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에서 전두환 내외
자료사진
그런데 전두환 부하들의 뻔뻔함은 상당 부분 전두환에게서 기인했다고 말할 수 있다. 리더인 전두환이 벌벌 떠는 모습을 보이며 죽는시늉이라도 했다면, 장세동 전 안기부장을 비롯한 측근들도 비슷한 흉내를 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리더가 죽는시늉은커녕 건재를 과시했으니 부하들도 굳이 죽는시늉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만약 1988년 중반을 뜨겁게 달궜던 그 소문이 정말 실현됐다면 우리 국민들은 훨씬 더 뻔뻔한 전두환을 보면서 속을 끓이게 됐을 것이다. 그 소문이 현실화했다면, 한국인들은 전두환이 골프 치고 인상 쓰고 자축하는 장면을 국내 언론이 아닌 외신 보도를 통해 접해야 했을 것이다.
9월 17일에 서울 올림픽이 개막된 1988년에 우리 국민들이 올림픽 소식 다음으로 촉각을 곤두세운 것 중 하나는 전두환의 망명 가능성이었다. 그 부부가 해외로 달아날 거라는 소문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해외 망명을 이미 시도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망명을 시도했다가 노태우 정권과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1988년 7월 29일 자 <한겨레> 기사 '전씨 부부 망명설 진위 밝혀져야'에 이런 보도가 실렸다.
대학가의 대자보, 해외 간행물 복사판 등을 통해 번지고 있는 이 유언비어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이나 정부에서 침묵으로 일관, 사회적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언론사에는 그 진위를 확인하려는 문의 전화가 매일 그치지 않고 걸려오는데, 일부 시민은 언론이 왜 침묵하고 있느냐고 항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의 망명 기도가 강제로 저지됐다는 것을 골자로 하면서 부분적으로 약간의 차이를 나타내는 이들 유언비어는 '비행장 부근에서 발생했다', '총격전이 벌어져 사상자가 생겼다'는 내용이 공통적으로 담겨 있다.
이 뉴스가 사실이라면 전두환 망명으로 곤경에 처할 것을 예상한 노태우 정권이 무장 병력을 보내 저지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의구심을 키우는 뉴스는 외신에서도 나왔다. 그해 11월 12일 자 <한겨레> 기사 '국회에 전두환씨 재산조사 특위를'에 따르면 호주에서는 "(전두환이) 오스트레일리아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워싱턴 포스트>에서는 "미국이 전씨의 망명을 받아주면 반미감정이 일 것"이라는 경고성 기사가 나왔다.
망명지로는 미국이 유력시됐다. 그가 미국 유학 경험이 있고 친미 노선을 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의 망명을 가로막는 듯한 보도들이 나왔다. 전두환이 망명하면 그해 11월 8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조지 부시 대통령 당선인이 곤경에 처할 것이라는 보도가 국방부 기관지인 <성조지>에 실렸다. 이런 보도까지 나온 것은 미국이 전두환 망명을 원치 않는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전두환은 대다수 국민들이 손가락질하는 대한민국 땅에서도 죽는시늉은커녕 도리어 뻔뻔하게 살고 있다. 만약 1988년에 망명이 현실화됐다면 그는 한국 국민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이국땅에서 훨씬 더 뻔뻔하게 건재를 과시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그의 뻔뻔한 최근 동정을 보여주는 외신 보도들이 이따금 한국을 흔들어놨을 수도 있다.
이명박·박근혜 사면? 전두환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