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이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코로나19,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코로나19 사태 한가운데 놓인 보건의료노동자의 목소리를 알리고자 합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코로나19 일일 상황보고 체계를 통해 개별 의료기관의 문제를 중앙에서 취합하고, 지방의료원지부, 특수목적 공공병원지부 등 의료기관 특성별 간담회를 가지며 현장 고충을 한데 모아 제기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현장의 목소리'에 등장하는 인터뷰는 모두 보건의료노조 산하 지부의 노동자들의 목소리임을 밝힙니다. [편집자말]
3월 12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의료계 쪽에는 우선적으로 다 공급을 해드려서 사실 의료계에서 그렇게 부족하지 않다"
"아마 현장을 제가 의원님들보다 더 많이 다닌 것 같다"
"본인들이(의료진들이) 더 많이 갖고 싶어 하는 거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마치 전(全)방역체계가 방호복이 부족한 것처럼 말씀하시면 현장 사람들은 너무 섭섭한 것"

-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0312) 중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 발언 

장관의 이런 확신에도 불구하고 현장은 그렇지 않다. 감염병전문병원으로 지정된 공공병원부터 기존 중증 환자들을 치료하며 중증 코로나 19확진자를 돌보는 대학병원, 자체적으로 선별진료소를 운영하며 고군분투하는 지역의 민간 중소병원까지 보건의료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할 정도로 마스크와 보호복이 부족한 실정이다.

의료기관은 마스크를 더 많이 쓸 수밖에 없다. 검체를 채취하고 확진자를 진단할 때마다 마스크와 보호복을 갈아줘야 한다. 실내에서 환자들과 있기 때문에 오염됐다고 판단하면 바로 교체해줘야 한다. 의료인의 안전은 물론이고 환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의료기관의 적절한 보호장구 사용은 필수다. '마스크 대란'의 시국에서 이제는 마스크와 보호복 아껴쓰기를 넘어 다시쓰기까지 하는 진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사비로 마스크 사서 쓰는 현실
   
 다음날 다시 사용하기 위해 퇴근할 때 탈의실 옷장에 걸어둔 마스크
다음날 다시 사용하기 위해 퇴근할 때 탈의실 옷장에 걸어둔 마스크 ⓒ 보건의료노조
 
 A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마스크가 부족해 감염 우려가 있는 마스크를 벗어 벽에 걸어두었다가 소독제를 뿌려 재사용하거나 퇴근시 탈의실에 걸어두었다 다음날 다시 쓰고 있다. B 대학병원은 재고량을 인트라넷에 공개해 직원들이 알아서 아껴쓰게 하기도 한다.

공공병원은 다르지 않을까.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돼 확진자를 치료하고 있는 지방의료원 노동자들은 이렇게 토로했다.

"병원도 수급만 된다면 비용을 더 내고도 가져오고 싶어해요. 일반 직원에게 지급되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못하고 있어요." (C 지방의료원 노동자)
"병동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주지만 그 외 부서는 사서 쓰는 사람이 많죠." (D 지방의료원 노동자)


확진자나 의심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는 직원들은 개인이 알아서 직접 사서 쓴다는 말이다.

C 지방의료원은 보호복이 모자라 '깨끗하게' 재사용 하기도 하는 실정이다. 병원 앞 발열체크를 하는 곳이나 선별진료소에서 의심자를 만나지 않았을 때 보호복을 벗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조심히' 벗었다가 다시 착용하는 것이다. 복지부 지침 상으로 보호복 탈의 후에는 의료폐기물 상자로 바로 버려야 한다. 

중증 응급 환자를 보고 있는 F 상급종합병원의 응급실은 KF94 마스크가 없어 덴탈 마스크만 쓰고 있다. 연일 응급실 폐쇄 기사가 나오고 있는 상태에서 보건의료노동자는 불안하지만 그냥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자신의 안전은 물론 환자들의 안전도 보장하지 못하는 상태다.
 
 음압병실에서 사용하고 재사용하기 위해 걸어둔 N95 마스크
음압병실에서 사용하고 재사용하기 위해 걸어둔 N95 마스크 ⓒ 보건의료노조

무엇보다 마스크와 보호복 부족은 장비 부족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장비를 아껴야 하는 의료인들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없다.  C 지방의료원 노동자는 "간호사가 2인 1조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인데도 보호복이 부족하니까 혼자 들어가라고 한다"고 말했다. 숨쉬기도 힘든 레벨D의 보호복을 입고 일하지만 보호복을 아껴야 하니 원할 때 교대를 하거나 화장실에 갈 수도 없다.

다른 병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D 지방의료원 노동자는 "일주일 단위로 계속 지급해주겠다는 약속만 받아놔도 좋겠는데 그런 담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아껴 써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일하는 상황이라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루 이틀 재고가 있어도 불안할 수밖에 없는 근본 이유 생각해야

한 감염병전담병원의 기관장은 노동자들에게 '향후에는 확진자를 AP 가운(비닐 가운)만 입고 봐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D 지방의료원 노동자는 "확진자가 들어올 때 보호복을 함께 주지 않으면 줄 때까지 요구해서 받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불안감은 상당하다.

그래서 이번 복지부 장관의 발언은 현장의 토로를 배부른 소리로 규정해 버리는 부적절한 처사다. 대부분 기관에서는 재고량과 하루 사용량을 비교해 향후 며칠 사용 가능한지 손가락으로 세고 있다. 중요한 것은 향후 수급에 대한 보장이다.

병원협회를 통해서 마스크를 신청할 수밖에 없는 민간병원 노동자들은 충분한 마스크 구입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토로한다. 병원협회가 병원급의료기관에 보낸 공문에는 최대신청가능 수량 계산법이 정해져 있다. 이 계산법으로 계산해보면 모든 노동자들에게 1일 1개의 마스크 지급은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러니 청소 주차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마스크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물론 어느 것도 장담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개별 의료기관으로선 앞으로 보호구가 없어 확진환자 병동에 들어갈 수 없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수급계획과 보장이 없으면 당장 아끼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된다.

보호장구를 부적절하게 사용하면 오랜 기간 사투해야 할 보건의료노동자들이 확진자가 되고 원치않게 슈퍼 전파자가 될 수도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결정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안태진은 보건의료노조 정책부장입니다.


#박능후#복지부장관#마스크#의료기관마스크부족
댓글4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노동조합에서 일하다 퇴직 후 세계여행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