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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암의 양아들인 박시창 선생(1903~1986.6)이 1976년 원호처에 보낸 청원서. 박시청 선생은 청원서에서 "선친(백암)의 유일한 혈족이자 본인의 누나인 박영애 님께서 팔십이 넘은 고령에다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다"며 "누님이신 박영애가 유족원호 대상자가 될 수 있도록 경정 조치(고쳐서 바로잡는 일) 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보훈처의 모든 기록에서 백암의 친딸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수 없다.
백암의 양아들인 박시창 선생(1903~1986.6)이 1976년 원호처에 보낸 청원서. 박시청 선생은 청원서에서 "선친(백암)의 유일한 혈족이자 본인의 누나인 박영애 님께서 팔십이 넘은 고령에다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다"며 "누님이신 박영애가 유족원호 대상자가 될 수 있도록 경정 조치(고쳐서 바로잡는 일) 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보훈처의 모든 기록에서 백암의 친딸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수 없다. ⓒ 심규상
 
 
 백암의 양아들인 박시창 선생(1903~1986.6)이 1976년 원호처에 보낸 청원서. 박시청 선생은 청원서에서 "선친(백암)의 유일한 혈족이자 본인의 누나인 박영애 님께서 팔십이 넘은 고령에다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다"며 "누님이신 박영애가 유족원호 대상자가 될 수 있도록 경정 조치(고쳐서 바로잡는 일) 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보훈처의 모든 기록에서 백암의 친딸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수 없다.
백암의 양아들인 박시창 선생(1903~1986.6)이 1976년 원호처에 보낸 청원서. 박시청 선생은 청원서에서 "선친(백암)의 유일한 혈족이자 본인의 누나인 박영애 님께서 팔십이 넘은 고령에다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다"며 "누님이신 박영애가 유족원호 대상자가 될 수 있도록 경정 조치(고쳐서 바로잡는 일) 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보훈처의 모든 기록에서 백암의 친딸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수 없다. ⓒ 심규상
 
국가보훈처가 독립운동가 백암(白巖) 박은식(朴殷植) 선생(1859~1925, 아래 백암)의 친딸의 존재 여부에 대해 '모른다'고 밝혔다. 그런데 백암의 양아들인 박시창 선생이 생전에 직접 당시 원호처(국가보훈처 전신)에 "백암의 친딸을 원호해 달라"고 청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백암의 친딸의 존재를 파악조차 하지 못한 보훈처의 허술한 보훈 행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백암의 친딸과 그 후손들이 보훈연금 대상에서 제외되고 기록에서까지 지워진 배경에 의문이 쏠리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백암의 양아들인 박시창 선생(1903~1986.6)이 1976년 원호처에 보낸 청원서 전문을 확보했다. 백암은 <한국통사(韓國通史)>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를 저술한 민족사가이자 <황성신문>, 상해 <독립신문>, <한족공보>의 주필, 사장 등을 역임한 민족 언론인이다. 정부는 평생을 조국광복에 헌신한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2급)을 추서했다.

백암의 양아들인 박시창 선생 역시 1945년 8월, 한국광복군 상해지대장 등을 역임,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3급)을 받은 독립운동가다.

박시창 선생은 1976년 4월 원호처장에게 보낸 자필 청원서에서 자신에 대해 "백암의 후손으로 유족원호대상자로 선정, 별도로 연금 혜택을 받고 있다"며 "하지만 (규정상) 이중지원이 안 돼 선친에 대한 원호는 받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선친(백암)의 유일한 혈족이자 본인의 누나인 박영애 님께서 팔십이 넘은 고령에다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다"며 "누님이신 박영애가 유족원호 대상자가 될 수 있도록 경정 조치(고쳐서 바로잡는 일) 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박시창 선생 본인이 독립유공자(독립장)로 별도의 보훈연금을 받고 있어 이중지원이 안 되는 만큼 백암의 보훈연금 등 원호는 외동딸인 박영애가 받을 수 있게 조처해 달라는 청원이다. 박시창 선생은 또 "이는 이역만리 중국 상해에 묻혀 있는 백암의 영전에 바치는 도리이자 정도(正道)"라며 "절차상 여러 문제에 대해서는 협조할 테니 청원을 받아 들여 달라"고 강조했다. (백암의 유해는 지난 1993년 송환됐다)

