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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야만 할 오늘을 위해 '어머님 동지' 여러분들의 투쟁에 연대합니다."

밀양 영화고등학교 급식소 입구에 붙어 있는 대자보 제목이다. 총학생회장인 박경석 학생(3년)이 썼다.  1주일 가량 떨어지거나 훼손되지 않으면서 그대로 붙어 있다. 

급식소 종사자들을 비롯한 학교비정규직들이 오는 7월 3~5일 파업에 들어가자, 박 학생이 '연대 의사'를 나타낸 것이다. 맛있는 밥을 먹지 못하고 빵과 우유로 대신하더라도 '괜찮다'고 한 것이다.

박 학생은 "대자보를 붙여 놓았더니 학교는 별로 반응이 없다"며 "일부 학생들은 왜 파업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나 대부분은 대자보를 읽어 보고는 '우리 미래 같다'거나 '어머님들이 애정으로 보살펴 주셨는데 파업 들어가서 안타깝다', '연대하고 지지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밀양 영화고등학교 박경석 총학생회장이 급식소 입구에 붙어 있는 대자보다.
 밀양 영화고등학교 박경석 총학생회장이 급식소 입구에 붙어 있는 대자보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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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학생은 대자보를 통해 급식소 종사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냈다. 그는 "어머님들은 음식의 마술사라고 느껴지기도 한다"고 했다. 

"아마도 전국의 거의 모든 청소년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급식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 밀양영화고등학교에서는 삼시세끼를 매일 챙겨주시는 급식소 어머님들이 해주시는 급식이 집밥 보다 훨씬 친숙하기도 합니다. 금요일 부모님 퇴근 전에 집에서 혼자 저녁을 해 먹을 때면 밑반찬 몇 개와 맨밥으로 저녁을 때우거나, 그것마저 없을 때면 라면 하나로 때우곤 하는데요, 그럴 때면 점심 때 먹은 맛있는 급식이 하염없이 생각나곤 합니다.

딘가 몸이 불편한 학생들을 위해 따로 음식을 준비해 두시고, 겨울에 연기연습이다 촬영이다 하며 혹사시키는 바람에 늘 뻑뻑한 목 때문에 따신 누룽지가 그리울 때면 언제 해 두셨는지 김이 설설 나는 따끈한 누룽지가 뚝딱 나옵니다. 그럴 때면 분명 어머님들은 음식의 마술사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머님들이 사흘간 일손 놓는 덴 정당한 이유 있다"  

그는 학교비정규직들의 파업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는 "어머님들이 사흘이나 일손을 놓으시는 이유는 너무도 정당한 이유"라며 "요구사항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규직 임금 80% 수준의 임금인상, 교육공무직법 제정이다"고 했다. 

"그런 어머님들께서 7월 3일부터 5일까지 사흘간 일손을 놓으십니다. 마주칠 때면 늘 환히 웃으시며 반겨주시고,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늘 걱정해 주시던, 언제 먹어도 하루도 질리는 날이 없는 급식을 만들어 주시는 어머님들께서 학교에 출근하지 않으십니다. 그날은 여기 밀양영화고 급식실만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전국의 모든 학교의 급식소가 멈춥니다. 바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에 가입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총파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뉴스에 나와 '귀족노조'가 아이들을 볼모로 파업을 한다고 합니다. '강성노조', '악질 민주노총', '폭력집단'이라는 어려운 말들을 써가며 우리 어머님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어머님들이 사흘이나 일손을 놓으시는 이유는 너무도 정당한 이유입니다. 이번 총파업의 주요 요구사항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규직 임금 80% 수준의 임금인상, 교육공무직법 제정이 요구사항인데요.

여러분, 우리 어머님들의 임금을 정규직 임금의 80% 수준으로 올리자는 요구가 어려운 요구일까요? 수십kg이 넘는 건 예삿일이고 백kg도 넘는 재료들과 물건들을 수시로 들었다 옮겼다 하며, 수백개의 식판을 씻고, 여름이면 수십도를 훌쩍 넘는 조리실에서 천장 청소까지 해야 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정규직 말단 공무원보다 낮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박경석 학생은 학교비정규직의 임금이 낮아야 하는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학교비정규직이 "급식시간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유령이 아니라 함께 학교를 이루고 교육을 만드는 주체"라고 했다.
 
