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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을 기단으로 삼은 석탑

경주 남산의 용장사지삼층석탑은 정식 명칭이 용장사곡삼층석탑이다. 용장사지삼층석탑이라고 하면 탑 소유자가 용장사라는 뜻이 되지만, 용장사곡삼층석탑이라고 하면 용장사가 있던 골짜기에 있는 탑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부르면 용장사 소유가 아니다.

용장사곡삼층석탑은 경주 남산에서도 가장 도드라지는 석탑이다. 다른 탑이 산중턱이나 골짜기에 자리 잡아 산 그림자에 묻힌 반면에 솟아오른 능선에 자리 잡은 탓에 우뚝 솟은 자태를  멀리까지 뽐낸다. 골짜기 건너편인 봉화대능선에서도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보인다. 
 
사진1.봉화대능선에서 바라본 용장사곡삼층석탑 골짜기 건너편인 봉화대능선에서도 용장사곡삼층석탑이 훤히 보인다
사진1.봉화대능선에서 바라본 용장사곡삼층석탑골짜기 건너편인 봉화대능선에서도 용장사곡삼층석탑이 훤히 보인다 ⓒ 김경성
 
용장사곡삼층석탑은 1층 기단에 3층으로 올린 석탑이다. 2층 기단에 탑을 올리는 신라석탑 전형과 기법에서 기단이 1층으로 줄어들었다.
 
용장사지삼층석탑 살결이 하안 남성전사를 닮았다.
용장사지삼층석탑살결이 하안 남성전사를 닮았다. ⓒ 김경성
 
혹자는 이를 두고 남산을 1층 기단으로 삼았으니 2층 기단 탑이라 부르자고 한다. 하지만 남산 전체가 아니라 탑이 선 자리 아래에 자연석을 1층 기단으로 삼았다고 해야 한다.

위 사진에서 1층 기단이라고 해도 억지가 아닐 법한 반석이 선명하다. 둘레에 흙 마당은 반석을 기단이라 여길 효과를 더욱 높여 놓았다.

가까이 다가서면 새하얀 살결을 뽐내는 건장한 남성 전사를 떠오르게 한다. 덩치가 큰 감은사지삼층석탑은 물론이고 불국사석가탑에 비해서도 작은 체구지만, 인상은 무척 강렬하다.

석질이 나빠서 곡면이 많이 닳아버린 감은사지삼층석탑이 비할 바가 아니다. 석질이 좋은 편에 속하는 불국사 석가탑이나 장항리사지석탑, 그리고 황복사지삼층석탑보다 더 매끈하고 날카롭다. 감은사지삼층석탑, 불국사석가탑, 장항리사지석탑, 황복사지삼층석탑 모두 기단에 버팀기둥이 두 개인데 이 탑은 버팀기둥이 하나로 줄어들었으나 화려함은 결코 후퇴하지 않았다.   

 
지암곡 제3사지삼층석탑 반석을 깍아 기단으로로 삼았다
지암곡 제3사지삼층석탑반석을 깍아 기단으로로 삼았다 ⓒ 김경성
 
자연석을 1층 기단으로 삼는 기법이 이 탑뿐이라면 우연이나 변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암곡 제3사지 삼층석탑을 보면 경향이나 유행 같은 전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단을 따로 만들지 않고 반석을 다듬고 홈을 파서 탑을 올려놓았다.

자연반석을 활용해 기단을 줄이거나 생략하는 기법은 남산이라는 험한 지형에서 원인을 찾는다고 한다. 바로 평지에 비해 공사하기가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기단에 버팀기둥(탱주)이 하나로 줄어든 까닭 또한 공사하기 어렵다는 문제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용장사곡삼층석탑은 쌍탑이어야 한다
 
용장사곡석탑유구 용장사곡삼틍석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름도 실체도 규명되지 않고 서 있다
용장사곡석탑유구용장사곡삼틍석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름도 실체도 규명되지 않고 서 있다 ⓒ 김경성
 
여행 관련 자료나 방송 등에서도 용장사곡삼층석탑을 소개할 때는 이 탑 하나만을 보여준다. 그런데 5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석재유구가 하나 있다. 이름조차 얻지 못한 채 표지판 하나 없이 버려진 듯 서있다. 편의상 '용장사곡석재유구'라고 부르기로 한다.

크기가 같은 직육면체 자연석 4개는 기단을 받치는 갑석으로 짐작되고, 그 위에 올려놓은 정육면체에 가까운 돌은 윗부분 바깥둘레를 깎아서 짜 맞춘 방식으로 세운 탑에 몸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몸돌에 모서리기둥(우주)을 새기지 않았다. 통일신라시대 일반적인 탑 양식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모서리기둥을 조각하지 않는 기법은 벽돌 탑을 모방한 석탑, 즉 '모전석탑'을 본뜬 양식과 비슷하다.

