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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였다. 다들 조금은 예술성이 가미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A가 말했다.

"이 분야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재능이 있어서 그렇게 된 건 아닌 것 같아." "그럼?"
"마지막까지 버텼던 거지. 재능 여부에 상관없이."

대화를 듣고 있던 B가 그렇다면 재능 있는 사람들은 왜 마지막까지 못 간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A는 어깨를 으쓱하며 "글쎄, 재능 있는 사람들은 또 금세 다른 일을 찾아 나서더라. 자신감이 있어서 그런가?" 한다.

A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자코 맥주를 홀짝였다. 그런데 잠시 숨을 고르던 B가 맥주를 벌컥 들이키더니 외치 듯 말했다.

"왠지, 싫다! 마지막까지 가는 사람이 제일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게. 그저 버틴 사람이라는 게."

재능 있는 사람만 성공할 이유가 있을까 싶어서 나는 B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혹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던 사람들은 재능 외의 조건들(경제적 지원 같은)을 타고 났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B의 말에 동조하고 싶기도 했다.

반면, 재능 이외의 조건이 '끈기나 인내심'이라면 그들을 축하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날 이후로 재능과 성공의 상관관계는 내게 꽤 흥미로운 생각 거리가 되었다.

 책표지
책표지 ⓒ 비즈니스북스
내가 이런 생각을 가끔 한다는 걸 눈치챈 한 친구가 도움이 될 거라며 내 손에 <그릿>을 들려줬다. 책은 친절하게도 각자 자신의 '그릿 지수'를 체크할 수 있게끔 문항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친구는 거의 0점에 가깝게 나왔다며 자기가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고 말했다. 친구가 말했다. "나는 그릿이 없는 사람이었던 거야!" 그러니까 그릿이 무엇인가 하면.

"요컨대 분야에 상관없이 대단히 성공한 사람들은 굳건한 결의를 보였고 이는 두 가지 특성으로 나타났다. 첫째, 그들은 대단히 회복력이 강하고 근면했다. 둘째,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매우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결단력이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갈 방향도 알고 있었다. 성공한 사람들이 가진 특별한 점은 열정과 결합된 끈기였다. 한마디로 그들에게는 그릿(grit)
이 있었다(사전적으로 투지, 끈기, 불굴의 의지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 본문 중에서 

<그릿>의 저자인 앤절라 더크워스는 '왜 누구는 성공하고, 또 누구는 성공하지 못하는지'가 궁금해 방대한 자료 조사에 몰두한다. 긴 시간에 걸친 연구에서 그가 찾은 '성취의 근원'은 재능이나 적성, 아이큐 등이 아닌 '그릿'이었다.

이 책은 세상에 만연한 재능 신화에는 근거가 없음을 밝힌다. 물론 재능이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양의 노력을 한다면,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하지만 재능 그 자체는 성공과 큰 관련이 없으며, 재능의 크기보다는 재능을 갈고 닦는 '열정의 지속성'이 성공의 키라고 말한다. 책에서 말하는 그릿의 척도는 아래와 같다.

- (하루하루 겨우 살아가는 삶과 대조되는) 멀리 목표를 두고 일하고, 이후의 삶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며 확고한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정도.
- 단순한 변덕으로 과제를 포기하지 않음. 새로움 때문에 다른 일을 시작하지 않으며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 성향.
- 의지력과 인내심의 정도. 한 번 결정한 사항을 조용히 밀고 나가는 결단력.
- 장애물 앞에서 과업을 포기하지 않는 성향. 끈기, 집요함, 완강함. - 본문 중에서 

이 책을 권한 친구는 과감히 성공하기를 포기했다. "이번 생애에 그릿을 다시 키울 순 없을 것 같다"면서. 그저 소소하게 할 일 열심히 하며 살아가련다고 말했다. 친구가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었던 건 그 친구가 원래 성공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내 친구와는 달리 지금이라도 그릿을 키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아니더라도 내 자식이라도 그릿을 키워주고 싶다면? 이런 사람들을 위해 책은 3/2 가량을 '그릿 키우는 방법'에 할애한다.

나는 그릿 지수가 꽤 높게 나왔다. 하지만 아무리 상상의 나래를 펴도 내가 성공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세상에 예외는 늘 있기 마련이며, 내가 그런 예외일 테니까(늘 그렇듯이). 그리고 결국 이런 책들이 하는 말은 거꾸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들을 모아 놓고 특성을 찾아봤더니 '그릿'이 있었다는 것뿐이니까. '그릿'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말은 아니니까 말이다.

마치 성공한 사람들은 1만 시간의 연습기간을 거쳤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1만 시간을 감내한 모든 사람들이 성공하는 건 아니듯이. 그렇더라도 그릿이 성공의 마스터 키가 아니라는 걸 이해하고 읽는다면, 이 책은 성공을 방해하는 생각이나 행동을 교정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하다. 그게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 일에서만큼은 성공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는 사람에게는 희망의 실마리를 안겨주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 <그릿>(앤절라 더크워스/김미정/비즈니스북스/2016년 10월 25일/1만6천원)
개인 블로그에 중복게재합니다



그릿 GRIT -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

앤절라 더크워스 지음, 김미정 옮김, 비즈니스북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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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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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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