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쟁탈전
1951년 7월 10일 이후, 정전협상이 시작되면서 유엔군 공산군 양측은 협상을 파국으로 빠뜨리지 않기 위해 전면적인 공격은 자제했다. 그 대신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제한공격'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전쟁은 대규모의 전면전 형국이 아니었다.
유엔군 측은 협상과정에서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이를 타개하는 수단으로, 또는 공산군 측에 정전조건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고지쟁탈전을 택했다.
공산군 측에서도 정전회담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방법으로 빼앗긴 일부 진지를 탈환함으로써 군사력을 과시하려는 고지쟁탈전을 전개했다. 결국 양측 모두 정전협정 후 생길 군사분계선을 조금이라도 자신 쪽으로 유리하게 확보하고자 고지쟁탈전에 전투력을 집중했다.
그래서 중동부전선은 고지쟁탈전의 격전지로 351고지, 펀치볼,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수도고지, 저격능선, 백마고지 등에서는 치열한 고지 쟁탈전이 연일 벌어졌다.이는 마치 어린이들 땅따먹기놀이와 같은 이전투구로 진흙탕에서 개떼들의 싸움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번 회는 1952년 3, 4월 촬영의 한국전쟁 NARA 소장 사진 중심으로 엮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영복 지음 <6.25전쟁사>를 참고하여 썼음을 밝힙니다. 이 연재(박도 기자의 NARA 앨범)는 45회로 끝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