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흐른다. 또 흐른다. 유가족이 흐느꼈다. 사회자도, 취재기자도 눈물을 연신 훔쳤다.
14일 오후 2시 아산시 공설봉안당에서 진행된 유해안치식은 내내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날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장(아래 공동조사단)과 아산시는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서 수습한 200여 구의 유해 안치식을 거행했다.
박선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장(충북대 명예교수, 아래 공동조사단)이 '한국전쟁 아산시배방읍 설화산희생자신위' 앞에 섰다.
"유해발굴을 하면서, 감식하면서 참혹한 현실에 내내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다음 순간 박 단장의 목소리가 심하게 뭉개졌다.
"… 뭐가 진실이고 정의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가 흐느끼며 말했다.
"유가족들께 죄송합니다…. 이 말씀밖에 드릴 게 없습니다…." 사회를 맡은 안경호 49평화재단 사무국장이 물기 묻은 목소리로 안치식을 하기까지 경과를 설명했다.
"두 살배기 아이 유골이 엄마 등에 업힌 채 드러났습니다. 어린아이의 유해가 불에 그을려 있었습니다…. 옥비녀, 은비녀와 함께 아이를 부여잡은 부녀자의 유해가 무더기로 발굴됐습니다. 어린아이거나 부녀자거나, 노인들이었습니다…."
희생자들은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로 학살됐다. 가해 책임자는 경찰이다. 또 경찰의 지시를 받은 대한청년단(청년방위대, 향토방위대)과 태극동맹 등 우익청년단체들이 학살을 주도했다.
1951년 중리 현장에서 시어머니를 잃은 구순이 넘은 장선식(93) 씨와 그의 손자인 명주철씨(천안 거주)도 유해 앞에 섰다. 명씨가 술잔을 올리자 장씨가 "어머니..."하며 울먹였다. 67년만의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만남이다. 그는 참석자들에게 "다시는 이런 끔찍한 세상이 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부친을 잃은 김광욱(73)씨는 "아버지..!"를 외치다 설움을 토해냈다. 김장호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 아산유족회장은 "임시안치시설(세종시 추모의 집)에 모시게 돼 비통하다"며 "빠른 시일 내에 양지바른 곳에 편히 모시겠다"고 약속했다.
이창규 아산시장 직무대행(부시장)은 "아직도 아산에는 유해가 매장돼 있는 곳이 많다"며 "중앙정부의 관심과 국회의 입법을 통해 진상규명과 유해발굴이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아산시는 민간인 희생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장명진 유해발굴아산지역대책위원회 장명진 대표는 "자기 민족을 가장 많이 죽인 이승만 정권을 영원히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령들을 위로하는 안치식은 불교(도철 스님), 천주교(김용태 신부님), 기독교(이윤상 목사님)의 종교의식과 약식 전통제례의 순서로 진행됐다.
안치식 후 72개 상자에 담긴 200여 구의 희생자 유해는 암매장지였던 아산시 배방읍 수철리를 거쳐 세종시 추모의 집에 안치됐다. 안치식 이후 만난 박 단장은 "(이번 유해발굴로) 트라우마가 생겼다"며 "어린아이들만 만나면 몇 살이냐고 묻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가 몇 번씩 되뇌었다.
"이제 (유해발굴 일도) 그만해야겠어요…. 그만해야겠어요..." 유해의 나이, 특징 등을 밝히는 '유해발굴 보고회'는 오는 29일 오전 11시 아산시청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