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면서 늦가을까지 산과 들을 찾아다닌 이들에게 겨울은 길게만 느껴진다. "강원도 양양은 언제부터 봄꽃들이 피기 시작할까" 궁금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그들이다.
산과 들에서 꽃을 만날 수 없는 기간은 불과 두 달 남짓이다. 매년 같지는 않지만 짧은 경우엔 한 달, 길어야 두어 달이면 새롭게 피어나는 꽃을 만나는 고장이 양양이다. 1월 초에도 빠른 해엔 꽃을 만난다. 2019년엔 1월 중순에 핀 복수초를 만났고, 그로부터 한 주 뒤엔 매화까지 폈다.
사실 복수초와 매화는 가장 일찍, 날씨만 포근하다면 만날 수 있는 꽃이다. 늦어도 2월로 접어들면 전국 어지간한 고장마다 이 두 가지 꽃이 봄을 알린다.
본격적으로 봄꽃을 만나려면 아무래도 3월로 접어들어야 된다. 양지바른 산자락에 얼레지와 노루귀가 피기 시작하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꽃을 만나는 기회가 주어진다. 민들레, 민복초, 냉이, 꽃다지, 광대나물, 봄까치꽃, 꽃다지가 앞 다퉈 피니 꽃으로 향한 눈길 분주하다.
하지만 이런 꽃도 눈이 밝아야 찾을 수 있다. 거기에 걸음품 상당히 팔 각오도 필요하다. 밭둑이나 집 근처 봇도랑은 물론이고 실개천변도 샅샅이 살필 각오가 돼 있어야 눈에 들어온다. 수고 없이 대가가 주어지진 않는 게 세상 이치듯 자연도 수고하는 자에게 자신의 속을 보여준다.
2019년에 이미 만난 들꽃을 밝히면 복수초, 민들레, 봄까치꽃, 꽃다지, 느릅나무, 괴불주머니, 괴불나무, 생강나무, 진달래, 할미꽃, 노랑제비꽃, 노루귀, 광대나물, 돌단풍, 큰괭이눈, 가지괭이눈 등 그리 먼 길 나서지 않고도 손가락이 부족하다.
양양군은 벚꽃이 남대천 둔치 제방도로와 양양군청 옆 현산공원에 만개하면 또 다른 꽃들을 만날 수 있다. 남대천변이나 현산공원, 어성전계곡 주변부터 갈천과 오색마을 산과 들 냇가엔 일제히 꽃들이 피어난다.
제주도나 부산, 남해안과 같은 위도가 낮은 고장도 아닌 양양군에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까닭이 있다. 인제군과 홍천군, 평창군 등 내륙에 속한 고장들관 다른 지리적 여건 덕을 본다. 양양은 강릉과 삼척, 동해 등 백두대간의 동쪽에 위치한 덕에 상대적으로 포근한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서다.
내륙에서 복수초와 큰괭이눈을 만난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하면 양양에선 두릅이 밥상에 오르고 온갖 나물이 시장에서 손님을 기다린다. 꽃도 어쩌다 한두 송이 핀 걸 애지중지 아껴 담을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자식 많은 흥부네 가족, 주변 환경이 좋아 제법 작품이 될 만한 대상을 고르게 된다.
"청노루귀 좀 만나려면 언제 가면 돼요?"
"거 뭐죠? 이름이 아삼무삼한데… 칡넝쿨 같이 생긴 거에 괴상한 꽃 피는 거 있잖아요. 그거 촬영하려면 언제 가면 돼요?"
벌써부터 전화하는 이들마다 자신이 촬영하고 싶은 꽃이 언제 피는지 일색이다.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 못 해도 이전에 사진으로 본 꽃을 자신도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욕심도 이해된다. 다만 정확하게 대답하기 곤란한 노릇을 어쩐다. 3월 하순에 만나는 꽃이 4월 중순을 넘겨도 만나고, 5월에도 만나는 행운도 이곳에선 절대로 불가능하진 않으니.
다만 그런 욕심은 부려도 좋으니 부탁하건대, "꽃은 자연 그대로 보기 좋은 법이요. 제발 자신만의 멋진 작품 만들겠다고 말끔하게 주변을 정리하거나 연출하는 건 삼가 주길" 바란다. 묶은 잎과 줄기를 모두 뜯어내고,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까지 하는 건 도무지 생태 사진을 촬영하며 할 짓은 아니지 않은가.
거기에 또 하나, 자신만 촬영하겠다는 못 된 욕심으로 촬영을 끝내면 무료로 모델 되어준 꽃을 꺾어버리는 행동은 이젠 버리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