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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블루 스카이. 울란바토르 도심에는 하루가 다르게 고층빌딩이 올라가고 있다.
도심의 블루 스카이.울란바토르 도심에는 하루가 다르게 고층빌딩이 올라가고 있다. ⓒ 노시경

맑고 청명한 하늘 아래,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Ulaanbaatar) 중심가를 아내와 산책하듯이 구경했다. 울란바토르 도심에는 하루가 다르게 고층빌딩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울란바토르 도심 한복판은 어느 나라 도시에 비해서도 손색 없을 정도로 점점 정돈되어가고 있었다.

고층화되어가는 빌딩들로 인해 출퇴근 시간의 도심 인구이동은 혼잡한 편이다. 늘어나는 차량에 비해 도로가 좁아서 출퇴근 시간 도심 도로는 꽉 막혀버린다. 차량이 넘치는 도심 한복판을 지나다가 내가 사는 도시의 이름을 붙인 반가운 '서울의 거리'를 만났다.

한국에서 공수한 자재로 단장한 거리여서 마치 서울의 한 거리 같이 생겼다. 2km가 되는 이 거리를 걷고 있으니 몽골에 한국이 미치는 영향과 함께 한국에 우호적인 몽골의 환대가 느껴진다.

서울의 거리. 한국인들에게 반가운 이 거리는 울란바토르 도심 한복판에 있다.
서울의 거리.한국인들에게 반가운 이 거리는 울란바토르 도심 한복판에 있다. ⓒ 노시경

몽골 불교 역사에 길이 남은 '로브상 하이답 초이징'

울란바토르의 개발 열풍 속에서도 몽골 전통의 가치를 간직한 건물들이 고층빌딩 사이에 혼재되어 있다. 칭기즈칸 광장 남쪽으로 걸어가 울란바토르의 랜드마크인 유리빌딩 '블루 스카이 타워(Blue Sky Tower)'를 지나는데, 빌딩들이 사방으로 에워싸고 있는 몽골 전통 기와 건물이 나온다.

초이징 라마 사원 박물관(Choijin Lama Temple Museum). 몽골 라마불교의 모습을 관찰해 볼 수 있는 곳인데 원래 사원이었던 곳이 사원 박물관이 되어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유약이 퇴색되어가는 낡은 기와지붕이 사원 박물관의 오랜 역사를 알려주고 있었다. 몽골에서 만난 기와지붕도 곡선이 아름다워 여행자의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원래 19세기에 지어졌던 이 사원은 화재로 건물이 모두 소실되자 1908년에 다시 세워졌다. 19~20세기 몽골 사원 건축을 잘 보여주는 이 사원건물은 백 년 넘은 역사를 유지하고 있다.

국가에서 관리하던 이 사원은 몽골에 현재 남은 불교 사원 중에서 가장 우수한 건축물이자 몽골 건축의 걸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게다가 이 사원 내부에는 몽골의 국보급 유물이 13점이나 전시되어 있어서 전시품도 내실 있는 박물관이다.

이 사원 박물관은 몽골 불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스님인 라마(lama), '로브상 하이답 초이징(Luvsan Haidav Choijin)'의 이름에서 '초이징(Choijin)'만을 따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초이징은 몽골의 마지막 황제인 복드 칸(Bogd Khan)의 동생으로서 몽골의 신탁사제였고, 이 사원 박물관은 복드칸이 동생인 초이징에게 지어준 사원이었다. 1918년에 이 사원에서 수도하던 초이징 라마가 세상을 떠나자 사원은 초이징 라마 사원으로 불리게 되었다.

'초이징'은 불법의 수호신이라는 뜻으로 나라에 공을 세운 일부 원로 라마에게만 존경의 의미로 주어지던 호칭이었다. '초이징'이라는 이름이 현재까지도 전해지고 있는 것은 이 사원에서 살다 간 초이징 라마가 예언자로서 국가 중대사를 논하고 자문을 해주는 큰 삶을 살다 갔기 때문이다.

