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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도시 청년, 핵 산업을 만나다 http://omn.kr/odmp

도시 청년의 탈핵운동

도시인에게 탈핵은 무엇일까? 탈핵운동은 핵시설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경험하는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말이 있듯, 탈핵은 핵시설 인근에 위치한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초록네트워크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태어나서 단 한번도 핵발전소를 보지 못했을 청년들이 어떻게 탈핵운동에 참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나아가, 생존 이상을 꿈꿀 수 없던 청년들이 일상 속에서 생태주의와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판도라탐사대는 도시 청년들의 탈핵운동을 향한 고민의 여정이었다.

우리는 한 학기 동안 탈핵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을 방문하기로 했다. 핵무기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원폭 피해자들이 있는 합천, 그 핵무기를 막는다고 들여온 사드와 그 사드를 막으려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 성주, 핵폐기물 재처리를 연구하는 대전…. 4월, 첫 탐사에서는 경주, 울산, 부산으로 떠나 핵발전소를 지척에 두고 살아가는 주민들을 만났다.

당신은 지금 방사능 위험 지역에 들어오셨습니다

판도라탐사대 4월탐사 월성원전 인접지역 대책위원회 주민들을 만나 함께 찍은 사진이다.
판도라탐사대 4월탐사월성원전 인접지역 대책위원회 주민들을 만나 함께 찍은 사진이다. ⓒ 청년초록네트워크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월성 핵발전소 홍보관이었다. 홍보관에는 핵발전소에 대한 그럴싸한 말들이 적혀있었다. 핵폐기물을 아주 적게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정진하고 있다든가 시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든가 핵발전소와 폐기물 처리장이 아주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든가 하는.

홍보관의 찬핵논리를 비판하고 반박하며, 우리만의 탈핵홍보관을 만들었다. 홍보관은 핵발전소에서 방출되는 방사능은 자연 방사능 수준으로 유해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홍보관 밖에는 방사능 때문에 피폭되고 삶을 파괴당한 주민들이 존재했다.

'당신은 지금 방사능 위험 지역에 들어오셨습니다.' 주민들의 농성장엔 이런 문구가 쓰인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이런 말로 환영을 받은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월성 농성장을 찾을 때가 아니라면 없을 것 같다. 농성장 안에 계시던 세 분의 주민 분들은 믹스커피를 건네며 우리를 환대해주셨다. 그렇게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이하 '월성이주대책위')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월성 나아리는 천혜의 땅이었다고 한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고 누구에게나 자랑할 수 있는 곳이며,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월성에 들어선 핵발전소는 주민들로부터 나아리를 빼앗아갔다. 모 기업에서 나아리의 땅을 싸게 사들였고 공탁을 걸었다. 전기를 만드는 공장이라고만 들었지 핵발전소가 대체 뭔지도 몰랐던 주민들은 원인불명의 발병, 장애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핵발전소의 위험성이 알려지자 어업도 농업도 죽어갔다. 너도 나도 가게를 열어 장사를 시작했고 당연히 심해진 경쟁 때문에 벌이는 시원찮을 수밖에 없었다. 반대운동을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월성의 주민들은 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원망했다. "너희들만 조용히 있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 아니냐!" 반대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배신자들이 되었고 그들이 연 가게는 텅 비어버리고 말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반대운동을 하는 가구들이 점점 줄어들었고 기세 좋게 70가구로 시작했던 월성이주대책위는 이제 절반도 안남아 30가구 남짓이다.

월성에 주어지는 보상금이 있긴 하지만 소수의 몇 명에게만 돌아갈 뿐 만져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이사를 갈 수도 없다. 핵발전소 인근 땅이라는 이유로 땅값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월성 주민들이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욕하지만 이주에는 71%가 찬성하는 이유이다.

이주와 보상을 요구하면,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혀를 끌끌 찬다. 결국 원하는 게 돈이었냐는 반응이 돌아온다. 소위 '순수한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연대하러 온 다른 지역의 활동가들도 이런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월성의 주민들은 방사선에 노출된 음식을 먹는 내부피폭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이주 외에는 다른 선택권이 없다. 당장 핵발전소에서 큰 사고가 나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게 아니다. 핵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는 것 자체가 그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월성 핵발전소 4호기가 가동 중단되었을 때 주민들의 몸에서 나오는 방사능 물질의 양은 반으로 줄었고 전기도 남아돌았다. 대체 핵발전소는 누굴 위하여 가동한 것인지 고민하던 것도 잠시, 멈췄던 핵발전소 4기는 이내 재가동되었고 40명의 주민들을 상대로 소변을 검사한 결과 40명 전원의 소변에서 삼중수소가 검출되었다.

