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함께 놀던 동무하고 헤어져서 오랫동안 만날 수 없다면, 이는 더없이 끔찍하다고 할 만합니다. 아이한테 놀이동무는 마치 온누리하고도 같을 테니까요. 어른들은 퍽 쉽게 삶터를 옮깁니다. 아니, 어른들은 아이 마음을 묻거나 따지지 않은 채 삶터를 옮기기 일쑤입니다. 아이가 살뜰히 여기며 늘 함께하는 놀이동무하고 오랫동안 아주 멀리 헤어지도록 하는 일을 무척 쉽게 저지르지요.
거꾸로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어른들이 일터나 일 때문에 멀리 삶터를 옮겨야 한다면 '어른 혼자' 떠나 보는 일 말이에요. 왜냐하면 일터나 일 때문에 옮겨야 한다면 이는 '어른 일'이지, '아이 일'이 아니에요.
어른 한 사람한테 일이 생기면 그냥 어른 한 사람만 옮기면 될 노릇이지만, 어른은 으레 아이를 끌어들이고 말아요. 아이한테 둘도 없이 애틋한 놀이동무가 있는 터전에서 너무 쉽게 다른 데로 옮겨 버리지요.
마이아와 산티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예요.무엇이든 함께했고, 함께여서 즐거웠지요.그런데 산티네 가족이 먼 곳으로 이사를 간대요. (2∼6쪽)아이는 새 삶터에서 얼마든지 새 동무를 사귈 수'도' 있습니다. 어른들은 흔히 말하잖아요. 시간이 흐르면 다 괜찮아지고, 새 동무가 나타난다고. 그러면 이 말을 어른한테도 해 볼 노릇이에요. 굳이 새 삶터로 옮기지 않아도 '새 일거리'나 '새 일터'를 찾을 만하겠지요? 시간이 흐르면 '아무리 고된 일터와 일'이라 하더라도 괜찮아질 수 있겠지요?
이렇게 거꾸로 헤아려 본다면, 아이가 어른한테 맞추라 하지 말고 어른도 아이한테 맞추어 보려고 한다면, 오랜 놀이동무하고 헤어져야 하는 아이가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시리며 괴로운가를 조금이나마 짚을 만하지 싶습니다. 아이한테 놀이동무 한 사람은 '그냥 숫자 하나'가 아닌 줄 살짝이라도 느끼거나 마주해야지 싶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산티가 떠나는 날이 다가왔어요.어쩔 수 없이 마지막 인사를 했죠.그렇게 마이아는 산티와 헤어졌어요. (8∼10쪽)안드레아 마투라나 님이 글을 쓰고,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올레아 님이 그림을 빚은 그림책 <친구와 헤어져도>(책속물고기 펴냄)는 칠레에서 날아왔습니다. 어버이가 삶터를 옮기면서 그만 오랜 놀이동무와 헤어져야 하는 칠레 아이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언제나 함께 있고, 언제나 함께 놀며, 언제나 함께 나누던 놀이동무라는 '마이아'하고 '산티'는 어느 날 갑자기 헤어져야 한답니다. 산티는 무척 먼 곳으로 떠나야 합니다. 산티는 머나먼 새 곳에서 무척 쓸쓸하겠지요. 마이아는 어릴 적부터 나고 자란 마을에 그대로 있습니다.
산티는 새로운 터전에 몸을 맞추고 이것저것 새로 알아야 하니, 쓸쓸하면서도 매우 바쁩니다. 이와 달리 늘 있던 곳에 늘 그대로 있는 마이아는 사뭇 달라요. 마이아한테 '새로움'이란 '늘 함께 하루를 짓던 동무가 없는 이곳'일 뿐이에요.
무엇을 해도 산티가 없으니까 시시하고 재미가 없었지요.환한 낮이 깜깜한 밤처럼 느껴졌어요. (16∼18쪽)외롭게 남아야 하는 아이 마음을 우리 어버이나 어른은 얼마나 알까요. 오랜 놀이동무가 하루아침에 사라져서 그만 외롭고 또 외로워야 하는 아이 하루를 우리 어버이나 어른은 얼마나 헤아릴까요.
모든 일에서 기운을 잃고, 모든 자리에서 기쁨을 잃을 만합니다. 어느 곳에서도 힘이 안 나고, 누가 둘레에 있어도 아무것이 안 보일 만합니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아이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가슴에 뚫린 구멍이 차츰 깊은 수렁으로 바뀌는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아이는 어떻게 무엇을 할 만할까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누군가 마이아에게 손을 내밀었어요.바로 고양이였죠.그리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어요. (24∼27쪽)그림책 <친구와 헤어져도>는 늘 즐겁게 지내던 삶터에서 그만 홀로 남고 만 아이가 겪어야 하는 마음앓이를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보여줍니다. 이 아이가 어떻게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지, 또 이 홀로서기는 어떻게 이루는지, 여기에 두 아이가 홀로서기를 하고 난 뒤에 새롭게 만나는 삶을 넌지시 다룹니다.
놀이동무랑 함께 웃고 노래하던 곳은 이제 혼자 조용히 거니는 곳이 되었다는데, 외로운 아이는 어느 날 고양이를 만난다고 해요. 이 고양이는 아마 꽤 옛날부터 그곳에 있었을 테지만, 마이아는 이 고양이를 그동안 못 보았을 테지요. 늘 놀이동무만 바라보았을 테니까요.
오랜 놀이동무가 사라진 자리에서 마이아는 비로소 '늘 살던 마을'에서 '늘 한곳만 바라본' 줄 알아차립니다. 비록 가장 살가운 놀이동무가 곁에 없지만, 고양이가 곁에 있고, 바람이 늘 싱그러이 불며, 나무가 저를 손짓하는 데다가, 오랜 놀이동무뿐 아니라 다른 동무가 학교나 마을에도 있는 줄 비로소 알아봅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흐르던 어느 날, 오랜 놀이동무가 오랜만에 옛 마을로 찾아온다고 해요. 두 아이는 저마다 새로운 자리에서 새롭게 하루를 보내면서 찬찬히 앙금을 다스리며 새로운 길을 걸었는데, 다시 마주하는 오랜 놀이동무하고 서로 어떻게 말을 섞을 수 있을까요? 두 아이는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자리에서 어떤 마음이 될까요? 한결 씩씩하게 자랐을 두 아이가 새로 만나서 새롭게 따스한 마음을 나눌 뒷이야기를 가만히 그려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친구와 헤어져도>(안드레아 마투라나 글 /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올레아 그림 / 김영주 옮김 / 책속물고기 펴냄 / 2017.3.30. / 1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