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지상이 6집 앨범 '나의 늙은 애인아'를 우리 앞에 내놓았다. 이번 앨범에는 '천천히 순하고 뜨끈하게' 가자는 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치열했던 지난날의 삶을 넘어 서로가 서로의 능선이 되어 설운 삶의 고갯길을 넘어가자는 단 하나의 사랑과 악수하기 위해 두 손의 온기는 남겨두자는, 그래서 생의 미련이 다하는 그날까진 서툰 나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겠다는 그의 고백이 담겨있다. 지난 9일 서울 은평구 역촌동 그의 작업실에서 이지상의 음악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5년 만에 6집 앨범 '나의 늙은 애인아'를 발매했는데 요즘 근황은 어떤지, 이번 음반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콕 집어서 하나만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 일이 그렇지 않나? 밥을 먹고 나서 콕 집어서 어떤 반찬 하나가 맛있었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운 것처럼. 노래를 하고 앨범을 내는 건 내 안에 있던 에너지를 풀어내는 과정인데 그러려니 내 안에 있는 게 무엇인지 더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좀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데 내 뒷목을 잡는 우리 사회의 여러 분위기를 보면서 쉽게 그러지도 못하고 그냥 사람들하고 같이 공생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며 지내고 있다."
- 이번 앨범에 수록된 '나의 늙은 애인아'를 들으면 '아, 나도 이렇게 늙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볕 좋은 지방 위, 순한 고양이처럼 늙어가야겠다는 생각이. 이 노래는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전에 정선 아라리문학축제에 참여했는데 거기서 최광임 시인이 쓴 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늙기 시작했고 나의 늙은 애인이 늙기 시작했다는 걸 인정한다는 게 어려운데 그 구절을 보면서 나도 이제 그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뾰족하게 살았는데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게 됐다."
- 이지상님은 전혀 안 뾰족한 분 아닌가?
"나도 속으론 뾰족하다(웃음). 지난날 반독재, 반인권시대에 대항하면서 살다 보니 나도 뾰족해졌다. 삶의 방법이 꼭 대치되는 것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살면서 느끼게 된다. 인생이 한 판 싸움이라고 보면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은 늘 있게 마련이다.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반대편에 악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 구분조차도 희미해질 때를 기다리지만 정말 숙련되어야 하는 일이고 나에게 거슬리는 부분도 순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그 시가 내 마음에 들어오면서 노래가 만들어졌다."
- 이번 앨범에 '윤치호에게 쫓겨난 소녀'라는 곡이 실렸다. 소녀는 정말 윤치호에게 쫓겨났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노래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어려우니까 그래도 개화파라는 명목을 갖고 있으니 양심은 있겠지 했는데 그런 취급을 받았다."
- '저 나무-시베리아 동토에 새긴 이름들' 곡에서는 '김 알렉산드라, 계봉우, 이상설 등 대학 도서관 한 구석에 박혀 남쪽의 역사에서 사라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곡은 가사도 직접 썼는데 이들을 기억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는 고려인들, 중국 동포들, 재일 조선인들에 대한 관심으로 처음 연해주를 방문했다. 그런데 거기서 정말 이 분들의 이름이 하나씩 나오는데 아, 정말 너무 죄송하지 않나? 독립을 위해서 저렇게 노력한 이들이 있는데 그런 뿌리를 전혀 기억 못하면서 지금 우리는 화려한 삶을 자랑하는 데만 급급한 거 아닌가 한다. 저라도 기억해보고 싶었다. 그 시대에 자신을 희생했던 이들, 목숨을 내놓은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싶었다."
- '그 쇳물 쓰지 마라'는 노래는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인데 지금의 노동현장을 보면 안타까운 순간이 많다. 그래서 이 노래는 옛날 얘기가 아닌 거 같다.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이렇게 죽으면 안 된다. 이러려고 태어난 사람 없다. 우리가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보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들이 더 힘들게 사는가를 기억하는 게 우리 몫이다.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고 죽어나가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GDP가 얼마니하며 화려한 얘기만 하는 게 정상적인 건 아니다."
- 아프고 슬픈 노래인데 어떻게 울지 않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 궁금하다.
"우는 것 때문에 노래를 못한 일이 꽤 된다. 예전에는 노래를 해야 하는데 반주만 하고 시작을 못한 일도 많았는데 그건 내가 정말 싫더라. 독하게 마음먹고 부르면 할 수 있다(웃음)."
-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중1때부터 기타를 쳤다. 군대 다녀와서 복학 했는데 기타 칠 사람 없다고 해서 노래패 장하라고 해서 하고 우리과 노래패가 잘 되니 다른 과도 만들고 단대노래패도 만들고 그렇게 기타 치다보니 어느새 졸업이었다. 당시에 통일노래한마당에 작곡해서 나갔는데 또 우리팀이 상을 받고 대학노래패에서 활동한 친구들이 모여 활동하다보니 그게 조국과 청춘이 됐고 그 때 만든 노래가 또 인기를 얻으면서 음악인생이 이어졌다.
그 때는 대학을 졸업하면 공장이나 시민단체 등에 투신한다는 개념이 있어서 나도 2년 정도는 뭐라도 하자고 노래마을에 들어갔다. 근데 이게 망하지 않고 잘 되네, 그럼 어떻게 나오나? 대부분은 하던 일이 망할 때 나왔는데 쉽게 나온다는 말은 못하고 남들이 다 떠난 다음에 나오는 게, 그게 내 젊은 시절이었다. 먹고 사는 일도 중요해서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 음악 하기 잘했다 싶은 때는 언제인가?
"제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한 3천 명 정도 알까?(웃음) 그런데 제 노래로 위안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있다. 보람된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뿌듯하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사실 여전히 힘든 작업이다. 나는 성과주의자가 아니다. 내가 뭘 했다, 얼마나 했다 그런 건 크게 관심이 없다. 그냥 그런대로 대견하다 정도라고 할까?"
- 이지상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
"저는 동상이나 기념비를 보면서 불편할 때가 많다. 훌륭한 말만 써놓으니까. 내 음악도 좋았던 거 싫었던 거 등 다방면이 있는데 뭐라고 규정하는 건 부담이다. 그래도 음악을 삶으로 알고 산다고 하는 정도이다. 무엇보다 음악은 내게 밥이다. 맛난 밥 아니어도 꾸준히 음악 할 수 있게 힘주는 흰쌀 한 톨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