불교와 샤머니즘이 결합된 몽골 라마불교에서 초이징은 샤머니즘의 초능력적인 힘까지 가진 불교의 승려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몽골 불교의 신비스러운 모습이 어색하기는 하지만 우리와는 다른 몽골 문화의 한 단면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성벽같이 큰 벽돌벽 얌파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다

얌파이. 중국에서 넘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는다고 하지만 전형적인 중국 양식으로 지어졌다.
얌파이.중국에서 넘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는다고 하지만 전형적인 중국 양식으로 지어졌다. ⓒ 노시경

정문을 통해 사원 안으로 들어서려고 하니 정문 앞에는 마치 성벽같이 큰 벽돌벽, 얌파이(Yampai)가 우뚝 서 있다. 얌파이는 워낙 커서 앞이 내다보이지 않을 정도로 앞을 막아 선다. 중국에서 조벽(照壁)이라고 불리는 이 얌파이는 보통 궁궐이나 사원과 같이 격조 있는 건물 앞의 보호벽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몽골의 불교 사원 대문 앞에 칸막이처럼 세워진 이 얌파이는 외부에서 들어올 수 있는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한 것이다.

얌파이 벽면 앞에 서서 보니 벽면이 온통 현란한 조각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얌파이는 3개의 벽으로 나누어져 있고 중앙 벽에는 5마리나 되는 용 조각들이 잔뜩 부조로 조각되어 꿈틀거리고 있다. 그리고 얌파이 양 끝단의 벽에는 산과 구름, 바다를 배경으로 나무 밑에 사슴과 학이 조각되어 있다. 얌파이 벽면에 새겨진 조각들은 사람들이 복을 비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 중 살아 움직이는 듯한 수많은 용 조각은 액운을 쫓는 형상도 하고 있다. 현란한 부조들은 얌파이에 부딪친 나쁜 기운들이 얌파이에 무섭게 새겨진 조각들을 보고 물러나라는 의미도 있다. 이 얌파이를 보고 설명해주는 몽골 친구의 설명이 더 재미있다.

"이 벽돌 벽은 중국에서 넘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한 것이야."
"몽골도 중국에 대한 피해의식이 상당하군. 왜 이렇게 중국 주변 나라들은 대부분 중국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지? 이웃국가들이 오랜 기간 동안 중국의 패권주의에 시달렸기 때문이겠지?"
"13세기에는 우리 몽골인들이 중국대륙을 점령하고 중국 땅을 통치하기도 했었지만 그 이후로는 줄곧 중국의 공격에 시달려왔어. 청나라 때만 해도 몽골 땅은 모두 청나라에 속해 있었고 몽골인들은 많은 박해를 받았었지."

얌파이는 사원의 대문 앞에서 불길한 기운을 막으려는 것인데 몽골인들은 그 불길한 기운이 중국에서 온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몽골 친구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그가 설명하고 있는 얌파이가 전형적인 중국의 양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얌파이에 장식된 조각도 몽골의 초원보다는 중국의 다양한 산야를 닮아 있다.

공산정권 시절 대형 불교사원 대부분 사라져, 초이징 라마 사원은 살아남아

마하라자 숨. 우리나라의 사천왕문과 같은 문으로 험악한 인상의 사천왕들이 있다.
마하라자 숨.우리나라의 사천왕문과 같은 문으로 험악한 인상의 사천왕들이 있다. ⓒ 노시경

사천왕상. 동방을 나타내는 사천왕의 푸른색이 아주 인상적이다.
사천왕상.동방을 나타내는 사천왕의 푸른색이 아주 인상적이다. ⓒ 노시경

사원으로 들어가는 정문 역할을 하는 마하라자 숨(Maharaja Sum)은 우리나라 사원에도 있는 사천왕문(四天王門)이다. 문의 이름인 '마하라자'는 왕을 칭하는 이름이고, 같은 의미의 사천왕들도 불법을 수호하는 천왕들이다.

