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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입니다. 단풍 구경 집에서 할만하지요?
우리 집입니다. 단풍 구경 집에서 할만하지요? ⓒ 김학현

 “단풍 구경이요? 집주변에 단풍이 지천인데 어딜 갑니까? 울긋불긋 불꽃 향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단풍들이 나 좀 봐주오, 난리 블루스랍니다. 우리 집으로 오세요!”
“단풍 구경이요? 집주변에 단풍이 지천인데 어딜 갑니까? 울긋불긋 불꽃 향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단풍들이 나 좀 봐주오, 난리 블루스랍니다. 우리 집으로 오세요!” ⓒ 김학현

"단풍 구경 안 가요? 지난 가을 갔던 백양사도 좋고 강천산도 괜찮던데요?"
"단풍 구경이요? 집주변에 단풍이 지천인데 어딜 갑니까? 울긋불긋 불꽃 향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단풍들이 나 좀 봐주오, 난리 블루스랍니다. 우리 집으로 오세요!"
"그래요? 참 좋겠다...."

그.리.고. 말.이. 없.었.다.

너무 과했나요? 제 오버하는 자랑질(?)에 저쪽에서 기가 죽은 모양입니다. 다시는 말을 잇지 못하네요. 온다간다 반응도 없고요. 단풍 구경 가자고 한껏 들떠 전화했는데, 한방에 눕힌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너무 기세피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미 선을 넘었으니 어쩌겠습니까.

전화를 끊고 한참을 미안한 생각에 일손이 안 잡힙니다. 그러나, 하지만, 그러하지만, 허나, 전화는 이미 끊겼고 하는 수 없죠, 뭐. 그리 호들갑스럽게 집 주변 자랑을 한 김에 진짜로 자랑을 하고파집니다. 전화한 친구에게만이 아니고 만천하에 자랑질(?)을 할 의무감이 생겼습니다. 허.

우리 집 자랑 좀 하겠습니다

 색깔 곱지요? 국화도 부끄럽게 얼굴을 내미는 가을입니다.
색깔 곱지요? 국화도 부끄럽게 얼굴을 내미는 가을입니다. ⓒ 김학현

 억새도 예쁘게 바람에 흔들입니다. 굳이 억새 보러 하늘공원으로 갈 필요가 있을까요?
억새도 예쁘게 바람에 흔들입니다. 굳이 억새 보러 하늘공원으로 갈 필요가 있을까요? ⓒ 김학현

 우리 집 자랑은 뭐니 뭐니 해도 가을입니다. 가을은 물드는 계절이잖아요. 총각도 가슴에 헛바람의 물이 들고, 처녀도 마음에 사랑의 물이 드는. 우리 집도 물이 든답니다.
우리 집 자랑은 뭐니 뭐니 해도 가을입니다. 가을은 물드는 계절이잖아요. 총각도 가슴에 헛바람의 물이 들고, 처녀도 마음에 사랑의 물이 드는. 우리 집도 물이 든답니다. ⓒ 김학현

우리 집요? 안면도에 있답니다. 여기로 말할 것 같으면, 지난 1월초에 이사와 지금까지 10개월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집 주변이 너무 아름답답니다. 제 마음을 압도하죠. 물론 겨울은 겨울대로, 아 아니다. 겨울은 그리 아름답다고까지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언덕배기 위에 있기에 눈이 와 쌓이면 들고나는 데 많은 불편이 따르니까요.

물론 겨울에도 정경은 '트로이메라이'죠(슈만의 <어린이정경>을 떠올리며 한 비유?). 비유가 좀 '거시기'했나요? 하여튼 언덕 위에 하얀 집이라고. '정당교회'라는 건물과 어울려 얼.매.나 예.쁘.게.요? '언덕 위에 하얀 집',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 말 아녜요?

그렇습니다. 그 집이 바로 우리 집이랍니다. 겨울의 불편함을 감수하기만 하면 그림 같은 곳이죠. 밤새 눈이 내리면 아침 일찍 일어나 길이 100m쯤의 너비 4~5m의 길을 쓸 각오만 하면 됩니다. 까짓 거. 60대인 저도 그렇게 지내니까 조금만 더 젊은이라면 거뜬하겠죠.

봄은 봄대로 아름답습니다. 하얀 목련이 흐드러지게 핍니다. 자목련도 한 그루 피고요. 동백이 피어오르고 그 삶을 다하여 땅 아래로 질펀하게 자신의 영역 표시를 하는 때죠. 누가 그랬잖아요. 동백은 두 번 꽃을 피운다고. 나뭇가지에서 한 번, 땅 위에서 한 번. 살아서 한 번, 죽어서 또 한 번. 맞아요. 꽃봉오리가 온전한 채 땅에 떨어지는 꽃이 바로 동백이랍니다.

우리 집 주변으로 동백이 둘러서 있습니다. 사철나무와 편백나무로 울타리가 되어 있고요. 소철도 몇 그루 있고요. 이쯤 되면 상상이 가시죠. 언덕 위에 하얀 집인 우리 집이 어떨 거라는 거. 하하하. 여기 사진을 다 올리지는 않을 거예요. 왜냐고요? 다 올리는 건 신비함을 가시게 하는 거라 좋은 방법이 아니거든요. 변죽만 울리는 게 더 아름다운 상상으로 남는다는 거, 전 그걸 믿고 있거든요.

여름은요? 당연히 푸르름의 극치를 이룬답니다. 주변이 사철나무이잖아요. 그리고 건물 주위는 잔디로 덮였으니 당연히 푸르죠. 동그란 소나무 세 그루와 또 다른 사철나무와 소철, 향나무가 만드는 동그란 세상, 이때는 그들이 푸름만으로 신세계를 만들죠.

