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비가 내린다. 이번 비는 내게는 무척 반가운 비다. 우리집 텃밭에 막 싹을 틔운 새싹들에게 촉촉한 샤워도 시켜주고, 옮겨 심은 지 아직 2주가 채 되지 않아 시들시들해 보이는 모종들이 텃밭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비이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농부의 마음으로 맞이하는 비다.

나는 작년 말 서울의 동쪽 끝으로 이사를 왔다. 새로 이사 온 지역에서는 도시 농업을 권장하고, 구민들에게 구청에서 마련한 텃밭 분양을 해주고 있었다. 구청 소식지를 통해서 2월 중순에 텃밭 분양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분양 신청 기간에 텃밭 신청을 했다. 그리고 텃밭 분양 당첨 소식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2주가 지나도 분양 당첨 안내 문자는 오지 않았다.

구청 도시농업과로 연락을 했다. 그런데 도시 농업과 직원분께서는 내 이름이 분양 신청자 명단에 없고, 분양금을 선입금을 하지 않아서 신청자 명단에서 누락되었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내가 분양 절차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나도 모르게 나는 올해 꼭 텃밭을 하고 싶다고 직원분께 말했다.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올해 정말 텃밭 농사를 하고 싶었다. 전화 저편에서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이미 분양 당첨자 명단이 확정되었지만 취소한 구좌가 하나 있어서 바로 분양금을 입금하면 마지막 남은 텃밭 구좌를 줄 수 있다는 답변을 해주었다. 내 간절함이 통했던 것인지 운이 좋았던 것인지 나는 결국 원하던 텃밭 한 구좌를 얻을 수 있었다.

간절함 끝에 얻게 된 3.37평의 텃밭
 
 인천환경공단 운북사업소에서 영종도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친환경 주말농장 텃밭을 무료로 분양한다(자료사진).
인천환경공단 운북사업소에서 영종도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친환경 주말농장 텃밭을 무료로 분양한다(자료사진). ⓒ 인천환경공단
 
나는 국제회의 기획사다. 국제회의를 한국으로 유치하고, 유치된 국제 회의나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내 회의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국제회의 기획사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 일이 거의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올해 우리 회사에서 진행하기로 한 회의나 행사들이 취소되거나 하반기로 연기되어서 그렇다. 갑작스럽게 일이 줄고 재택근무 횟수가 늘어나고 시간이 많아졌다.

예상치 않게 찾아온 이 여유가 아직은 어색하고 부담스럽다. 항공, 관광, 호텔업계 등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업무 마감일을 의식하면서 기한에 맞춰 일하고, 행사 현장에서의 분주함에 익숙해져 있던 일상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고요함이 찾아왔다. 그리고 나에게는 어렵게 얻은 3.37평의 텃밭이 있었다.

내가 텃밭을 시작하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어머님이 텃밭을 핑계로 자식들 집에 더 자주 오셔서 자식들도 보고, 텃밭도 살펴 주실 수 있을 거라 내심 기대했다. 이 참에 어머님으로부터 텃밭 농사의 기술도 조금이나마 전수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텃밭 개장일인 3월 31일경까지도 코로나19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님의 서울 나들이도, 그로인한 텃밭 농사 기술도 직접 전수받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덜컥 어렵게 분양 받은 텃밭을 어떻게 가꿀지에 대한 부담감이 몰려 오기 시작했다.

나의 부담감을 눈치 채기라도 한 듯이 구청 도시 농업과에서 3월 말 텃밭 개장일을 안내하는 문자와 함께 '도시텃밭을 분양 받았는데 초보농부라서 어떻게 시작할지 고민이 많으시죠?'라는 제목으로 '서울농부포털' 온라인 무료 강좌 링크를 보내주었다.

나 같은 초보 농부를 위한 친절한 온라인 강의를 들으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주말 농장이나 소규모 텃밭 농사를 하는 분들의 블로그도 들어가 보고, 작물 별로 씨 뿌리기를 하는 작물과 모종을 심는 것이 좋은 작물, 심는 시기 등에 대해서도 알아보게 되었다. 이때부터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텃밭을 분양 받게 되었다고 자랑하고, 수확을 하게 되면 나누겠다는 공약도 했다.