사천왕들은 천상계의 수미산(須彌山) 중턱에서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장하면서 중생들이 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몽골의 사천왕들도 우리나라와 같이 칼, 용, 비파 등을 들고 무시무시한 표정을 하고 있다. 동방을 나타내는 사천왕의 온몸에 번뜩이는 푸른색이 유독 강렬하다. 초이징 사원을 지키는 사천왕문을 지나자 드디어 청정도량 안으로 들어서는 느낌이 든다.

초이징 라마 사원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는데 몽골의 전통 건축물이 지금까지 참 잘 보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적 빌딩들이 가득 차기 시작한 울란바토르 도심에 아직까지 살아남은 희소성 있는 전통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 몽골에 대한 러시아의 폭정이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이 넓은 부지의 건축물이 없어지지 않고 잘 살아남아 있네."
"사실 이 초이징 사원 박물관은 공산정권에 의해 몽골의 사원들이 모두 사라질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원이야. 당시 700개에 달하는 몽골의 대형 불교사원들이 파괴될 정도로 몽골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이 벌어지고 있었지. 이 사원도 1938년에 러시아 스탈린 정부에 의해 한때 문을 닫았었어."
"하지만 이 사원이 건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몽골에서 최고로 인정받은 사원이었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들도 감히 파괴하지는 못했던 거야. 게다가 종교적 목적을 가진 불교사원이 아니라 사원 박물관으로 명의를 변경한 덕분에 사회주의 기간 동안에도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거지. 철거의 위기에서 벗어난 후 1942년부터는 라마사원 박물관으로 문을 열어서 일반인들이 이곳의 불교문화의 진수를 다시 보게 되었지."

초이징 라마 사원 박물관은 모두 5개의 주요 불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그 중 이 사원 박물관의 본당이라고 할 수 있는 걸 숨(Gol Sum) 안으로 들어갔다. 걸 숨 내부의 석가모니불 앞에는 초이징 스님의 불상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초이징 스님 불상은 놀랍게도 열반 후 시신을 화장하여 그 골분을 섞어 만든 불상이다. 초이징 스님 불상 옆에는 초이징 스님의 스승이었던 고승의 불상이 있는데 이 불상도 화장한 골분을 섞어서 만들었다.

게다가 이 불상의 외면에는 금박까지 입혔다. 사람의 골분을 섞어 사람 크기로 만든 불상이니 일종의 등신불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불상이다. 화장한 시신을 종이 반죽에 섞어 등신불을 만들었다고 하니 괜히 꺼림칙하기도 하지만 묘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한다. 스님의 시신으로 만든 불상은 신비스러운 몽골 불교의 특성과도 느낌이 연결되어 있다. 이 등신불 앞에 서서 보니 장인이 조각하여 만든 불상과는 달리 불상의 눈빛에서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하다.

본당에서 본 '참' 가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참’ 가면. 6천개의 산호로 만들어진 가면으로 어린 승려가 춤을 출 때 쓰는 가면이다.
‘참’ 가면.6천개의 산호로 만들어진 가면으로 어린 승려가 춤을 출 때 쓰는 가면이다. ⓒ 노시경

이 본당 안 분위기는 왠지 엄한 공포의 세상으로 들어선 것 같다. 본당 안에서 몽골의 전통 무용가면, '참(Tsam)' 가면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면은 놀랍게도 세계에서 가장 크면서도 얇고 딱딱한 산호로 가면 전체가 둘러싸여 있다. 이 대형 가면을 만드는 데에만 무려 6천개의 산호가 들어갔다. 칼로 사람을 내려칠 듯한 이 국보급 유물은 본당 안 다른 유물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기운이 있다.