집 주변에서 단풍 구경 실컷 합니다

 아무 기미가 없던 단풍나무들이 스르르 곱게 물들고 일어난 것은 11월초입니다. 올해가 그런지 우리 집 단풍이 늦은 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이 중간지대를 지내고 있는 듯합니다.
아무 기미가 없던 단풍나무들이 스르르 곱게 물들고 일어난 것은 11월초입니다. 올해가 그런지 우리 집 단풍이 늦은 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이 중간지대를 지내고 있는 듯합니다. ⓒ 김학현

 버얼써 잔디는 금빛 물을 들이고 떨어지는 낙엽을 안을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미 소복이 낙엽과 단풍잎이 떨어져 장관이랍니다.
버얼써 잔디는 금빛 물을 들이고 떨어지는 낙엽을 안을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미 소복이 낙엽과 단풍잎이 떨어져 장관이랍니다. ⓒ 김학현

그러나 우리 집 자랑은 뭐니 뭐니 해도 가을입니다. 가을은 물드는 계절이잖아요. 총각도 가슴에 헛바람의 물이 들고, 처녀도 마음에 사랑의 물이 드는. 우리 집도 물이 든답니다. 버얼써 잔디는 금빛 물을 들이고 떨어지는 낙엽을 안을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미 소복이 낙엽과 단풍잎이 떨어져 장관이랍니다. 부러 운치를 위하여 쓸지 않고 내버려 둡니다.

고양이도 제 발치에서 단풍을 이불 삼아 노느라 부산합니다. 우리 집에는 누렁이, 알록이, 꺼멍이, 꺼멍이2가 있는데 그 중에 압권은 꺼멍이랍니다. 어느 집 개가 이토록 주인을 반기겠습니까. 고양이가 주인을 반긴다는 말 못 들었는데 우리 집의 고양이들은 절 졸졸 따라다닌답니다.

어디 외출했다 돌아오면 차문 닫는 소리에 조르르 달려와 애교를 부립니다. 이들도 가을이 신나는 모양입니다. 낙엽 위에서 구르고 이파리를 하나 둘 벗어던지는 나무들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숨바꼭질을 합니다. 참 신나 보이고 행복해 보입니다.

우리 집 주변이 풍경은 겨울도 좋고, 봄도 좋고, 여름도 좋지만 가을만큼은 못합니다. 주변에 물들 만한 나무들이 많거든요. 그러니 우리 집 주변은 가을이 백미일 수밖에요. 제가 솔직히 주변의 나무 이름을 다 알지 못합니다. 침엽수를 제외하고 모든 활엽수들이 빨갛게 노랗게 변신을 합니다.

솔직히 안면도는 가을이 다른 곳보다 아름답지 않은 곳이랍니다. 안면도에 자라는 나무는 대부분 곰솔과 안면송(적송)이거든요. 해안가로는 곰솔이 많고 육지 쪽으로는 안면송이 대세를 이루죠. 그러니 가을이 아름다울 수가 없죠. 녀석들은 물드는 것들이 아니잖아요.

여러 단풍나무들 중 집 앞에 있는 세열단풍(공작단풍)과 또 다른 단풍나무들은 10월말까지는 아직 제 때가 아니라 때깔이 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신나무와 당단풍나무는 시퍼렇기까지 합니다. 그러다 기어이 찬바람이 솔솔 부는 요맘때가 되면 부스스 푸름의 꿈에서 깨어난답니다.

엊그제만 해도 제가 앙탈을 좀 부렸답니다. 왜 단풍이 곱게 물들지 않느냐고요. 단풍나무의 때도 모른 채 말입니다. 아무 기미가 없던 단풍나무들이 스르르 곱게 물들고 일어난 것은 11월초입니다. 올해가 그런지 우리 집 단풍이 늦은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이 중간지대를 지내고 있는 듯합니다.

어떤 나무는 이미 단풍이 들었다 다 떨어졌습니다. 발아래로 수북이 주검들을 수놓고 있으니까요. 또 어떤 단풍나무는 지금이 한창입니다. 울긋불긋이란 말로는 다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노오랗게 물든 것, 빠알갛게 물든 것, 블그스름하게 물든 것, 칙칙하면서도 흑갈색으로 물든 것... 참 다양하기도 합니다.

가을이 물들 듯 저도 물들겠지요. 희끄무레하게. 검은 것이 희끄무레해지면서 늙는 거겠지요. 나무들은 내년 봄에 다시 생동하며 푸르겠지만, 저는 이렇게 나이를 먹다 어느 날 이 세상을 하직하겠지요. 자연의 영원성과 인간의 순간성이 대비되는군요. 하지만 집 주변이 알록달록 천국인 이 가을만큼은 천국민이 따로 없습니다. 제.가. 천.국.민.입.니.다.

 고양이도 내 발치에서 단풍을 이불 삼아 노느라 부산합니다.
고양이도 내 발치에서 단풍을 이불 삼아 노느라 부산합니다. ⓒ 김학현

 울긋불긋이란 말로는 다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노오랗게 물든 것, 빠알갛게 물든 것, 블그스름하게 물든 것, 칙칙하면서도 흑갈색으로 물든 것.... 참 다양하기도 합니다.
울긋불긋이란 말로는 다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노오랗게 물든 것, 빠알갛게 물든 것, 블그스름하게 물든 것, 칙칙하면서도 흑갈색으로 물든 것.... 참 다양하기도 합니다. ⓒ 김학현

덧붙이는 글 | 단풍 구경을 집에서 하는 남자 이야기입니다. 같이 하고 싶으시면 15일을 넘기 전에 오세요! 진한 커피 한 잔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단풍 구경#우리 집#단풍나무#억새#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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