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진시황제 병마용 (중국 시안 병마용박물관)
김기동
진시황제는 중국 전국시대 여섯 나라와 전쟁하여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했다. 그래서 그는 중국을 통일한 후 자신의 호칭을 '왕'에서 '황제'로 바꾸고, 자신의 이름을 통일 '진나라'를 처음으로 연 황제라는 의미로 '진시황제'라고 부르게 했다. 중국 공식 역사 기록에는 진시황제의 아버지가 자초라고 돼있다. 여불위가 진나라 왕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자초다. 그러니까 진시황제 입장에서 여불위는 자신의 아버지를 왕으로 만들어 준 사람이다.
사마천이 쓴 중국 역사책 <사기>에는 진시황제의 출생을 기록하면서 "'조희'가 아들을 낳았으니 이가 진시황제다"라면서 "여불위가 조희를 이미 임신시키고서 자초에게 주었다"라고 했다.
여불위는 자신이 왕으로 만든 진나라 자초가 죽은 후에도 자초의 아들이 자신을 지켜줄지, 즉 계속해서 이권 사업을 보장해주고 축적한 부를 보호해줄지 염려됐다. 그래서 여불위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여자 무용수 조희를 자초에게 준다. 그런데 이때 자초에게 보낸 무용수 조희는 이미 여불위의 자식을 임신한 상태였다. 그래서 사마천은 <사기>에서 조희가 낳은 아들이 진시황제가 되었는데, 진시황제는 자초의 아들이 아니고 여불위의 아들이라고 기록했다.
그러니까 여불위는 자신의 현재 사업 아이템인 킹메이커 역할로 자초를 왕으로 만든 다음, 미래의 아이템(미래의 먹거리)으로 자초 이후에 왕을 할 자초 아들을 자기 아들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영원히 자신의 부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진시황제와 그 후 중국 통치자들
자신의 아버지가 경제력을 가진 여불위라는 킹메이커에 의해 왕이 되었고, 여불위가 자신의 진짜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진시황제는 돈, 즉 경제력이 가지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절감했을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경제력, 즉 자본의 힘에 의해 왕으로 만들어지고 그 덕분에 자신도 왕(황제)이 되었지만, 진시황제 입장에서는 경제력을 가진, 즉 자본을 가진 세력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경제력을 가진 세력이 자본이라는 무기를 사용하여 자신을 황제에서 밀어내고 다른 사람을 황제로 만들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시황제는 자신의 재임 기간 철저히 상업을 억제하는 '중농억상' 정책을 실시한다. 나중에는 상업을 억제하는 수준을 넘어 상업을 금지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진시황제는 사물의 가치를 나타내며, 교환을 매개하고, 재산 축적의 대상으로서 기능하는 돈이 기업 영리를 위한 자본으로 변하는 순간, 자본 자체가 엄청난 힘을 가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중국 통치자들은 누구나 경제력을 가진 상업가를 억제하는 정책을 펼친다. 한나라 시대 한무제는 '염철전매'라는 국영기업 전매사업을 실시하여 상업 종사자가 운영하던 철광산과 염전 사업을 국가 전매사업으로 바꾸기도 한다. 또 상업 종사자의 경제력을 견제하기 위해 상인의 경우 매년 재산의 6%를 세금으로 내게 하기도 했다.
최근 중국에서 유명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일을 보고, 중국이라는 국가가 공산주의 체제이기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3천 년 전부터 경제력, 즉 자본의 힘이 국가의 힘을 넘어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돈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