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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제20회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이 이천시 설봉공원에서 열렸습니다. 김병진 조작가가 심포지엄에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제20회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이 이천시 설봉공원에서 열렸습니다. 김병진 조작가가 심포지엄에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 김희정

김병진(44) 조각가에게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은 남다릅니다. 올해로 20회를 맞이한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은 지난 8월 8일부터 29일까지 '망루에 서다'라는 주제로 이천시 설봉공원에서 열렸습니다. 김 작가에게 이번 심포지엄 참여는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16년 전이었습니다. 당시 수원대학교 3학년이었던 그는 스태프로 심포지엄에 참여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와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심포지엄에 참여하면서 여기서 작업하는 작가들처럼 영글어지고 싶다는 꿈을 꿨죠. 하늘과 바람과 햇살을 느끼고 삶의 과정과 목적이 작품에 투영되어 흘러나오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되겠다는 마음을 이곳에서 굳혔어요."

심포지엄이 끝나고 그는 원기 충만하게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세월은 흘렀고 그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전시회를 여는 조각가가 됐습니다. 그리고 올해 그는 작가로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에 참여했습니다.

1998년 1회에 이어 올해 20회째인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은 국내 조각관련 국제행사 가운데 독보적이며 역사가 가장 깊습니다. 시민들은 예술 조각 작품이 제작되는 전 과정을 관람할 수 있고 국내와 해외조각가들은 상호교류를 할 수 있는 영예(榮譽)의 마당입니다.

특별히 올해는 공모제를 통해 선발된 작가 9명이 참여했습니다. 신한철, 지경수, 김원근, 김병진, 히로유키 아사노(일본), 동슈빙(중국), 콘스탄틴 시니트스키(우크라이나), 아그네사 이바노바(불가리아), 루크 즈올스만의(호주)입니다.

'달리는 사랑'(RUN-LOVE)을 제작하고 있는 김병진 조각가와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행운이었습니다.  8월 한복판이었습니다. 며칠 째 내린 비가 그치고 먹구름은 하루 날 잡아 먼데로 놀러간 날이었습니다. 설봉공원은 망치소리, 쇳소리, 돌 깎는 소리, 도슨트의 작품 해설로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습니다. 돌이 깎여지는 곳에서 물방울과 돌가루가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스테인리스에서 불꽃이 일었습니다.

김 작가는 의자에 앉아 스테인리스로 된 LOVE의 낱글자를 인체 조각에 한 개씩 연속적으로 배열하며 용접을 했습니다. 무더위 속에서 그는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하여 정밀하게 철로 된 수를 놨습니다.

"작업은 저를 돌아보는 수행(修行)인 것 같아요. 작품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제 안의 상처가 치유 되고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여유로워진 저를 발견하거든요. 빠른 것만이 능사는 아님을 깨달아간다고 할까요."

 이천시 설봉공원 미니갤러리에 설치돼 있는  김병진의『RUN-LOVE』입니다. 신한철의 『희망상자』 지경수의 『풍경 속으로』, 김원근의 『꿈』, 히로유키 아사노의 『태양의 물방울』, 동슈빙의 『天界』, 콘스탄틴 시니트스키의(우크라이나)『마차부 자리』, 아그네사 이바노바의(불가리아) 『태양과 바람』, 루크 즈올스만의(호주)의 『관점의 문』 등 올해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에서 탄생한 9개 작품은 1년 동안 이곳에 전시됩니다.
이천시 설봉공원 미니갤러리에 설치돼 있는 김병진의『RUN-LOVE』입니다. 신한철의 『희망상자』 지경수의 『풍경 속으로』, 김원근의 『꿈』, 히로유키 아사노의 『태양의 물방울』, 동슈빙의 『天界』, 콘스탄틴 시니트스키의(우크라이나)『마차부 자리』, 아그네사 이바노바의(불가리아) 『태양과 바람』, 루크 즈올스만의(호주)의 『관점의 문』 등 올해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에서 탄생한 9개 작품은 1년 동안 이곳에 전시됩니다. ⓒ 김희정

완성된 'RUN-LOVE'(스테인리스, 우레탄 도장)을 만난 곳은 이천 설봉공원 미니갤러리였습니다. 'RUN-LOVE'는 맑고 푸른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었습니다. 가을의 길목에서 작품을 올려다보며 김병진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 목적성 없이 달려갈 때 이 작품을 구상했어요. 무엇을 쫓아 달려가고 있는가, 지금 나의 자리는 어디쯤인가, 인간의 실상과 허상 등에 대해 묻고 싶었죠. 황금을 쫓아 달려가는 인간의 욕망, 이상과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내면세계 등을 표현하고 싶었고요."

김 작가는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김민기의 노래 <봉우리>를 듣고  부르고 사유했습니다.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해줄까/ 봉우리/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 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중략)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김민기 작사 <봉우리> 중)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le vent se leve, il faut tenter de vivre)'라고 노래한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와 바람의 구두를 신은 아르튀르 랭보를 떠올렸습니다. 바람과 햇살의 감촉을 느끼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시(詩)를 읊었습니다.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RUN-LOVE'의 인체 조각에는 수많은 LOVE 글자가 붙어 있습니다. 사랑이 차갑고 단단하고 딱딱한 철을 따스하고 부드럽게 감쌌습니다.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못했어요. 어쩌면 못해본 말을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때문인지 제 딸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을 수시로 해요."

김병진 조각가는 소망합니다. 그가 살아오면서 만나고 경험하고 느낀 모든 것,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를 그것이 그의 작품에 녹아들고 그 작품이 삶의 어느 날 어느 장소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과 나지막하고 혹은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천시 설봉공원과 온천공원에는 20여년 동안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을 통해 창작된 다양한 조각 예술작품이 설치돼 있습니다.



#이천시#이천문화관광#이천시조각가협회 #한국조각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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