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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이 없다 아입니까?(아닙니까)".

몇해 전 인기를 끌었던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했던 유명한 대사다. 극 중 뒷골목 깡패로 나오는 최형배(하정우 분)는, 나이트클럽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자인 김판호(조진웅 분)를 치자는 최익현(최민식 분)의 제안에 대해 "명분이 없다 아입니까(아닙니까)"라고 반문한다. 잠시 고민하던 최익현이 "니캉 내캉 가족아이가.(너랑 나랑 가족 아니냐) 그보다 더한 명분이 어디 있겠노"라고 말하자, 그 말을 들은 최형배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명분'을 찾았다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명분'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서로가 지켜야 할 도덕상의 일'을 일컫는다고 돼 있다.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필요한 적절한 이유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한국 사회에서 '명분'은 적잖이 중요한 요소다. 특히 정치에서는 일의 당위성을 설명할 때 명분을 내세운다. 영화 속 건달의 말을 정치권에 빗대자니 조심스럽지만, 현재 합당을 논의 중인 국민의힘-국민의당 야권 상황은 한마디로 명분 싸움이 강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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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왼쪽)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만나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왼쪽)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만나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야권 빅텐트' 꿈꾸는 국민의힘... 문제는 

국민의힘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 빅텐트를 치기 위해 국민의당과 합당을 논의 중이다. 지난 22일 양당 실무협상단이 처음으로 만나 서로의 의견을 확인했고, 앞으로 매주 화요일에 정례회의도 한다. 이날 양측은 '당 대 당' 통합에 합의했다는 성과도 내놨다. 

앞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경선 과정에서 "흡수 합당"을 강조해온 것과는 달라진 입장이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관계자 A씨는 "경선 때 이야기는 하지 마라. 후보 때와 당 대표 때는 다르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빅텐트'를 쳐야 하는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국민의당과 통합은 주요 선결과제 중 하나다. 의석수가 차이 나긴 하지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지지율이나 상징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더구나 안 대표는 지난 4.7서울시장 보선 과정에서 오세훈 후보를 적극 지지하며 서울시장을 만드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이제 와서 의석수나 지지율을 빌미로 돌아선다면 국민의힘은 신뢰감 없는 정당으로 비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합당에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입장이다.

사실, 문제는 국민의당이다. 어떤 합당 방식을 취하더라도 제1야당에 흡수되는 군소정당의 모습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직이나 당세가 약하기 때문에 당원들도 존재감 없이 흡수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국민의당은 야권의 외연확장이라는 대의를 내세우며 '통 큰 정치'를 강조한다. 안 대표가 최근 지역위원장을 30명 가까이 임명하고도, 합당시 별도의 지분 요구는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사정은 국민의힘도 잘 알고 있다. 흡수 합당을 요구하던 국민의힘이 첫 실무협상 이후 "당 대 당 합당에 합의했다"고 강조하고 나서는 것도 국민의당의 기를 살려주겠다는 계산이다. 국민의힘 관계자 B씨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끌고 가면 자존심 상할 수 있으니 당대당이라고 하는 것"이라며 "큰 당이 작은 당을 먹어 없애는 것이 아니다. 가치를 확장하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당명 '국민의힘', 바뀔까 아닐까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국민의당 합당 관련 실무협상단 회의에서 국민의힘 성일종 단장(오른쪽)과 국민의당 권은희 단장이 인사를 하고 있다.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국민의당 합당 관련 실무협상단 회의에서 국민의힘 성일종 단장(오른쪽)과 국민의당 권은희 단장이 인사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두 당 합당 과정에서의 문제는 '당명 변경' 여부다. 국민의당이 내세우는 '당명 변경' 요구는, 대의를 위한다는 표면적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의당 관계자 C씨는 "당명을 바꾼다고 (해서) 흡수 합당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당명을 안 바꾼다고 신설 합당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며 "뭐가 됐든 어떤 모양을 갖추는 게, 국민에게 더 어필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자는 것이다"고 말했다.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야권의 외연확장'이라는 대의를 지킬 수 있도록 명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이번 합당의 핵심적인 키(key)가 될 것이다. '당명 변경'은 대의를 둘러싼 포장지에 불과하다. 이번 합당을 두고 일각에서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어찌 보면, 간단한 일차방정식에 불과할지 모른다. 

국민의힘이 국민의당의 '명분'이라는 X값을 찾아낸다면 합당 시나리오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이 합당 방정식을 어떤 식으로 풀어낼지 기대가 된다.

#합당#국민의힘#국민의당#야권대통합#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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