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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통령선거(3.9)와 지방선거(6.1)가 멀지 않았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벌써 몇 년째 세계 꼴찌다. 급기야 지난해엔 처음으로 인구가 줄었다. 최근 연구는 가파른 인구 감소(저출산)가 수도권으로의 지나친 인구 집중 탓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수도권으로 몰리는 발길을 돌려세우지 못하면 인구 감소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큰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도 로컬(수도권 밖 지역) 의제는 여전히 뒷전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다시 로컬로 향하게 할까.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로컬 연구자들을 만나 의견을 물었다. 4회에 걸쳐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기자말]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우리나라 인구는 5182만 9023명으로 1년 사이 2만 838명(0.04%)이 줄었다. 주민등록인구가 줄어든 건 처음이다. 출산율이 줄어든 탓이 큰데, 2017년 40만 명 밑으로 떨어진 출산율은 3년 만에 다시 30만 명 밑(27만 5815명)으로 떨어졌다. 1년 사이 무려 10%가 줄었다.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전북, 전남, 경북, 경남 등 대부분의 광역 지자체에서도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앞질렀다. 게다가 유출 인구도 유입 인구보다 많았다. 로컬(수도권 밖 지역) 인구가 수도권보다 빠르게 줄고 있다는 뜻이다. 로컬을 떠나는 이들의 대부분이 20~30대 청년들이란 것도 심각한 문제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인구소멸 위험지역'으로 꼽힌 곳은 절반에 달하는 105곳. 이 가운데 92.4%인 97개 시·군·구가 로컬에 자리하고 있다. '인구소멸 위험지역'이란, 65살 이상 인구가 20~39살(가임) 여성의 수보다 2배 이상 많은 곳을 가리킨다.

한때 일자리를 찾아 많은 이들이 몰려들던 산업도시와 신도시들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인구가 줄고 있다. 가령, 경북은 1년 사이 23개 시·군 가운데 21곳에서 인구가 줄었는데, 포항·구미 등 전통 산업도시들도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흐름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골목상권과 도시를 되살리려면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맞먹는 사회적 커뮤니티 운동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골목길 경제학자로 유명한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절박했다. 1960년대부터 국가산업을 키우려고 중앙 집중 정책을 추진해온 오랜 관성을 되돌리려면 그에 못지않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모종린 교수는 얼마 전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란 책을 펴냈다. <골목길 자본론>(2017년)과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2020년)에 이은 '로컬 연구서 3부작'의 완결판으로 이른바 '로컬 크리에이터'라 불리는 혁신 창업가들을 위한 안내서다.

그보다 먼저 <작은 도시 큰 기업>(2014), <라이프스타일 도시>(2016) 같은 책들도 썼다. 그러니까 그는 벌써 10년 가까이 작은 도시와 골목상권이 가진 잠재력에 주목하며 로컬을 되살릴 대안과 이론을 제시해온 우리나라 대표 로컬 연구자다.

모 교수는 "지역이 고유의 지역산업을 개발함으로써 지역 안에서 선순환하는 생활권 경제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정부 정책의 근본 전환을 촉구했다. 그는 정부가 먼저 "지금의 로컬 트렌드가 지역 발전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미래 산업 경쟁력을 새롭게 발굴하고 높이기 위해서라도 소상공인 정책을 취약계층 보호책이 아닌 산업 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연구실에서 만나 나눈 대화를 옮겼다.

(*'지방'이란 말에는 변두리란 뜻이 담겨 있다. 사전에도 '서울 이외의 지역'이란 설명이 붙는다. 그래서 일부러 '로컬(local)'이란 말을 쓰기로 했다. 편견을 덜어내고 서울과 별다를 것 없는, 우리나라를 이루는 똑같은 지역 가운데 하나로 읽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골목상권이 성장할 수 있으려면 정부 정책의 근본적 전환도 필요"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 윤찬영
 
- 처음 <작은 도시 큰 기업>이란 책을 낸 게 2014년이었으니 벌써 7년이 됐다. 그 사이 어떤 것들이 변했나.

"그때나 지금이나 내 관심은 '작은 도시 큰 기업'이라는 테마다. 이니스프리, 테라로사, 성심당 같은 굵직굵직한 '로컬 브랜드'들이 세상에 조금 더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 뒤로 중견기업들은 거의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골목상권이 부상했다.

이번엔 이런 골목상권 로컬 브랜드들이 좀 더 성장해서 지역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 되길 바랐다. 2000년대 중반 홍대와 삼청동, 가로수길, 이태원 이렇게 4곳에서 시작한 골목상권이 15년 사이 전국 155곳으로 늘었다. 군산 영화동 영화타운, 공주 반죽동 제민천길, 속초 동명동 소호거리 등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가봤을 곳들이 벌써 전국 곳곳에 퍼져있다."

- 골목상권에서 큰 기업이 나오길 바란다는 뜻인가.

"그렇다. 골목상권도 하나의 산업처럼 발전해서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산업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울산을 자동차 도시라고 하지만, 자동차 공장이 있을 뿐 본사와 R&D(연구개발)그룹은 다 수도권에 두고 공장만 울산에 세우고서 자동차 도시라고 부르는 건 억지다. 공장은 언제든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지 않나. 이런 걸 자생적이고 독립적인 지역산업이라고 볼 수 없다.

기존 산업사회에서는 모든 지역이 국가산업을 유치하려고 경쟁을 벌였지만 지금은 지역이 고유의 지역산업을 개발함으로써 지역 안에서 선순환하는 생활권 경제를 구축해야 한다. 더구나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생활권 중심으로 도시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 않나. 동네가 진정한 의미의 생활권이 되려면 주민을 위한 충분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더더욱 지역산업을 기반으로 선순환하는 생활권 경제로 나아가야 한다."