이에 삼중수소는 반감기도 빠르고 크게 위험하진 않다고 하지만 다른 방사능 물질은 비싼 장비나 기술 없인 검출할 수 없을 뿐이다. 주민들은 검사할 수 있다면 다른 방사능 물질들도 당연히 주민들의 몸에서 검출될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핵발전소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실수나 인재로 인한 방사능 물질 유출 등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곳이 핵발전소이기도 하다. 엄청난 방사선을 뿜어내는 방사능 물질인 연료봉을 취급하던 중 떨어뜨린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핵발전소에 있는 직원들 중 위험한 일을 하는 직원들은 거의 다 비정규직으로 2년마다 교체된다고 한다.

이렇게 안전문제 때문에 주민들이 불안해하는데도 한수원은 책임감이 없고 자만심만 가득하다고 한다. 사고는 일어나고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거나 왜곡되기 일쑤고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월성이주대책위는 지난 2014년 11월, 월성에서 가장 오래된 핵발전소인 월성 1호기의 수명연장이 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을 얻어냈다. 또한 작년 9월엔 경주에서 규모 5.8의 큰 지진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에 달라진 점은 없냐는 질문엔 여전히 패배감만 맛보고 있다는 씁쓸한 답을 주셨다. 법원 판결은 곧장 항소를 당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아직 완벽히 판결이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핵발전소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장 모든 핵발전소를 멈추라는 것도 아니고 불법으로 수명연장을 허가한 핵발전소 한 기를 멈추라는 것인데도 싸움은 주민들의 심신을 너무 지치게 했다.

월성이주대책위에서 가장 힘든 것은 한수원이나 동네 이웃들을 몇 년씩이나 끊임없이 미워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주민들이 돈 때문에 뭉치지 못하고 있다.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도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지역 경제가 한수원에 의해 유지되고 있어 많은 주민들이 한수원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고 한다. 대책위 주민들은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말 간절히 전국민적인 반대와 연대를 요청했다.

월성1호기와 신고리 5,6호기는 다르지 않다

핵발전소로 일상의 파괴를 경험하는 주민들은 월성 주민들 뿐일까? 월성 주민들과의 간담회를 마친 뒤, 우리는 울산에서 정당활동을 하고 계신 노동당 이향희씨를 찾아뵈어 이야기를 나눴다.

울산은 핵발전소와 매우 가까이 있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행정구역상 핵발전소가 울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핵발전소와 관련된 논의에서 배제되기 일쑤인 지역이다. 하지만 울산 시민들이 느끼는 핵발전소에 대한 공포는 부산, 경주 시민들과 마찬가지였다. "엄마, 지진 난 것 같아" 이향희씨의 아들들은 자다가 윗집에서 핸드폰 진동이 울리는 것을 듣고 이향희씨를 깨워 말했다. 특히 작년 9월 큰 지진이 있던 후로 울산 시민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시일 안에 월성핵발전소 1호기를 예정된 수명보다 조기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월성1호기만 폐쇄한다고 하여,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하고, 냉각수 누출에는 쉬쉬하고, 주민들의 고통에 대한 정당한 이주대책과 배상은 진행하지 않으면서 진행되는 월성1호기 폐쇄는 기만이다. 월성1호기 인근 주민의 고통과 신고리 5,6호기 인근 주민의 고통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당 울산시당에서 하룻밤을 묵고, 우리는 핵발전소가 가장 밀집되어 있는 지역인 부산으로 떠났다.

<다음 연재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판도라탐사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이라는 ‘판도라’를 함께 들여보고, 핵산업에 맞서 대안을 찾는 프로젝트입니다. 2017년 4월부터 6월까지, 전국 방방곡곡의 탈핵운동지역을 돌아본 도시 청년들의 경험을 글과 만화로 엮었습니다.



#탈핵#판도라탐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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