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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는 명문 양반가에 태어난 금수저,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말을 들었으며 24세에 중국으로 건너가 당대 최고의 학자들에게 찬사를 받은 넘사벽의 학문과 글씨, 세자를 가르치기도 하였으며 이조참판 등 높은 벼슬을 한 스펙, 거기에다 이 모든 것을 가지고도 교만하지 않고 천 개의 붓을 다 닳도록 글씨를 썼다는 노력, 이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 바로 김정희다.
 
 김정희초상
김정희초상 ⓒ 문화재청
 
하지만, 이런 완벽한 김정희에게 위기가 닥쳐왔다. 당파 싸움에 휘말려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된 것이다. 고생을 모르고 살았던 그에게 유배 생활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좁은 방에 8년을 넘게 지내야만 했으며,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온갖 병에 시달렸다. 오죽했으면 부인에게 쓴 편지에는 제대로 된 음식을 보내달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 부인마저 유배생활 중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긴 유배 생활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연락을 끊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그에게 연락을 하고, 꾸준히 귀한 선물을 보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제자 이상적이다. 당시 학자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중국에서 출판되는 학자들의 책이었다. 이상적은 통역관으로 중국에 갈 때마다 귀한 책들을 구해 김정희에게 보냈다. 책 값이 아주 비싼 것은 둘째 치고, 매번 중국에서 한양으로, 다시 한양에서 제주도로 그 책을 보내는 제자 이상적의 마음에 김정희는 감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1년 중 가장 춥다는 세한을 그려 이상적에게 그 고마움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림 옆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공자의 글귀를 적었다. 

"날이 차가워진 이후라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 "

김정희는 자신이 어려워지고 나서야 제자 이상적의 소중함을 더욱더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힘든 일을 당하지 않고서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기 쉽지 않다. 김정희는 힘든 유배 생활 중에 평생을 잘 몰랐던 일상의 소중함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세한도는 추운 겨울과 앙상한 나무를 표현한 것이 아니다. 추운 겨울임에도 푸르른 나무를 표현하였으며, 그 나무 아래 좁은 집 안에서 그 푸르름을 통해 학문과 삶의 이치를 깨닫고 있는 자신을 그린 것이다. 
 
 세한도
세한도 ⓒ 국립중앙박물관

그 깨달음은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해인 71세에 쓴 대팽고회에 잘 드러나있다.

"푸짐하게 차린 음식은 두부·오이·생강·나물이고, 성대한 연회는 부부·아들딸·손자라네(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 

이 글은 명나라의 명인인 오종잠이 쓴 시에서 따온 것으로 소박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대팽고회
대팽고회 ⓒ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또 한 장의 세한도가 전시되고 있다. 김정희의 친한 친구였던 권돈인이 그린 세한도이다. 권돈인의 세한도에서 '세한도'라는 글씨는 김정희가 썼다. 김정희는 평생 그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의지했다. 권돈인 역시 유배생활을 하는 김정희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권돈인에게 추운 겨울에도 항상 푸르른 나무는 누구였을까? 김정희와 권돈인의 세한도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세한도
세한도 ⓒ 조성래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고난은 사람을 의지를 꺾기도 하지만 사람을 강하게도 만든다. 올해는 우직함과 힘찬 힘을 상징하는 소의 해다. 소의 기운도 받고 세한도를 통해 이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지혜도 얻었으면 한다.

김정희의 <세한도>는 2021년 4월 4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권돈인의 <세한도>는 상설전시실 2층에서 전시 중이다.  

#세한도#김정희#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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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삶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쓰는 초등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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