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곳의 풍경은 마치 영화 '섬'의 한장면 같았다.
그곳의 풍경은 마치 영화 '섬'의 한장면 같았다. ⓒ 김종수

총각 주변에는 낚시를 좋아하는 친구나 지인들이 많다. 때문에 총각 역시 낚시터에 함께 갈 일이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피하게 됐다. 어딘가를 함께 가는 것은 좋지만 낚시 자체는 총각과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름 적응해보려고 했지만 별반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시간이 갈수록 지루하기만 했다. 낚싯대를 걸쳐놓고 잔잔한 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이 시간에 다른 일을…'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친구는 낚시의 매력에 대해 일상생활에서 찌들었던 스트레스를 잔잔한 물과 함께 버릴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 친구는 성격이 무척 급한데 낚시를 할 때 만큼은 차분하기 이를데 없다. 하지만 사람이 다 같을 수는 없다. 나는 낚시터에 오게 되면 성격이 더 급해진다. 재미도 없고 답답해서 외려 스트레스가 더 쌓이기 때문이다.

매운탕의 매력?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면 입맛도 뚝 떨어지거니와 매운탕이야 식당에서 사먹으면 된다. 외부에서 남자들이 주먹구구로 끓이는 매운탕이 얼마나 특별한 맛이 있겠는가. 나름 낚시의 재미를 느끼며 양념처럼 매운탕 맛을 즐겨야 하는데 메인에 흥미가 없으니 나머지 것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이렇듯 총각은 낚시와는 인연이 없는 캐릭터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생일에 놀러간 낚시터,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총각이 낚시를 싫어하는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재미로 생명체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영향을 끼쳤다. 총각도 고기를 먹고 거창한 불생론자는 절대 아니지만 아무래도 낚시는 식량을 해결하겠다는 의미와는 다른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성향상 잘 맞지 않는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총각의 개인적 성향일 뿐이다. 낚시를 하시는 분들을 절대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고등학교 동창인 병탁이는 시멘트 몰탈 일을 하는 친구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사현장 바닥을 책임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병탁이는 장거리를 돌아다니는데 거침이 없다. 총각 같으면 피곤해서라도 일이 끝나면 집에서 쉴텐데 병탁이는 등산을 다니거나 친구를 만나러 먼 곳도 마다하지 않는다.

움직임에 있어서 병탁이는 매우 활동적이다. 겨울에 등산이 하고 싶었던 병탁이는 한라산을 홀로 찾아갔다. 아쉽게도 폭설주의보가 내려서 등산이 금지가 되어있었는데 병탁이는 근처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기다리는 것을 택했다. 다음날 등산금지가 해제되자 기다렸다는 듯 눈으로 가득한 한라산을 올랐던 의지의 친구다.

그런 병탁이는 친구들을 만날 때도 시간만 되면 바로 움직인다. 병탁이와 총각이 사는 곳은 자동차로 3시간 정도 걸린다. 마음 먹지않는 이상 자주 보기가 힘든데 병탁이의 부지런함 덕분에 우리는 자주 만난다. 경기도 화성에 사는 병탁이는 친구들이 "저녁에 술 한잔 할까?"라고 하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내려온다.

아무리 차로 움직인다고 하지만 왕복 6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임을 감안했을 때 총각으로서는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 힘겨운 일이다. 요새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총각은 장거리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서울이라도 가려고 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다. 금액도 계산해보면 더 저렴하거니와 이상하게 차속에서 잠을 잘 자는지라 총각은 버스 뒷자석에 머리만 붙이면 금새 도착지에 와있다.

 친구들과 함께 낚시터에서 구워먹는 고기맛은 남달랐다.
친구들과 함께 낚시터에서 구워먹는 고기맛은 남달랐다. ⓒ 김종수

어느날 병탁이가 말했다. "며칠 후 성님 생일이다. 술 한잔 해야지" 사실 사무실 일도 밀려있고 이것저것 할 일도 많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병탁이가 말하자 크게 와 닿았다. 수시로 총각이 사는 곳을 오고갔던 친구이기도하고 하물며 생일이라는데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에 전주에 사는 또 다른 고교동창 재순이와 함께 병탁이가 오라고 한 안성으로 향했다.

사실 안성으로 가는 것 까지는 좋았지만 병탁이가 말한 장소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름 아닌 낚시터였기 때문이다. 병타기에게 장소를 듣는 순간 '왜 하필…'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지만 낚시보다는 친구 생일을 축하해주러 가는 것이기에 이것저것 따질 수는 없었다. 생일축하 장소가 낚시터라는 것이 의아했으나 등산 외 병탁이의 또 다른 취미이겠구나 싶어 그러려니 했다.

