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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게 있다. 무엇이든 1만 시간이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말이다. 매일 3시간씩 하면 대략 10년이 걸린다. 같은 일을 10년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24일 작고한 고 이수열 선생은 우리말 바로잡기를 한평생 이어왔다. 1993년 학교 선생님을 그만두고 자택에 솔애울 국어순화연구소를 차리고 신문에 나온 외국어투 표현을 고치는 일을 했다. 기자들 가운데 그의 '빨간펜 편지'를 받은 이가 적지 않다는 얘기도 있다.

이수열 선생과 인연을 맺은 건 지난 2016년 그에게 '빨간펜 편지'를 받으면서다. 대학 졸업반 무렵 쓴 글을 신문사에 기고했는데, 이수열 선생이 그 글에 담긴 잘못된 표현을 빨간펜으로 바로잡아 학과사무실로 보낸 것이다. 편지를 읽고 나선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어린 학생의 글까지 살펴봐 주신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2017년 서울 은평구 불광동 자택에서 고 이수열 선생을 인터뷰하던 모습.
2017년 서울 은평구 불광동 자택에서 고 이수열 선생을 인터뷰하던 모습. ⓒ 임형준

이수열 선생을 처음 만난 건 2017년 서울 은평구 불광동 자택에서였다. 당시에도 만 89세의 고령이었는데 언덕 올라가다가 허리를 다쳤다며 엉덩이를 길게 빼고 의자에 앉아 인터뷰에 응했다. 계속되는 질문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듬해에도 그를 한 번 더 인터뷰했는데 건강은 크게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아 보였다.
     
해가 세 번이 바뀌고 선생의 비보를 접했다. 부고 소식을 전하는 외손자의 글에서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묻어났다. 그날 저녁 서울 은평구에 있는 한 병원 장례식장으로 갔다. 선생의 아들과 딸, 며느리, 손자가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몇 해 만에 뵌 선생은 말이 없었다. 유족에게 "선생은 좋은 분이었다"고 전했다.

우리말을 바로 쓰자고 하면 '선비'라고 비꼰다. 말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주장이다. 말은 쓰는 사람의 얼인데 최소한의 것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이수열 선생 같은 사람이 필요한 세상이다. 오래전 먼저 세상을 떠난 황현산 교수는 이 선생을 "소금"이라고 평가했다. 소금은 없어선 안 될 존재다. 그의 짠맛을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이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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