몽골의 전통 가면 무용인 '참'은 춤 혹은 움직임이라는 뜻으로서 8세기에 몽골에 처음 소개되었다. '참'의 발음이 우리나라의 '춤'과 어원이 같은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발음이 비슷하다. 원래 이 '참'은 불교사원에서 선택 받은 어린 승려가 관중 없이 비밀리에 추는 춤이다. 이 어린 승려는 반드시 건강하고 신체에 전혀 상처가 없는 상태에서 '참'을 출 수 있어야 한다.

'참' 가면은 몸이 작은 승려가 얼굴에 쓰기에는 너무 커 보인다. '참' 가면은 원래 다양한 얼굴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이 본당 안 가면은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어린 승려가 악마 형상의 큰 탈을 얼굴에 쓰고 춤을 추는 모습은 어땠을까? 불교 사원 안에서 6천 개의 산호로 만들어진 가면이 너울너울 움직이는 모습은 장관이었을 것이다.

걸 숨 전각과 내부가 이어져 있는 전각인 장항(Zankhan) 전각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장항'은 수호신을 모신 곳이라는 뜻이다. 초이징 스님이 생전에 예불을 드리고 불경을 읽으며 몽골 국가 중대사에 대해 예언을 했던 곳이다. 그래서 이 전각 안에는 초이징 스님이 앉던 옥좌(玉座)가 한가운데에 있고, 그의 초상화 및 그가 사용하던 물건들이 박물관처럼 많이 남아 있다.

장항 전각 내부 사방에는 불화인 '탕카(Thangka, 幀畵)'가 가득한데 티벳 불교의 영향을 받아 주술이 가미된 밀교(密敎)의 영향이 곳곳에 보인다. 이곳 장항 전각 안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걸 숨 전각 안의 공포 분위기를 뛰어넘는다. 마치 아수라장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원박물관 대표유물 얍융상, 이성과 함께 보긴 민망했다

얍윰 상. 이 성교상은 남과 여의 합일을 통해 열반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얍윰 상.이 성교상은 남과 여의 합일을 통해 열반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노시경

수호신을 모셨다는 사원 내부 곳곳에서는 성(性)의 힘을 숭배하고 있다. 신비한 성적 결합을 조각한 남녀합체불, 티벳어로 '얍윰(Yab-yum)' 상이 마치 불이 활활 타오르듯이 조각되어 있다. 내가 들고 있는 이 사원박물관의 입장권에도 얍윰 사진이 대표 유물로 나와있을 정도로 눈길을 확 잡아 끄는 불상이다. 얍윰 상의 포즈는 보는 곳마다 다르다고 하는데, 남과 여의 다리의 포즈가 전에 보았던 얍윰 상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이원화된 현실세계는 거짓이고 이를 극복하고 깨달아야 진리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이 얍윰상이 나타내려고 하는 정신이다. 남성은 자비를, 여성은 지혜를 뜻하며 이 둘이 완벽하게 결합하여 이미지화된 것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이 얍윰 상이다. 동적인 남자와 정적인 여자가 교합을 하는 얍윰 상이 궁극의 경지인 열반에 이르는 한 방편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불교와는 다른 몽골불교의 진리 탐구 방편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인도에서 태동한 초기 불교가 힌두교와 결합한 후 티벳을 거쳐 몽골까지 오면서 매우 이질적인 불교가 되어버렸고, 그래서 이 몽골 불교는 우리나라에 전래된 불교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노골적인 교합상은 이성과 함께 보기에는 조금 민망한 모습이다. 나와 함께 장항 전각에 들어선 아내도 얍윰 상을 보고 정말 웃긴다는 표정이다. 이 얍윰 상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얍윰 상이 타락한 불교의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현대의 불교를 접하는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성스러운 불상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자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서적으로는 선뜻 마음이 동의하지 않지만 이러한 남녀교합상도 단지 문화의 차이일 뿐이라고 웃어버렸다.