"학생들은 물론 교사, 공무원들에게까지 양질의 식사를 제공하는 우리 어머님들의 임금이 낮아야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요? 저는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우리 어머님들의 임금이 낮아야 하는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혹자들은 '공무원은 빡세게 공부해서 시험도 치고 별 노력을 다 해서 공무원이 되는데, 시험도 안치고 노력도 안 해놓고 안정적으로 일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해야지, 어디 감히 공무원 임금의 80%나 요구하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어머님들은 결코 안정적으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학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척 했지만, 정규직이 아닌 무기계약직이라는, 여전히 언제든 잘릴 수 있고, 부당하게 대우 받아도 말할 수 없는 '계약직'의 굴레에 갇혀 있습니다. 학생들의 교육을 함께 담당하고 있는 노동자임을 인정해 달라고, 급식시간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유령이 아니라 함께 학교를 이루고 교육을 만드는 주체임을 인정해 달라는 어머님들의 파업투쟁이 귀족노조의 근거없는 투쟁일까요? 저는 공부를 못해서 그런지 아직도 그런 말들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나와 우리를 위해 총파업에 연대한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남지부 간부들이 '총파업'을 앞둔 6월 27일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남지부 간부들이 "총파업"을 앞둔 6월 27일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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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학생은 '어머님들의 총파업에 연대 한다'고 했다. 그는 "저와 제 친구들 세대의 결말이 결코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 불안정 노동계급, 도시 빈민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총파업에 연대하려고 합니다. 누리고 살아야 할 모든 권리를 빼앗기고 결국엔 꿈과 희망마저 수탈당해 주변으로 눈길 한 번 돌리는 일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어진 청년-청소년 세대. 그저 내 인생 하나만 별 탈 없이 흘러가면 된다며 모두가 스스로 감옥을 짓고, 그곳에 자신을 가두는 저주에 걸려버린 우리 세대의 오늘이,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지혜와 진보의 사상을 거세당한 우리 세대가 걸어갈 운명이, 당연히 누려야할 것들을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자포자기 해야 하는 삶을 강요받아 온 우리 세대의 결말이 결코 비극으로 끝나지 않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와 제 친구들 세대의 결말이 결코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 불안정 노동계급, 도시 빈민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만큼 일하고, 일한만큼 받는 세상을 위해서, 모두가 차별 받지 않는 학교와 사회를 위해 어머님들의 총파업을 지지합니다."
 

"학교비정규직들의 투쟁은 청소년들의 인권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고 한 그는 "행복한 오늘을 누림으로써 당당한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삶과 학교와 사회를 열어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라고 했다.
 
"이번 총파업은 결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투쟁이 아닙니다. 50만 경남 청소년들의 인권을 위한 투쟁이기도 합니다. 저 거짓되고 허황된 '정상-자본가, 제도정치, 가부장제, 제도교육 등 국가의 폭력과 자본의 독점을 유지하는 모든 이들과 제도'의 세계를 박살내기 위해, 누군가의 머리 위에 군림해서 벌어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의 '나와바리'를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해야만 하는 학교현장을 바꾸기 위한 투쟁입니다. 행복한 오늘을 누림으로써 당당한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삶과 학교와 사회를 열어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입니다."
 

학교비정규직들을 '어머님 동지'라고 부른 박경석 학생은 "정당한 파업으로 불편해지는 것이라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불편해진다면 1년, 아니 10년을 불편해도 괜찮다"고 했다.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연대와 단결의 힘이 있습니다. 굳이 먼 과거의 역사를 호령하지 않아도, 국가의 주인이 우리임을, 가장 평범한 우리가 이 사회의 주인임을 온 세상에 확인했던 그 뜨거운 겨울을 기억하실 겁니다. 우리가 다시 한 번 힘 없는 청소년이,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힘없는 특수고용노동자, 힘없는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빈민, 농민이 이 세상의 주인임을 선언합시다. 연대의 어깨를 걸고 단결의 노래를 부르며, 해방의 몸짓으로 노동자들과 함께 우리가 학교현장의, 세상의 주인임을 선언합시다.

어머님들, 아니 '어머님 동지' 여러분! 꼭 이번 총파업 투쟁 승리하고 돌아오세요! 정당한 파업으로 불편해지는 것이라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불편해진다면 1년, 아니 10년을 불편해도 괜찮습니다! 어머님 동지들이 가시는 사람답게 사는 그 길 위에 작은 힘이나마 함께 하겠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총파업, 연대합시다! 투쟁!"
 
 
 밀양 영화고등학교 박경석 총학생회장이 급식소 입구에 붙어 있는 대자보다.
 밀양 영화고등학교 박경석 총학생회장이 급식소 입구에 붙어 있는 대자보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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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비정규직#총파업#밀양영화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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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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