결과적으로 총각은 대만족스러웠다. 정말이지 이런 낚시터가 있나 싶었다. "우와! 여기 영화에서 본 거기 같다" 안성 모 낚시터에 도착하기 무섭게 재순이와 나는 동시에 비슷한 말을 내뱉었다. "그러게 딱 거기 같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또 다른 친구 철웅이와 성숙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산속 저수지에 펼쳐진 장대한 수상낚시터의 모습은 흡사 영화 <섬>에서 본 풍경을 연상케 했다. 예전에 영화를 볼 때 저런 곳을 한번 가보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본의 아니게 진짜로 오게 된 것이다. 병탁이는 아내와 아이들도 데려왔다. 수상낚시터를 보면서 다음에 애인이 생기면 한번 데리고 와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이 구경할 것 투성이인지라 구태여 낚시를 즐기지 않아도 재미있었다.

사람들 인심도 넉넉해서 낚시를 하는 분들 옆을 지나가면서 말을 걸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다정하게 대꾸해줬다. 모르는 분 옆에서 한참 수다를 떨며 낚시하는 것을 구경하고 다시 다른 곳에 가서 방까지 들어가 봤다. "여기는 모두가 한가족이여" 병탁이 말대로 사람냄새가 물씬 풍겼다.

병탁이는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왔다. 그곳에서 병탁이 가족과 함께 우리 친구들은 고기와 소주를 즐겼고 캠핑장 같이 생긴 곳에서 방과 텐트로 흩어져 함께 잠을 잤다. 수상가옥이 탐이 났지만 그곳은 다음에 와서 자기로 했다.

 누렁이는 쓰레기다 싶은것이 있으면 낚시터 인근, 나무사이, 수상가옥은 물론 물속까지 가리지않고 달려갔다
누렁이는 쓰레기다 싶은것이 있으면 낚시터 인근, 나무사이, 수상가옥은 물론 물속까지 가리지않고 달려갔다 ⓒ 김종수

영리한 개 누렁이, 낚시터의 명물

더불어 총각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낚시터 주인집에서 키우는 큰 개였다. 척 보기에도 나이도 많이 먹고 지쳐보였지만 아는 손님들이 오면 누워있다 몸을 일으키며 꼬리를 흔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툭하면 쓰러져 잠을 자고 있기에 매사에 의욕이 없는 듯 보였으나 한손님이 축구공을 던지자 부리나케 달려 나가 축구공을 물고 왔다.

"훈련받은 개인가요?" 신기한 마음에 주인 분에게 물어봤다. "특별하게 훈련은 받지 않았지만 스스로 알아서 이것저것 배우더니 지금은 할 줄 아는 게 너무 많네요" 대답하는 주인의 표정에는 개에 대한 애정이 가득해보였다.

"이름이 누렁이에요. 누렁이 텔레비전에도 많이 나왔어요. 완전 똑똑해요" 매점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던 손님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곳 낚시터 사람들에게 개 아니 누렁이는 이미 명물인 듯 싶었다. 유명세를 타고 '현장르포 특종세상',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등 여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소개됐다고 한다.

단골손님들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누렁이는 이 근방에서 굉장히 유명했다. 단순히 축구공이나 각종 물건을 물어오는 수준을 넘어 저수지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쓰레기가 발견되면 부리나케 달려가 즉시 쓰레기를 물고 온다. 낚시터 건물 근처, 나무사이, 계단은 물론이거니와 수상가옥 사이를 오가기도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물속에 들어가 헤엄을 치며 임무(?)를 완수한다. 개인적으로 총각도 다리가 살짝 떨리던 높은 계단을 자유롭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 없다. "오래오래 건강하면 좋겠는데 요새 점점 기력이 떨어지네요" 안타까움 가득한 주인 분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누렁이는 어느새 10살이다. 사람으로 따지면 70살 정도라고 한다. 어쩌면 머지않은 시간에 누렁이는 아끼는 사람들과 작별해야 할 지 모른다. 낚시터 곳곳에 추억을 가득 뿌려놓은 채.

낚시는 좋아하지 않지만 낚시터에서 좋은 추억을 만든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어갈수록 뭐든지 단정 짓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인 총각은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워간다.


#수상낚시터#추억#안성낚시터#유명한 개 누렁이#총각 나들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전) 홀로스, 전) 올레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농구카툰 'JB 농구툰, '농구상회'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