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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들은 라면을 정말 좋아한다. 라면 싫어하는 사람이 있냐 하겠지만 아들들은 '라면 귀신'들이다. 반대로 나는 라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부대찌개라든지 떡볶이를 먹을 때 라면사리는 꼬박꼬박 챙겨먹지만 내가 라면을 먹기위해 끓이지는 않는다. 대신 사발면은 좋아해서 마트를 가면 내가 먹을 사발면 한두 개씩은 집는다.

아이들은 라면을 한 젓가락만 먹어도 무슨 라면인지 알 수 있다고 자랑스러워하지만 난 사발면도 전에 먹었던 게 맛있었다 하면서도 어떤 회사 거였는지 기억도 못한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아마 신랑과 연애 시절의 낚시터 사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신랑과 연애할 때 낚시터를 생전 처음으로 가봤다. 처음 가 보는 것이니 준비물을 잔뜩 싸들고 신나서 갔지만 생초짜 둘이서 지루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심심해서 라면이라도 먹을 요량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는데 집에서처럼 물이 빨리 끓지 않았고 지루했던 나는 대충 면을 넣었다. 그걸 본 신랑은 흥분해서 물이 끓지도 않는데 라면을 넣었다고 어찌나 화를 내던지, 나는 서러워서 눈물도 흘리고 그렇게 싸우고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끓지 않은 물에 면을 넣은 나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술자리에서 안주 거리가 되고 있다. 오죽하면 아이들도 듣고 또 듣고 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라면을 안 끓이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러던 내가 이제 라면 끓이기 달인이 다 되었다.
 
 라면
라면 ⓒ pixabay

물온도와 스프는 언제 넣을 것이며 면은 넣고 어떻게 해야 꼬들하며 이런 걸 다 따지고 끓이고 있다. 라면 귀신인 아들도 인정한 고수가 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내가 꽤 오래 한국에 살고 있지 않아서 일 듯하다.

지금은 라면이 전세계에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몇 년 전 내가 살던 중남미에서는  정말 너무 귀했다. 신랑이 미국에 출장을 가면 여행가방에 담아오던 5개들이 라면. 그걸 아끼려다 유통기한이 지나서 기름냄새가 진동하는 걸 먹기도 했다. 현지에서 라면을 사먹으려며 너무 비싸기 때문에 설렁설렁 끓일 수도 없다. 귀한 건 맛있게 먹어야 하니까. 그러면서 내가 라면에 진심이 된 건 아닌지.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홍콩이다. 한국라면이 동네슈퍼에도 종류별로 다 들어 와 있어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그래도 이곳에 있는 한국라면은 상표가 영어로 써 있고 맛도 미묘하게 다르다.

그래서 가끔은 한국 식품점에 가서 한국어로 써 있는 라면을 산다.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 그 맛의 차이를 알아낸다. 더 신기한 건 둘째는 매운 음식을 잘 못 먹어도 라면을 끓이면 신나서 방방 뛴다.

해외에 살면서 우리집에 수리기사나 택배기사라든지 누군가 현지인이 찾아 올 일이 있으면 집에서 나는 냄새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 10년 전 중남미에 살 때 집에 온 수리기사가 우리 집 냄새에 인상을 쓰고 코막는 걸 보고 내가 얼마나 창피하고 화가 났는지 기억이 난다. 하지만 사실 뭐라고 할 순 없다. 나도 로컬식당에 가면 그러니까.

지금 홍콩에서는 누가 와도 신경도 안 쓰고 먹던 걸 계속 먹는다. 홍콩에도 많은 종류의 로컬라면이 있고 한국라면들도 많이 찾아서이다. 물론 누구나 다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이 냄새를 창피해 하지 않을 수는 있다.

내가 생각하는 라면의 매력은 라면맛도 중요하지만 라면을 먹을 때 약간 긴장이 풀어진 듯한 금요일 야식과 같은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몸이 힘들수록 더 얼큰하고 따뜻한 메뉴를 찾게 되는 것 같은데 라면에서 그런 걸 최대로 느끼는 것이 아닐까.

저녁시간의 푸짐한 밥상보다 살짝, 좀 많이 늦은 밤의 라면이 더 환한 얼굴을 부르듯이, 늦은 퇴근에 피곤한 신랑이 밥이 부대낄 거라고 라면과 맥주 한 잔을 찾듯이 지금 이 글을 쓰는 핑계로 오늘 저녁에는 나의 백만불짜리 라면을 끓여줘야겠다.

#라면#기사제안#해외#라면에 얽힌#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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