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9일, 어머니의 암 투병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해 대출 보증을 섰다가 거액의 빚을 떠안은 20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관련 기사 :
친구 위해 빚보증 선 20대 남자가 자살했다).
스물여덟 청년 영환(가명)이 생을 마감했다. 영환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와서 낯선 여자와 만났다. 그리고 그 둘은 함께 이승을 달리했다. 그는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친구의 부탁으로 보증을 서서 6천만 원이라는 거액의 빚을 졌고 빚을 갚는 과정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친구의 어머니 암 치료 병원비 마련을 위해 보증을 섰지만, 친구의 어머니는 사망하고, 친구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친구의 죽음으로 빚을 떠안은 영환은 울산의 한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위험물을 취급하는 공장이었다. 밤낮으로 일했고 주변의 도움을 받았지만 6천만 원이라는 큰돈을 갚을 길은 막막했다. 고된 일의 연속이었다.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친구는 왜 나에게 이렇게 큰 짐을 내게 주었나. 그는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한다.
스물여덟 영환의 죽음은 안타깝고 기가 막힌 일이다. 우리나라 공공의료가 제대로 되었더라면 암 투병에 드는 비용이 적었다면, 이런 비극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를 위해, 친구를 위해 같이 희생했던 그 젊음은 지금쯤은 새해를 맞고, 봄이 되면 또 다른 꿈을 꿀 수도 있었을 것이다. 친구 또한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머니의 죽음에 따른 슬픔 못지않게 암 투병 뒤에 남은 많은 부채와 주변 사람들에게 신세를 진 부채로 인한 고통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이십대 후반의 청년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짐이다.
암치료에는 돈이 많이 든다. 사례를 보자.
사례 1) 폐암4기 환자 A씨는 새로 나온 항암 주사제를 한 번 맞는데 드는 비용이 340만원으로 넉달가 치료비만 무려 2천여만원이 들어 결국 30년간 살아온 집을 내놨다.사례 2) 유방암 환자 B씨는 기존 항암제 치료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신약으로 바꾸어25차례 항암치룔르 진행, 결국 총 1억 813만원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그간 모은 돈을 쏟아부었고 나중에는 집까지 팔아야했다. (출처 : 건강보장성 강화 홈페이지)국민건강보험으로는 암 치료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은 63%이고(OECD최하위권) 입원치료 보장률은 55%로 OECD국가 가운데 꼴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민간의료보험가입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먹고 살기 힘든 소득하위층은 민간보험가입도 어렵다. 그리고 큰 질병앞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한 자료에 따르면(관련 기사 :
소득 수준 낮을수록 민간보험 가입률 낮고 보험 개수도 적어) 소득 하위 20%의 민간의료보험 가입률은 37.4%로 상위 20%(95.2%)에 견줘 크게 낮았다. 납입한 보험료 대비 수령 보험금 비율을 보면 소득 하위 20%는 6.71%로 상위 20%의 13.2%의 견줘 절반 수준이었다. 가난할수록 오히려 보험료 혜택도 많이 받지 못했다. 아파도 병원에 가기 꺼려서이다.
병원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한 적 있는 사람이 전체 국민의 34%이고, 국민의 10%는 위험한 의료 사각지대에 있다. 국가의 공공보험은 턱없이 부족하고, 가난한 이에게는 민간의료보험조차 높은 벽이다. 누구에게나 질병에 걸리면 한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는 상황은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른다. 극단적 상황까지는 아니어도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영환, 또 영환의 친구와 같은 사례는 있을 것이다.
정부는 '문재인 케어'를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의사협회의 반대로 주춤하고 있다. 국가는 부자지만 공공의료는 턱없이 허술한 나라. 많은 이들이 지금 이 순간 질병치료를 위해 살던 집을 팔거나 제2금융권까지 돈을 빌리러 다닐 것이다. 곧 소득 3만 불을 바라본다고 한다, 한류관광의 주요 테마는 한국의 '눈부신 의료기술'이라 한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서른도 넘기지 못한 한 청년이 친구의 의료비 빚보증을 섰다가 생을 마감했다.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생을 정리하기 위해 먼 바닷가로 가던 그의 하루는, 그의 아침은 어땠을까.
덧붙이는 글 |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러나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졌다면 막을 수 있었던 비극에 대해 기록 남기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