- 전국 155개 상권이면 적지 않은 수다. 질적으로는 어디까지 성장했다고 보나.

"아직 싹이 막 돋아난 수준이라 정말 로컬이 독립적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부상하면서 탈물질주의와 삶의 질을 추구하는 흐름은 꾸준히 확산되고 있고 그에 따라 로컬 브랜드를 찾는 수요도 늘어날 거라고 본다. 따라서 골목상권은 앞으로도 성장하겠지만, 골목상권이 경쟁력 있는 로컬 브랜드로, 나아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으려면 정부 정책의 근본적 전환도 필요하다.

또 단단한 골목상권 생태계를 만들어 내는 것도 과제다. 생태계란 말을 저마다 다른 뜻으로 쓰지만 생로병사를 겪듯 기업이 죽기도 하고 다시 생겨나기도 해야 생태계다. 로컬 브랜드를 계속 배출하고 혁신이 이뤄져야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생태계가 만들어지려면 먼저 자생력을 가진, 활력 넘치는 상권이 필요하다.

전통시장처럼 단순히 소상공인들만 모여 있다고 생태계가 되는 건 아니다. 재래시장에선 대부분 혁신도 일어나지 않고 새로운 유입도 일어나지 않는다. 패션은 동대문, 인쇄는 청계천, 디자인은 홍대앞 하는 식으로 생산자와 소비시장이 있고, 여러 이해관계자들끼리 협력도 이뤄져야 한다.

로컬 크리에이터들이나 소상공인들도 지역과 함께 성장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골목자원이 풍부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함께 생태계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상공인 정책을 취약계층 보호책 아닌 산업 정책으로 추진해야"
 
 모종린 교수의 새 책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모종린 교수의 새 책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 알키
 
- 전국 155곳의 골목상권들을 많게는 수십 번씩 다녀온 걸로 안다. 잘 되는 가게들의 비밀을 알려줄 수 있나.

"로컬에서 창업을 하더라도 소비자들 눈높이를 맞추려다 보면 자꾸 서울 홍대앞이나 압구정동 것을 옮겨다 놓으려고 한다. 로컬 특산물만 내놓는다고 사람들이 찾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정말 탁월한 로컬 크리에이터들은 홍대 것도 하고 압구정 것도 하면서 로컬의 것을 섞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로컬에서 살아남으려면 홍대와 압구정 것도 할 수 있으면서 로컬의 것도 할 수 있어야 한다."

- 정부 정책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조금 더 설명해 달라.

"먼저, 정부가 지금의 로컬 트렌드가 지역 발전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로컬이 매력적인 곳이 되지 않으면 인재를 유치할 수 없다. 로컬에 인재가 모여들어야 이들이 지역 발전을 주도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로컬 경제가 추구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골목상권을 기반으로 하는 로컬 브랜드 생태계이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충분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자족적 생활권 도시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제조업과 하이테크 기업에겐 막대한 재정과 토지를 몰아주면서 장기적으로 지역경제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창업과 창조인재를 끌어들이는 데 중요한 서비스업을 지원하지 않는 건 탈산업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정책이다.

한국은 벌써 삶의 질과 정체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탈산업화 사회에 들어섰다. 이러한 흐름은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더 많은 소상공인을 요구한다. 미래 산업 경쟁력을 새롭게 발굴하고 높이기 위해서라도 소상공인 정책을 취약계층 보호책이 아닌 산업 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 윤찬영
 
- 구체적인 과제를 꼽는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나.

"소상공인들에게 필요한 건 역량 강화다. 가령,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부터 디지털 전환을 추구하고 있지만 오프라인에서 팔 것이 마땅치 않은 소상공인들에겐 대안이 되지 못한다. 콘텐츠 부족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서지 않으면 로컬의 미래는 어둡다.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입지와 공간, 투자와 금융, 인프라 그리고 인재 육성과 R&D 등 산업정책의 기본 틀에 따라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개인을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권을 지원해야 하고, 또 재정 지원을 넘어 기술 훈련으로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상권 중심의 입지와 공간 정책이 중요한데, 그들이 활동하는 상권과 생태계를 로컬 브랜드를 배출하는 '산업단지'로 바라보면서 지원하고 관리해야 한다.

또 창의적 소상공인을 길러낼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도 시급하다. 지역의 대학과 직업학교들을 로컬 크리에이터를 육성하는 장인대학으로 활용해야 한다. 영국에서 실험하고 있는 소상공인과 기업인을 위한 미니 MBA(경영대학원) 'Help to Grow'(성장을 위한 지원) 같은 혁신적 교육 프로그램도 참고해볼 만 하다."

- 마음만 먹으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과제로 보인다.

"작은 동네를 재생하는 데 1000억 원씩 쓰면서 전국 단위의 창의적 소상공인 지원 사업에 한해에 겨우 100억 원밖에 안 쓰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골목상권을 재생하려면 골목길과 가로, 건물과 생활 인프라도 손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골목상권 재생은 도시재생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결국 소상공인 문제는 소상공인이 사업하기 좋은 도시,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한 창조도시를 건설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골목상권과 도시를 되살리려면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맞먹는 사회적 커뮤니티 운동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1960년대 국가산업을 키우려고 중앙 집중 정책을 추진하는 사이 지역은 소외되었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다. 관성을 되돌리려면 그에 못지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참고]
- 모종린,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2021)
- 조영태, <인구 미래 공존>(20201)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윤찬영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현장연구센터장입니다.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 온라인이 대체할 수 없는 로컬 콘텐츠의 힘

모종린 (지은이), 알키(2021)


#모종린#로컬크리에이터#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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