 이해관계에 부응하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1990년에 '범죄와의 전쟁'과 '공안정국'이 함께 조성된 것은 사회질서를 다잡기 위한 보수 정권의 의도를 반영했다. 권력층 내에 그런 위기감이 있었기에, '법대로 집행'한다는 홍준표의 단독 행동이 용인된 측면도 없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 특성과 더불어 그런 시대적 상황이 지금의 홍준표를 만드는 데 기여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성공한 검사, 실패한 검찰
검사 출신들인 세 명의 국민의힘 대권주자들은 지지율 여하에 관계없이 적어도 검사 출신으로서는 성공한 사람들에 속한다. 검사 출신들이 유력 후보군을 형성하는 것은 군부독재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그 후에도 어느 정도는 그랬다. '검사들의 호황기'를 대선 국면에서 열고 있다는 점에서, 세 주자는 검사 출신으로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을 상쇄하는 요인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들이 몸담은 검찰 조직이 국민의 신뢰를 잃어 지금은 현저히 약해져 있다는 점이다. 검찰이 기존에 갖고 있던 권한의 상당 부분을 경찰과 공수처에 내준 뒤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검찰권을 대거 박탈한 것은 검찰이 과도한 권한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검찰이 그것을 올바로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 조직에 힘입어 지금의 지위에 도달한 대선주자들은 대선 승리에 대한 목표 의식 못지않게 조직의 과오에 대한 죄의식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들의 성공을 도운 검찰 조직이 국민들에게 죄를 지어 크게 위축돼 있으므로, 참회하는 마음으로 표를 호소하는 게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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