 
남산동동탑,용장계지곡삼층석탑,서악동삼층석탑 경주에 모전석탑 양식으로 세 탑이 남아있다
남산동동탑,용장계지곡삼층석탑,서악동삼층석탑경주에 모전석탑 양식으로 세 탑이 남아있다 ⓒ 김경성
 

이런 양식은 용장계지곡삼층석탑과 서악동삼층석탑, 그리고 남산동동서삼층석탑에 동탑에서 볼 수 있다. 기단을 사각형화강암으로 깎아쌓고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기지 않았다. 지붕부분(옥개부)도 벽돌탑에 층층모양으로 깎았다. 감은사지삼층석탑을 비롯한 일반적인 방식 탑에서 지붕을 매끈하게 깎아서 건물지붕처럼 표현하고 몸돌 모서리에 기둥을 새긴 것과는 완전히 다른 기법이다.

 
감은사지삼층석탑 통일신라 초기 탑 답게 우람한 풍채를 자랑한다
감은사지삼층석탑통일신라 초기 탑 답게 우람한 풍채를 자랑한다 ⓒ 김경성
 

백제는 탑 하나에 금당 하나를 세우는 1탑 1금당이다. 탑 하나에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 하나가 자리 잡는 양식이다. 황룡사9층목탑을 백제 사람 아비지가 만들었다는 점에서 황룡사에 탑이 하나임도 설명된다.

그러나 신라는 2탑 1금당으로 배치한다. 감은사지, 장항리사지, 불국사, 남산 기슭에 있는 염불사지와 남산동동서삼층석탑도 2탑 1금당 방식을 잘 지키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 불국사와 남산동동서삼층석탑은 형식이 다른 두 탑을 나란해 세운 이형탑이다. 불국사는 전탑에 목탑기법을 가미한 일반적인 양식인 석가탑과 목탑을 본뜬 다보탑으로, 남산동동서삼층석탑은 모전석탑을 본뜬 동탑과 일반적인 양식인 서탑으로 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용장사곡석재유구도 용장사곡삼층석탑과 짝을 지어주자는 주장이 있다. 바로 산 아래에 같은 기법으로 남산동동서삼층석탑이 서 있기 때문에 용장사곡삼층석탑이 '쌍탑'이라고 해도 무리한 설정이 아니라는 논리다.

 
남산동동서삼층석탑 모전석탑양식과 통일신라 일반적인 형태 탑이 이형탑으로 서 있다.
남산동동서삼층석탑모전석탑양식과 통일신라 일반적인 형태 탑이 이형탑으로 서 있다. ⓒ 김경성
 
그런데 오랜 세월 동안 이 유구가 이름 얻지 못한 까닭은 용장사곡삼층석탑을 용장사탑으로 확정하지 못한 까닭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용장사곡삼층석탑 남쪽 바위 언덕 아래에 용장사터가 있다. 그런데도 용장사탑으로 확정하지 못한 까닭은 용장사터 아래쪽에도 석탑 유구가 발견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산에 수많은 절이 있었고, 용장사곡에도 많은 절이 있었다. 절이 촘촘하게 자리 잡았다는 짐작은 탑 소유자를 확정하는 데에 가장 큰 장애요인이다.

이용호 경주남산문화해설사는 "용장사곡석재유구를 석탑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했다. 이 해설사는 "아래에 있는 직육면체 네 개를 석탑에 갑석이나 기단 돌 일부로 본다고 해도 위에 올려놓은 정육면체는 아래에 촉이 있다. 탑을 이루는 어느 부분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고 했다.

그는 "남산을 찾는 많은 사람이 이 유구를 보고는 석탑에 썼던 부재 일부가 아닐까 하는 추측은 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석탑 가운데에는 이 석재와 유사한 구조가 없기 때문에 양식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 유구는 원래 쓸모가 무엇인지조차 규명되지 않았다. "부처님 좌대 일부가 아닐까도 짐작하는데, 비슷한 양식으로 발견된 것이 없기 때문에 주장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고 했다.

용장사곡석재유구가 탑이 아니라면서도 다른 그 무엇인지도 전혀 밝혀 내지 못했다. 유물은 있는데 무엇인지 모르는 백지상태로 남아있다. 형체는 있는데 정체는 없는 형용 모순 같은 유물이다.

유물은 그 자리에 존재하는 분명한 까닭이 있다. 그 자리에 서서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알아듣는 말은 얼마 안 되지만, 눈을 뜨고 바라보면 귀에도 들린다는 평범한 진리를 또 한 번 되새긴다.  
 

#경주남산#석탑#용장사곡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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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화도 쓰고, 시, 동시도 쓰고, 역사책도 씁니다. 낮고, 작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 곁에 서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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