드디어 3월 31일 우리집 텃밭 분양일이 되었다. 아침 일찍 남편과 함께 텃밭에 도착해서 16번 우리집 텃밭을 만났다. 생각보다 꽤 큰 밭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밭농사를 크게 하시는 시어머님께서는 3.37평에 무슨 작물을 얼마나 심겠느냐고 하셨는 내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크기의 텃밭이어서다.

나는 동영상 강의에서 배운 대로 밭에 있는 잔가지와 돌 그리고 뿌리들을 제거하고, 남편은 유기질 비료를 뿌리고, 두둑을 만들고 이 날은 2개의 두둑에 수미감자를 심었다.

150여 개의 개인 텃밭이 있는 곳이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나와 밭을 정리하고 거름을 주는 모습이 새 봄을 맞이하는 축제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동안 집과 회사를 오가면서 살다가 탁 트인 공간에서 생동감 있게 움직이면서 흙과 하늘을 가까이 마주하는 느낌이 좋았다. 처음 내가 텃밭을 한다고 했을 때 마뜩잖게 생각하던 남편도 쟁기로 땅을 고르고 거름주는 일이 싫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이런 게 '키우는' 사람들의 마음일까
 
 3월 31일 우리집 텃밭 분양일이 되었다. 아침 일찍 남편과 함께 텃밭에 도착해서 16번 우리집 텃밭을 만났다.
3월 31일 우리집 텃밭 분양일이 되었다. 아침 일찍 남편과 함께 텃밭에 도착해서 16번 우리집 텃밭을 만났다. ⓒ 문자영
 
밭을 정리하고 오니 이제 본격적으로 어떤 작물을 심을지 정해야 했다. 남편은 고추와 쑥갓, 머위를 키워보고 싶다고 했고, 나는 상추, 시금치, 비트, 적겨자채, 부추, 파, 바질, 토마토 등을 심어 보고 싶었다.

그 중에서 머위는 산에서 자라는 것을 채취해다가 밭에 심어야 하는 작물이라는 것을 알고 어머님께 부탁을 드렸다. 어머님께서는 우리집 텃밭 농사의 든든한 지원군이셔서 흔쾌히 머위를 구해다가 상추와 시금치 씨앗을 잘 포장해서 같이 택배로 보내 주셨다.

지금 우리집 텃밭에는 부추 7주, 청상추 6주, 아삭이 상추 6주, 비트와 적겨자채 각각 2주, 파 6주, 바질 3주가 모종으로 심겨져 있다. 그리고 어머님이 보내 주신 상추와 시금치 씨앗은 3개 두둑에 잘 뿌려서 새싹이 막 올라와 있다. 물론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머위도 한 두둑을 차지하고 있다. 가장 처음 심은 수미 감자는 아직도 새싹을 보여주고 있지 않아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너무나 궁금하다.

모종을 처음 심고 난 후에는 2~3일만에 물을 잘 줘야 한다는 글을 읽고는 주말에만 텃밭에 가려고 했던 계획을 접고 평일 오전 일찍 걸어서 40분 거리의 텃밭에 가서 물을 주고 왔다. 차로 가면 10분이면 되는 거리인데 내가 차를 운전하지 못해서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거리상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이지만 도시 텃밭이라서 아무래도 우리 집 바로 옆에 있지는 않다. 힘들게 걸어가서 바싹 말라 있는 모종에 물을 뿌려주고 난 후에 생기 있는 모습을 보니 내 갈증이 다 사라지는 것 같이 상쾌하고 뿌듯했다. 이런 마음이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마음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텃밭에는 아직 4개 정도의 두둑이 5월에 심어야 하는 토마토와 고추를 기다리고 있다. 봄비가 내린 후 우리집 텃밭의 모종들과 새싹이 자리를 잘 잡고 쑥쑥 자라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텃밭의 싱그러움이 자리를 잡아갈 때 즈음에는 코로나19 사태도 종식되고 소중한 일상이 다시 찾아오기를 바란다.

#도시 텃밭#코로나19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