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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리고 센터에 있는 구름다리에서 본 경치
도리고 센터에 있는 구름다리에서 본 경치 ⓒ 이강진

도리고 국립공원(Dorrigo National Park)을 찾아 나선다. 작년 이맘때 가보았던 곳이다. 습지 식물과 아름드리나무로 가득한 산책로가 생각나 며칠 전에 숙소를 예약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소나기가 내리고 있다. 바람도 심하다. 방송에서는 비가 계속 올 것이라는 예보를 하고 있다. 목적지와 가까운 도시, 콥스 하버(Coffs Harbour)에는 비 피해가 심하다는 뉴스도 나온다. 산속에서 퍼붓는 비와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길을 떠난다. 비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빗길을 조심하며 고속도로를 달린다. 평소에 보았던 소들이 비를 맞으며 풀을 뜯고 있다. 며칠 동안 내린 비로 질펀한 풀밭에 태평하게 앉아 있는 소도 있다. 비를 피할 수 없는 소들이 불쌍하다. 그러나 집 없이 비를 맞으며 지내는 것이 소에게는 자연스러울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불쌍할 수도 있겠지만...

점심시간이다. 두어 번 들렀던 켐시(Kempsy)라는 동네에 들어선다. 이민 초창기 한국 사람이 많이 살던 시드니의 캠시(Campsie)라는 동네와 헷갈리는 이름을 가진 동네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니 따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주위를 살피니 서너 개의 중국 식당 틈에 타이 식당이 보인다. 비오는 거리를 바라보며 '탐냥궁'이라는 진한 타이 향과 매운맛이 어우러진 따끈한 국물을 먹는다. 

비오는 길을 다시 운전한다. 조금 더 북쪽으로 가니 엄청난 비가 쏟아진다. 가장 빠른 속도로 창을 닦아내도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모든 차가 전조등을 켜고 서행한다. 한차례 쏟아지는 소낙비를 벗어나니 빗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는 날씨로 바뀐다. 변덕스러운 날이다.

벨린젠(Bellingen)이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조금 떨어진 숙소를 찾아간다. 자그마한 농장을 하는 집이다. 농장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자동차를 풀을 뜯던 양들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평소에 보기 어려운 목이 긴 알파카(Alpaca)라는 동물 서너 마리도 우리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본다.

집 주인은 비가 많이 왔는데 왔다며 우리를 반긴다. 넓은 이층집에 살면서 아래층에 있는 방을 숙소로 빌려주고 있다. 집 주인 부부와 이야기를 나눈다. 요트로 세계를 돌아다니던 부부다. 지금도 요트를 가지고 있는데 스페인에 정박해 있다고 한다. 바다에서 살던 사람이 산골에서 살고 있다. 드라마틱한 삶이다. 

다음날 아침 도리고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온다고 했으나 비는 내리지 않는다. 산을 깎아 만든 도로를 타고 계속 올라간다. 오른쪽으로는 구름이 산기슭에 머물고 있다. 세계 문화유산(World Heritage)이라는 표지판도 보인다.

동네에 들어서는데 전망대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핸들을 돌려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전망대로 향한다. 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그리피스(Griffiths Lookout)라는 이름을 가진 전망대다. 1950년대 그리피스라는 사람이 기부한 땅이라고 적혀있다.

셀 수 없는 산봉우리가 끝없이 펼쳐진다. 셀 수 없는 산봉우리 아래로는 하얀 구름이 깔려있다. 수많은 섬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우리 뒤에 막 도착한 일행도 카메라를 가지고 바쁘게 움직인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혼자 보기 아까워 많은 사람을 위해 기증한 사람의 마음씨가 보이는 듯하다.

관광객 없는 유명한 관광지를 걷는다

 국립공원에는 이름 모를 갖가지 버섯도 많이 자라고 있다.
국립공원에는 이름 모를 갖가지 버섯도 많이 자라고 있다. ⓒ 이강진

다시 길을 떠나 도리고 센터에(Rainforest Centre) 도착했다. 이곳에서 유명한 전망대로 향한다. 구름다리(Skywalk)를 70미터 정도 걸어가니 조금 전에 보았던 풍경이 다시 펼쳐진다. 바로 눈 아래 보이는 깊은 골짜기에서는 거대한 뭉게구름이 솟아오르고 있다. 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습에 넋을 놓는다. 소나기가 지나간 후의 아름다움이다.  

잘 정돈된 깊은 숲속의 산책길을 걷는다. 조금 긴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산책길이다. 비온 뒤의 습기를 머금은 각종 습지 식물과 나무가 푸름을 자랑한다. 듬직한 남성을 연상시키는 높은 폭포에서는 며칠간 내린 비로 많은 양의 물이 쏟아진다.

여성을 연상시키는 크리스탈 폭포(Crystal Fall)라는 이름을 가진 곳에 도착했다. 작은 물줄기가 폭넓게 떨어지고 있다. 하얀 망사 커튼을 쳐 놓은 것 같은 물줄기다. 폭포 뒤로 난 작은 길에 들어선다. 폭포 물줄기 안에서 바깥 풍경을 본다. 바위를 덮고 있는 물기 머금은 들풀이 그림 같다. 그 사이로 시냇물이 흘러간다. 머리 위에 있는 돌 틈 사이에서는 작은 박쥐들이 잠을 자고 있다. 동화의 나라에 온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댕가 폭포(Dangar Falls)를 둘러본다. 많은 비가 내린 후라 물줄기가 시원하게 떨어지고 있다. 궂은 날씨를 예상한 일기예보 때문인지 이름 있는 곳이지만 관광객이 없다. 

늦은 밤 숙소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하루를 정리한다. 구름이 물러난 하늘에서는 은하수가 쏟아지고 있다. 굳은 날씨의 소나기를 무릅쓰고 무모하게 나선 길이다. 무모함은 삶의 조미료와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호주 동포 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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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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