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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 법원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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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변호사이자 독립운동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최근 사법부에서 벌어진 '법관 사찰'과 '박근혜 청와대 재판 개입 의혹'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한인섭 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단칼에 잘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전기 <가인 김병로>를 펴낸 한 교수는 지난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이럴 때마다 가인(김병로의 호) 선생의 행적을 한번 돌아보게 된다"라며 "특정 사건을 놓고 국정원, 청와대 민정 같은 곳에서 협상하려 하고 보고 같은 걸 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어 "원세훈 재판 등 민감사안에 대해 (대법원) 행정처와 청와대 민정 간에 의사소통이 오가는 일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이승만 정부 당시에 안윤출 판사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화를 소개했다.
안 판사는 지난 1952년 야당소속이었던 서민호 의원의 구속집행정지를 결정했다. 서 의원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집권 연장을 위한 개헌에 반대해 현역 대위를 총격하고 구속됐지만, 국회는 석방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법률로 국회가 석방결의안을 통과시키면 즉시 석방조치를 하게 돼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시행하지 않았고, 이에 안 판사가 구속집행정지 결정으로 서 의원을 석방시켰다. 그러자 안 판사는 살해 협박에 시달렸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안 판사의 체포까지 지시했다. 이에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은 안 판사를 피신시키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말했다. "판사의 판결은 대법원장인 나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것이다.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절차를 밟아 상소하시오."그러면서 한 교수는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은) 이렇게 단칼에 잘랐다"라며 "원세훈 재판에 문의나 요청이 있으면 법원행정처는 협의나 보고를 할 게 아니라 특정재판에 대한 언급은 불가하다면서 단칼에 잘랐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이어 "정권의 외압과 종용의 조짐이 보이면, 대법원장부터 확고하고 단호하게 잘라버려야 한다"라며 "그러면 법원행정처 판사들도 그 기조에 따라 움직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행정처 판사들이 만든 문건을 보면, 도저히 판사들이 자기 손으로 써낸 문건이라고 믿겨지지 않는다"라고 한탄했다.
또 "판결의 전후에 판사의 동향을 체크하고, 판사들의 임지(발령지)와 사건배당에 불공정한 외양(unfair-partial appearance)을 보인 것만으로도 법관윤리의 기본을 어긴 것"이라며 "법관은 공평무사하고 청렴하여야 하며, 공정성과 청렴성을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아니한다"라는 법관윤리강령 3조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