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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력
달력 ⓒ pixabay
 
한해를 정리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내가 정리하는 박스 속에는 시간과 사람들 그리고 그 둘이 만드는 여러 장면들의 추억이 보인다. 연초부터 이 순간까지도 코로나의 시간 터널을 지나면서 우리의 일상은 여전히, 아니 더 거친 호흡 소리를 내고 있다. '일단 수학능력시험이 끝나면 더 좋아지겠지' 했던 마음들, '연말이 되면 뭔가 달라지겠지' 했던 일말의 희망들이 코로나 3차 대유행이라는 벽에 완전 봉쇄당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올 한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짚어봤다. 또한 얼마 남지 않은 한 해의 끝을 향하여 어떤 시간을 만들면 더 좋을까 고민했다. 꼭 일 년 전 이때 기록했던 새해의 목표일지를 꺼내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놓쳤을까를 살펴보았다. 책상 위의 색 볼펜을 들고 하나하나 표시해나갔다.

목표를 이룬 것에는 초록 표시를 했다. 한 달에 최소 두 권 이상의 책읽기와 글쓰기 매주 한 편, 그리고 딸의 대학 합격이 그것이다. 이루지 못하고 내년으로 넘길 것에는 파란 표시를 했는데, 학원생 증가와 영어관광통역사 시험이 있었다.

목표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행운처럼 이뤄진 일에는 보라색으로 쓰고 별표를 주었다. 무엇일까. 바로 나의 첫 에세이 <어부마님 울엄마> 출간이다. 또 하나 '요양보호사 자격취득'도 있다. 마지막으로 결코 잊지 말아야지 하는 일에는 '코로나 사태와 삶의 영향,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이란 말을 빨간색으로 써 놓았다.

올 한해도 부지런히 살았던 가족들에게

돌이켜보면 올해도 나는 변함없이 부지런히 살았다. 아니 어쩌면 더 바쁘게 더 보람되게 산 것이 분명했다. 늘 행복한 삶을 추구했고, 만나는 모든 사람과 함께 행복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도 연말을 앞두고 커져만 가는 마음의 공간에 무언가를 담고 싶었다.

책상 앞에 놓인 탁상달력을 보면서 새해의 탁상달력을 부탁하려고 모 은행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한 후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지. 힘들었던 가족들에게 가족 달력을 만들어주자. 내 책의 글과 그림을 이용하고, 가족들의 생일, 제사, 결혼기념일 등을 새겨 넣어주자.'

가족톡으로 2021 새해 달력을 만들어 줄 테니, 각자의 생일을 포함해서 꼭 기념하고 싶은 날들을 보내라고 했다. 책을 낼 때 후원해 준 동생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만들어 주고 싶다고 했다. '바쁜데 뭐 그런 것까지 하냐'고 하면서도 바로 본인들의 기념일들을 보내왔다. 일 년 열두 달과 새해를 출발하는 달력의 겉표지, 마지막 표지, 버켓리스트 란까지 총 15장의 그림과 글을 선별했다.

가족들의 생일을 음력과 양력으로 구분하여 각 달에 날짜에 기념일을 쓰고, 해당하는 달에 맞는 그림과 글을 골라서 배치했다. 가안을 만들어 인쇄소에 맡기니 편집하시는 분은 나보다 더 멋진 아이디어로 글과 그림을 배치하여 편집해주었다. 1차 시안을 가족들에게 보이니, 꽤 그럴싸하다고, '좋네 좋네, 박씨가문 가족 달력'을 연발했다.

엄마를 소재로 책을 준비할 때도 나의 질문과 제안은 동생들의 어린시절 추억을 불러일으켰고 더불어 형제가 단합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그 느낌을 알아서 그런지 가족 달력을 만드는 일도 빠르게 도와주었다. 드디어 가족 달력이 사무실에 도착했다. 오형제의 각각 자손에게까지 다 돌아가도록 달력을 분배했다.

"애들아, 오늘 내일 김장하는데, 올해 내가 심은 배추 100 포기로 담글 거다. 내 책에 쓴 것처럼 이번에는 꼭 엄마표 김장 비법을 잘 전수 받을 거다. 김치통 들고 와서 김치도 가져가고 내가 만든 새해 가족 달력도 가져가거라."

오늘, 이 김장을 나눠 먹는 마음으로 

배추포기는 좀 서운해도 배추종자가 맛있게 생겼다고, 하루 전에 뽑아다 놓아야 배추가 순해져서 김치 양념도 잘 먹는다는 엄마의 말씀을 듣고 부지런히 배추를 옮겼다. 함께 가져간 가족 달력을 엄마에게 보여주면서 내 책으로 만든 가족달력이라고 설명해드렸다.

"너는 학생들 가르칠라, 봉사하러 다닐라 바쁘다고 에미한테는 얼굴 한번 보여주기가 하늘의 별따기더만, 언제 이런 걸 또 만들었냐. 달력도 크고 글자도 커서 보기는 좋다."

"엄마 생일 있는 오월에는 두 사위들 생일이 있고, 아버지 제사 있는 달에는 우리 형제들과 며느리들까지 골고루 생일들이 있네요. 이렇게 한꺼번에 달력 속에 쓰여 있으니까 좋지요?"


옆에 있던 남편이 부러웠던지, 어머니가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분이라고 하면서 "이왕이면 당신 시댁 것도 한번 만들어보소"라는 말에 또 하나 할 일이 생겼다. 시댁 달력 만들기!

남편의 형제는 7남매, 결혼하여 3년차에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시아버님도 그 후 돌아가셔서 시댁엔 어른이 안 계신다. 사랑 표현이 넉넉한 남편은 늘 마음이 외로웠을 것이다. 나는 장녀로 동생들을 진두하며 형제를 서로 챙기지만 6남1녀의 남편 가족은 소소한 일로 알뜰히 서로를 챙기는 일이 마음만큼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큰 시숙에게 가족달력을 만들겠다고 말씀드리니 참 좋아하셨다. 다른 형제들에게도 사진과 글귀를 보내달라면서 가족달력의 의미를 설명하니 고맙다고 했다. 가족이면서도 맘을 표현하는 일에 서툰 시댁이 이 달력을 통해서 서로의 마음을 읽게 될 것을 기대했다.

또한 시댁의 달력에는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넣어서 가안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200일 동안 필사한 시를 다시 한번 읽어보는 행복한 시간도 즐겼다. 김수영 시인의 <나의 가족>, 김현승 시인의 <새해인사>, 이진관 시인의 <구부러진 길>,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등이다.

시간의 무게를 지고 살아야 할 우리들, 그 무게가 아무리 무겁고 힘들다 해도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우리들. 나는 거기에 가족이라는, 더없이 소중한 가치의 추를 매달고 살고 싶다. 그 추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무겁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부모 형제는 하늘이 내신 것이기 때문이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김장을 하면서 육십을 코앞에 둔 아들에게 겉절이에 통깨를 잔뜩 묻혀 먹여주시는 팔십의 노모의 손가락과 입 모양을 보면서 나는 순간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눈물 나게 너무 좋아서.

"형제들이 우애허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더냐. 개피를 새피에 붙이지 못하는 법이다. 아무리 서운한 일들이 있어도, 오늘 이 김장을 나눠 먹는 맘으로 세상을 살아라."

엄마가 말씀하셨다.

#신년2021#가족달력#박모니카에세이#어부마님울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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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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