이 청원서 원본은 한국역사박물관에 보존돼 있다. 박시창 선생은 이 같은 청원을 제출한 직후인 같은 해 5월, 제 5대 광복회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당시 원호처는 무슨이유에서인지 이 청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백암의 유일한 혈족인 박영애(朴英愛1894~1986)가 92세의 일기로 사망하기까지도 아무런 보훈 혜택이 없었고, 오히려 백암의 딸이라는 사실마저 역사에서 사라졌다.
 
 보훈처와 광복회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유공자후손 찾기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보훈처와 광복회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유공자후손 찾기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 국가보훈처
 
의문은 '독립유공자 발굴과 보훈 가족에 대한 보상과 예우' 업무를 주로 하는 국가보훈처가 여전히 백암의 친딸의 존재 여부조차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보훈처는 최근 백암의 외동딸(박영애)의 존재 여부를 묻는 오마이뉴스의 질의에 "1962년 유족 등록 당시 제출된 구비서류에는 박영애님과 관련된 자료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유족 등록 자료에 박영애와 관련된 기록이 없어 관련 사실을 '모른다'는 답변이다.

실제 백암의 양아들인 박시창 선생은 1962년 당시 백암의 유족을 등록하면서 친딸의 존재 사실을 누락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박영애의 손녀이자 백암의 증손녀인 윤복주씨(52)는 "한때 박영애 할머니께서 박시창 선생을 돌보기까지 했고, 중국에서 박시창 선생이 할머니께 보낸 편지에도 '누님'이라 칭하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박시창 선생 집안과 왕래가 있었다"며 "때문에 유족 등록을 하면서 할머니의 존재를 누락시킨 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훈처가 1976년 박시창 선생의 청원서를 받고서도 백암의 유족에 대한 기록을 정정하지 않은 것은 보훈처마저 관련 업무를 소홀히 한 방증으로 보인다.

윤복주씨는 "이후에도 보훈처에 할머니의 존재를 알리려 노력했다"며 "그런데도 시정되지 않았고 보훈처의 모든 자료와 기록에서 할머니 존재와 이름은 여전히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보훈처는 지난 1993년 백암의 유해송환과 현충원 안장 당시에는 박영애의 후손(외 증손자)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연락을 끊은 상태다. 보훈처는 또 박영애와 관련된 오마이뉴스 보도이후에도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고 있다.
 
 보훈처와 광복회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유공자후손 찾기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보훈처와 광복회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유공자후손 찾기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 국가보훈처
 
박유철 현 광복회장(1938~)은 박영애 존재 자체를 '숨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보훈 가족 발굴 업무를 총괄하는 보훈처장과 광복회장을 맡아 오랫동안 일하면서도 정작 백암의 친딸과 그 후손의 존재를 밝히지 않은 때문이다. 박유철 광복회장은 박시창 선생의 아들이자 백암의 양손자다. 특히 그는 독립기념관장(1995~2001), 보훈처장(2004~2007.3), 제19대부터(2011년) 지금까지 광복회장을 맡고 있다.

이에 대해 박유철 광복회장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고모(박영애)와 고모부에 대해 알고 있고 뵌 적도 있다"며 "하지만 언제부턴가 (고모 후손들이) 연락을 해 오지 않아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모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박영애 후손들을 찾을 생각이 있냐"는 물음에는 "어디 계신지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영애의 후손들은 "여전히 박유철 회장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다"고 답했다.

박영애의 손녀인 윤복주씨는 박유철 회장에게 쓴 오마이뉴스 기고를 통해 "간절히 부탁드리오니, 박영애 할머니가 백암 박은식 선생님의 친딸임을 정확히 말씀해주시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관련 기사: 백암 박은식의 증손녀가 광복회장에게 보내는 편지)

한편 보훈처와 광복회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의 희생을 기억하고 선양한다며 '독립유공자후손 찾기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박은식 선생#박시창 선생#박유철 광복회장#국가보훈처#박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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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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