우리가 전각 안으로 더 들어설수록 우리는 점점 더 극단적인 신비주의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장항전각의 내부장식은 몽골의 어떤 다른 사원의 내부장식과도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원 내부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이 전각 내부의 천장과 벽면은 온통 지옥으로 형상화되어 있었다. 결국 권선징악을 권장하려는 의도이겠지만 인간을 괴롭히는 괴상한 요괴들의 벽화와 장식들로 가득 찬 방에 들어오니 너무나도 놀랍기만 하다.

벽에 걸린 벽화에는 온갖 지옥의 모습이 다양하게 그려져 있다. 벽화에는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고, 죄를 지은 사람들은 죽은 후에 지옥에 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죄인들을 끓는 기름에 넣어 죽이거나 물에 빠트려 죽이는 장면들이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죄를 지으면 이런 고난을 받는다는 것인데 흡사 한편의 공포만화를 보는 것 같다. 밤에 꾼 악몽을 그림으로 펼쳐놓은 듯한 묘한 전개로 인해 지옥 벽화의 잔인한 표현들이 뇌리에 깊게 박힐 것만 같다.

요괴. 요괴들이 만세를 부르듯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
요괴.요괴들이 만세를 부르듯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 ⓒ 노시경

괴기스러운 그림. 작은 창자의 줄에 사람의 잘린 신체장기들이 대롱대롱 걸려있다.
괴기스러운 그림.작은 창자의 줄에 사람의 잘린 신체장기들이 대롱대롱 걸려있다. ⓒ 노시경

천장 중앙에도 마치 거꾸로 매달린 인형들이 만세를 부르는 듯한 요괴들이 가득 걸려있다. 천장의 황색 널빤지 목재 위에는 온통 괴기스러운 그림의 연속이다. 사람의 작은 창자로 길게 이어진 줄 아래에 사람의 잘린 머리, 잘린 팔, 심장, 폐, 신장이 엮여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사람의 피부 껍질도 빨랫줄에 수건 널듯이 널어두었다. 나쁜 짓을 하면 이렇게 된다는 의미인데 마치 내가 갑자기 불타는 지옥의 세상에 들어와 버린 것만 같았다.

밝은 대낮에 몽골 도심의 사원으로 들어왔던 나는 이 어두운 전각 밖으로 빨리 나가고 싶었다. 사람들은 보통 현세적 욕망을 기원하고 마음의 안녕을 얻기 위해서 불교사원을 찾는데 이 전각 안에는 지옥과 온갖 요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인간의 신앙심 표현은 참으로 다양하고 방향을 알 수 없게 전개된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다.

나와 아내는 놀라움 속에 어둡고 캄캄한 장항 전각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밝은 대낮이야. 햇살이 눈부신데!"
"다시 인간세상에 돌아온 것에 감사해야지."

초이징 사원 박물관. 고층빌딩의 도심에 남은 훌륭한 전통 박물관이다.
초이징 사원 박물관.고층빌딩의 도심에 남은 훌륭한 전통 박물관이다. ⓒ 노시경

찾는 이 많지 않은 사원박물관 마당 앞은 기거하는 스님도 없어서 조용했다. 우리는 햇빛 쏟아지는 사원의 경내를 천천히 산책했다.

사원박물관 밖으로 나오자 사원 주변의 대형빌딩에서 나온 회사원들이 주변의 식당을 찾고 있었다. 사원 주변의 유명 맛집 베란다(Veranda)와 여러 커피숍에는 외국 여행자들도 많이 보인다. 이 식당들에서는 초이징 사원박물관이 보이는 '템플 뷰(Temple View)' 좌석이 아주 인기이다. 현대화 되어가는 울란바토르에서 역사의 한 축이었던 불교사원도 이제는 고층빌딩 속의 한 섬이 되어 식당의 전망을 장식하는 조경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원 안에서 만난 요괴들이 현재 사원의 위상을 보면 놀라 자빠질 일이다. 밝은 세상에 나와서 방금 전에 만난 어둠 속의 요괴들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다시 밝은 세상 속에서 울란바토르 여행을 계속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 편이 있습니다.



#몽골#몽골여행#울란바토르#초이징#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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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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