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보강 : 13일 낮 12시 12분]
"아침 7시 KTX 타고 왔어요. 너무 떨려서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눈가가 빨갛게 부은 김영신(34)씨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떨어졌다. 강원도 원주에서 왔다는 김씨는 '정인이 사건(생후 16개월 학대 사망 사건)'의 아동학대 가해자인 양부모의 이름과 '사형'이 적힌 손팻말을 서울남부지법 앞 도로를 지나는 차량을 향해 연신 흔들었다. "컴퓨터를 잘 못해가지고..." 직접 프린트하고 코팅한 손팻말이었다.
13일 양부모의 첫 재판이 진행된 서울남부지법 앞에는 오전 8시께부터 김씨처럼 사건에 분노한 시민 70여 명이 몰려들었다. 참가한 이들 대부분 30·40대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우리가 정인이 엄마 아빠다", "양부모 지옥으로 떨어져라", "국민들이 사형을 선고한다" 등의 손팻말을 들었다. 이날 재판의 시민 방청권 경쟁률은 15.9대1이었다.
양천경찰서 경고방송에 "아동학대 가해자나 잡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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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이 양부모 탄 차량 가로막는 시민들 “살인죄 처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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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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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오전 9시 20분께 양모가 탄 호송차가 법원 정문을 통과하자 일제히 손팻말을 치켜들고 "사형"을 외쳤다. 연호는 차량이 지나간 뒤에도 10여 분 넘게 이어졌고, 일부는 소리를 지르며 오열했다. 양천경찰서 관계자가 경고 방송으로 "미신고 집회는 주최자와 참가자 모두 처벌된다"고 하자 일부 시민들은 "잡아가라", "아동학대 가해자나 잡아가지 우릴 왜 잡아가나"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영신씨는 남편과 함께 정인이 사건과 관련한 방송을 보면서 함께 울었다고 했다. 분노의 초점은 경찰 수사에 맞춰 있었다. 그는 "더군다나 경찰은 3번이나 신고했는데 아이를 못 살렸다"면서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뿐이라 가장 화가 난다"고 했다.
7살짜리 아들과 함께 법원 앞을 찾은 또 다른 여성은 정문 앞에 도열한 학대 피해 아동의 사진을 함께 보기도 했다. 사업보고회 등 직장의 주요 업무를 미루고 연차를 낸 참가자도 있었다. 정아무개씨는 "정인이랑 3개월 정도 차이 나는 아이를 기르고 있다"면서 "아침마다 아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종일 (정인이 사건이) 생각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현장에는 토끼탈 복장으로 정문 앞에 선 이도 있었다. 사망한 정인이가 첫 재판을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아 "무서워하지 말라"는 마음에 준비했다고 했다. 정인이와 동갑내기 쌍둥이 등 4남매를 돌보고 있다는 김지선(38)씨는 "우리나라에서 아동학대는 광고 보듯이 (흔히) 누구나 저지르는 일이다. (수사도 법대로) 강력범죄와 동등하게 다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래는 김씨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광고처럼 수많은 피해들... 한국 수사는 아동학대를 너무 쉽게 본다"
- 토끼탈을 쓰고 온 이유는?
"정인이가 너무 아기잖아요. 자기를 죽인 사람들의 재판이라. 애가 너무 무서울 것 같아서. 웃으라고요. 고통스럽지 말라고. (눈물)"
- 망치의 의미는?
"아이 고통스럽게 한 사람들 벼락 맞으라고 주문했어요."
- 참가자 대부분이 또래 여성들인데요.
"거의 엄마들이 많아요. 나도 4남매 엄마인데, 막내 쌍둥이 아기들이 정인이랑 같은 2019년생이에요.
- 오늘 재판에서 어떤 점을 가장 주목하시나요.
"아이를 살해했잖아요. 그런데 학대 치사로 기소 됐죠. 살인죄로 기소돼야 하는데. 그 점에서 가장 공분하는 거죠. 남편도 택시 타고 가라고 택시비 주더라고요."
- 수사 당국과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우리나라 아동 학대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조사를 할 땐 학대를 너무 쉽게 봐요. 지나가다 광고 보듯이 누구나 저지르는 일인데... 아무 힘도 없는 아이들을 때리는 거잖아요. (수사도 법대로) 강력범죄와 동등하게 다뤘으면 좋겠어요."
재판은 11시 25분께 종료됐다. 양부는 재판 종료 직후 법원 후문으로 빠져나왔으나, 시민들이 "살인자!" 등을 외치며 차량을 저지했다. 일부 시민은 차량을 향해 눈을 던지거나 차체를 때리며 분노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날 열린 재판에서 정인이 양모에 대해 살인죄를 추가 적용하는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앞서 검찰은 양모에게 아동학대치사 혐의만을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