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번 학기에는 어떤 강의를 들어야 할지 고민하던 와중에 강의 목록에서 '상속 설계'라는 강의를 발견했다. 단순히 '상속'이라는 단어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이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강의계획서를 찬찬히 살펴봤다.

강의계획서에서는 이 강의를 '사후에 자신의 자산을 효율적으로 상속하는 방법과 다음 세대가 체계적으로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공부하는 강의'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나는 흥미로운 강의라고 확신했고, 바로 수강신청을 했다.

교수님은 법에 의한 상속보다 유언에 의한 상속이 우선한다면서, 상속에 있어서의 유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유언은 상속 수단,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얼마 안 있어, 교수님은 50세가 됐다고 가정하고 유언을 작성하라는 과제를 내주셨다. 총 3페이지 분량을 요구했는데, 1페이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유언을 작성했는지를, 2페이지는 유언 본문을, 3페이지는 유언에는 적을 수 없는,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으라고 했다. 
 
 유언을 미리 작성해 본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유언을 미리 작성해 본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 unsplash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과제에 몰입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정말 50세라도 된 것처럼 유언을 적어 나갔다. 미래의 나의 자녀와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도 굉장히 많았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과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찰나, 교수님이 왜 하필 나이를 50세로 가정하라고 했는지 궁금해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교수님은 대학생들의 부모님이 대부분 50대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나의 부모님 역시도 50대이고, 나의 부모님이 몰입해서 유언을 작성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 무서웠다. 부모님이 금방이라도 나의 곁을 떠날 것처럼 느껴졌다. 문득 부모님이 나에게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스쳤다.

"엄마는 너희 때문에 살아."
"죽을 때까지 자식 걱정하는 게 부모 마음이야."


그리고는 나의 부모님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지금 살고 있는 삶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나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딱 하나였다. 

"우리 엄마, 아빠 많이 힘드셨겠구나..."

'역지사지'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사자성어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그만큼 사람들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부모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유언을 작성하면서, 처음으로 부모님 입장에서 생각해 본 것 같다.

나의 부모님은 올해로 16년째 같은 자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고 계신다. 때가 되면 테이블의 연탄을 갈아야 해서 새벽 5시는 돼야 집에 들어오신다. 집에 들어와서는 막둥이 학교 보낼 준비하랴, 아침 준비하랴 바쁘시다. 부모님은 우리 삼 형제를 위해서 이런 삶을 사셨고, 지금도 살고 계신다. 나는 부모님에게 너무나 감사하고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리라 굳게 다짐했다.   

유언을 미리 작성해 본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부모님의 노고를 다시 한 번 가슴속에 새길 수 있었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언을 미리 작성해봤으면 한다. 물론, 내가 유언을 작성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느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말이다.

#유언#상속#부모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