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말 멕시코 티후아나와 미국 샌디에이고 접경지역에서 발견된 마약 터널에서 압수된 마약들. 마약의 종류는 마리화나부터, 코카인, 헤로인, 메탐페타민, 펜타닐 등으로 다양했다. 총 3천만 달러 정도의 가치로 환산되었다.
미국 연방정부 마약단속국 보도자료
게다가 멕시코는 마약 생산국가도, 소비국가도 아니다. 최근 들어 메탐페타민 혹은 펜타닐 같은 화학 마약을 제조하긴 하지만, 고전적 마약에 속하는 코카인이나 헤로인의 경우 생산과 소비로부터 한참 비껴 있었다. 다만 오랜 시간 멕시코가 관여해온 부분이라면 남쪽으로부터 올라오는 마약을 북쪽 미국으로 운송하는 것 뿐. 한마디로 마약이 거쳐가는 길목이었을 뿐이다.
멕시코를 거쳐 올라가는 마약의 최종 목적지답게, 전 세계적으로 마약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가장 보편적인 것이 코카인과 헤로인이다. 코카와 아편이 주재료다. 보통 그램(g) 단위로 판매되는 이 마약들의 미국 내 소비 총량이 연간 최소 700톤에 달한다. 부피가 큰 마리화나를 포함한다고 해도 도무지 상상키 어려운 양이다. 물론 마약 복용 인구도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고, 그로 인한 피해 또한 심각하다. 인구의 20%는 마약을 복용한 경험이 있고 5% 정도는 심각한 중독 후유증을 경험한 바 있는 것으로 조사된다.
2020년 현재 미국에선 자살, 살인, 총기사고, 혹은 교통사고보다 마약에 의한 사망자 숫자가 훨씬 많다. 1년 동안 약 7만 명이 마약 복용으로 인해 사망한다. 기저질환 혹은 합병증 유발로 인한 간접 사인이 아닌, 직접 사인의 경우다. 2000년 이후 급격히 증가했고 최근 들어 증가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특히 아편을 기반으로 하는 헤로인이나 최근 급부상하는 신종 마약 펜타닐로 인한 사망자는 인구 10만 명당 13명을 상회한다. 정작 그 마약이 올라오는 바로 아래 멕시코에서는 인구 10만 명당 0.7명 수준이다.
그러니 미국 정부 입장에선 자국 내 마약 문제 해결이 급선무일 수밖에 없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급을 차단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급을 독점하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지난 2006년 멕시코에서 마약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표면상으론 멕시코 정부가 자국 내 마약 카르텔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격이지만, 그 이면에 미국의 압력이 존재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미 2000년대 초, 콜롬비아 우파 정권과 협공하여 코카인 제조 공급책인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을 초토화시킨 전력이 있었다.
마약과의 전쟁
그러나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카르텔의 붕괴는 커녕, 이 시기를 기점으로 멕시코에서는 살인 건수가 치솟았고 미국에서는 마약 소비가 치솟았다. 직·간접적으로 마약 카르텔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두 나라의 분기가 충분히 무색할 만하다.
미국 수사 당국에서는 멕시코 주요 카르텔 우두머리에 역사상 유래 없는 현상금을 걸고 체포 작전에 나섰지만 지금까지 그 현상금에 걸려든 자는 없다. 엄청난 화기를 앞세운 정부군의 작전에 겨우 한두 명 체포하는 전과를 올리긴 하였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해당 카르텔들은 붕괴하는 대신 더욱 포악해졌다.
일인자가 제거되자 넘버투, 넘버쓰리들이 넘버원이 되기 위해 피의 전쟁을 벌였고, 새로 넘버원 자리에 오른 젊은 보스들은 과거 정부 혹은 타 조직 간에 암묵적으로 존중해 오던 룰마저 파기하면서 더욱 잔인해졌다. 또한 조직들이 갈리고 신생 조직들이 난무하면서 멕시코뿐 아니라 미국 수사 당국도 그들과의 대화 창구는 커녕 기본적인 정보 수집에도 애를 먹는 형국이다.
마약과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지난 14년 간 멕시코 마약 카르텔은 오히려 유래 없는 강세를 보여왔다. 남쪽으로는 과테말라로부터 콜롬비아까지 마약 운송 루트를 장악했고 북쪽으로는 미국 주요 거점 도시 곳곳에 조직을 확장시켰다. 과거 콜롬비아 카르텔에 조력하던 수준에서 콜롬비아 카르텔 장악까지 나선 셈이다. 그 사이 멕시코에는 3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미국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마약 소비로 목숨을 잃었다.
미국 마약 당국이 최첨단 장비와 무기를 동원하여 마약이 유입될 만한 길목을 차단한 채 작전을 펼치지만 그들이 잡아내는 양은 자국 내에서 소비되는 양의 5%도 미치지 못한다. 마약 운송에 무인항공기와 소형 잠수정이 이용되기도 하지만, 단가가 비싼 마약 즉 헤로인이나 펜타닐 같은 종류들은 조직원들에 의해 직접 유입된다. 마리화나처럼 부피가 큰 마약들은 멕시코와 미국 국경 지하로 정교하게 뚫린 터널을 이용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