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영 ‘기명절지도’
국립현대미술관
그의 능력이 가장 잘 발휘된 화목은 단연 '인물화'와 '기명절지화'이다. 인물화는 주로 고사인물화나 도석인물화 등의 전통적인 주제를 다루었는데, 단순화된 인물 표현과 빠른 필치, 간결한 화면 구성을 특징으로 하여 빼어난 솜씨를 보였다. 특히 얼굴의 표정이나 옷가지 각 부분의 자연스러운 표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기명절지도 또한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과 차별되는 수준과 개성을 보인다. 기명절지도는 중국에서 발전하여 19세기 후반 장승업에 의해 조선에서 유행한 것이다. 이후 안중식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 한국 회화의 중요한 소재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이들의 계보를 이은 이도영의 기명절지는 이전 것과는 다른 모습이 있었다.
본래 기명절지도 속에 나오는 그릇들은 보통 중국의 기명들인데, 이도영의 작품에서는 삼국시대, 고려시대 등 우리나라의 청동기나 기명을 그리려는 노력을 한 것이 꽤 있다. 이러한 모습은 그의 한국 미술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뛰어난 솜씨에도 한국미술사에서 늘 장승업, 안중식의 아류로서 평가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너무 단순하게 바라본 결과였다.
이도영이 스승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인식은 이도영의 미술세계를 너무 좁은 관점에서 본 오류이다. 실제 이도영은 스승의 품안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근대 인식을 갖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였으며, 그의 노력은 열강들에 의해 새로이 들어온 언론이나 교육 등을 만나며 새로운 꽃을 피우게 된다.
그는 새로 발간되는 신문에 만화를 그리고, 잡지에 삽화를 그리는 등 새로운 미술 양식을 현실화하는 많은 노력을 하였다. 또한 학교에서 사용되는 교과서에도 많은 삽화를 그렸고, 대중적 인기가 있었던 딱지본 소설이나 잡지의 표지를 그리기도 하였다.
한국 만화계의 선구자로서의 이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