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안녕하신가,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다. 경기도에 살고 성적은 괜찮게 나오는 편, 특기는 외국어와 선동, 취미는 빨간책 읽기다. 그리고 항상 불만이 좀 많다. 불만이 좀 많아서 이제부터 학교를 좀 해부해보려고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집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장소가 학교이다 보니 자연스레 학교에 대한 불만이 좀 쌓여서 말이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지금부터 학생이 직접 바라본 공교육에 대한 좀 많이 솔직하고 저렴한 고찰을 시작해보겠다. - 기자말

교실 이곳에서 보내는 학창시절. 마냥 유쾌한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교실이곳에서 보내는 학창시절. 마냥 유쾌한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 오마이뉴스

1. 원래부터 방학은 학원에서 공부하라고 있는 걸세

어쩌다 보니 이 글을 방학에 쓰게 돼 방학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볼까 한다. 나도 한때 이 참신하고도 '병맛'스러운 격언을 충실히 따르곤 했었다. 흔히 텐텐(10시부터 10시까지. 강사님들 생각도 좀 하자. 자칫하면 근로기준법 위반이다)이라고 부르는 방학 기간의 시스템에 의해 '돌려진' 그저 그런 학생이었다. 그 시절 학원에서 들었던 그 말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방학은 중간고사를 위한 전초전이다." 아니 무슨 학생들이 죄다 군인도 아니고. 졸지에 벌써부터 국방의 의무를 축하받게 생겼다.

그리고 학교라는 곳도 사교육의 틀 안에서 작동한다. 이 무식한 사교육의 소모전에서 학생들을 구원할 생각은 안 하고 항상 하는 말은 "학원에서 물어봐"다. 고등학교는 아직 의무교육이 아니라 해도 중학교부터 그러는 건 좀 너무한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대체 방학이라는 것이 왜 존재하는가? 정말 날씨로 인해 부득이하게 학교가 아닌 집과 학원에서 공부하라고 있는 것인가? 1년 365일 공부만 하란 소리군. 난 그렇게는 안 살련다. 방학까지 문제집에 파묻혀 살라니... 방학이란 건, 놀라고 있는 거다.

2. "하반 아이들은 이동해라"

학기 내내 들을 수 있는 소리다. '하반'이라는 학급은 특정 교과 시간에만 운영된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경우 수학, 영어 정도다. 그런데 잠깐. '하반'이란 게 왜 존재하는 것인가란 질문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내가 언뜻 들은 대답은 '수준별로 나눠 원활한 수업 진행을 독려한다' 정도. 수준별로 나눈다라. 위화감 조성과 더불어 하반 학생들의 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이다. 학생들을 기계로 보는 것인가?

하반 아이들이 열심히 해서 올라오면 되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런 시스템이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전국의 교장 선생님들과 교육감은 참고해주시길 바란다.

성적과 인생은 비례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꽤 비례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아니다. SKY도, 지방대도 모두 알바 찾아 직장 찾아 삼만리다. 고등학교부터 하반이란 이름으로 학생의 잠재력과 미래를 한정 지어버린다면 그 학생은 정말 그렇게 되어버린다. 자신들이 가두어놓고는 나중엔 "역시 저 학생은 원래부터 글러 먹었어"란다. 먼저 선을 그어놓고 그게 할 소리인가.

3. "역시 상반은 달라!"

'상반'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하반도 모자라서 상반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상반 아이들은 온갖 기대와 관심 속에서 학교생활을 보낸다. 그리고 '일반' 학생들은 그런 상반 학생들을 우러러보며 시기도 한다.

'하반'도 '상반'도 아닌 중간에 끼어있는 일반 학생들은 불만이 좀 많다. 선생님들은 항상 '하반'과 '상반' 학생들만 관리한다. 스승의 은혜라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잘 없다. 그저 이도 저도 아닌채 학교를 마지못해 다닌다. 그리고 아무리 공부를 해봐도 어찌 된 일인지 상반 학생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

'상반' 학생들도 불만이 좀 많다. 항상 쏟아지는 관심과 격려. 부담스러워 미칠 지경이다. 가끔은 도망쳐버리고 싶다. 물론 성적은 잘 나온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항상 수업이 끝나면 상반은 따로 수업을 받기 때문이다.

그 수업에서는 온갖 고급정보들이 쏟아진다. 다른 학생들에겐 좀 미안하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성적이 안 나오면 그게 이상하지. 그런데, 왜 야자와 방과 후 수업이 의무가 되는지는 좀 의문이다. 심지어는 방학에도 나오란다. 무조건 의무다. 이거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위반 아닌가? 이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누가 좀 구원해주길 항상 기도한다.

4. 등급별로 헤쳐모여!

'하반' '상반'으로도 모자라다. 이젠 등급별로 나눈다. '등급별 학습법'이란 게 있단다. 실제로 수업 받은 내용이다. 무려 학교에서. 1등급과 2, 3등급은 쓰는 노트부터가 다르단다. 물론 그럴 것이다. 1등급은 받는 대우부터가 다르니까. 모든 등급별로 자세히 가르쳐주면 모르겠다. 그런데 대체 왜 6등급부터는 한 줄 평인 건가. <썰전> 마지막 부분만 보는 기분이다.

학생들은 모두 다르다. 난 정치에 관심이 많고 내 친구는 미술에 관심이 많다. 누군가는 작곡가가 꿈이지만 어떤 학생은 꿈이 없다. 모두 다른데 같은 방식으로 '돌림'을 당한다. 애초부터 똑같이 돌려놓고 수준 차이가 난답시고 학생들을 분류한다. 한우도 아니고 학생들은 등급별로, 학급별로 나뉘어서 살아간다. 그리고는 끝내 그게 당연하다 믿는다. 그리고 삶은 그렇게 분류된 채로 흘러간다. 참 슬프다.

5. 섹스가 부끄럽나요?

섹스가 아니었다면 우린 모두 태어나지도 않았다. 섹스는 절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혈기왕성한 고등학생 사이에서 섹스와 관련된 토크는 빠질 수 없다. 이성 교제도 당연히 많다. 나는 아니지만 차고 넘치는 게 커플이다. 그리고 고등학생 커플이면 키스 정도는 자연스럽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나도 키스 유경험자니 말이다. 이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학교의 생각은 다른가 보다. '풍기문란'이라는 이름을 덮어씌워서 처벌까지 한다. 자제하라고만 한다. 성에 눈뜬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성교육은 하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자제하란다. 그러니 당연히 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지고 잘못된 성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청소년 임신과 같은 문제의 원인은 그런 것이다. 정말 이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면 제발 제대로 알려주길 바란다. 평소엔 자기만 하던 학생들도 분명 집중해서 들을 것이다. 야동 보지 말라는 내용의 헛소리는 이제 충분하다.

6. 학교폭력, 이대로 둘 건가요?

정말 안타까운 주제이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이 빈번할 수준이 되었을 정도로 심각하다. 정부도 더 이상 둬선 안 되겠다고 느꼈는지 이젠 학교전담 경찰관이란 것도 생겼다. 학교폭력 예방교육도 꽤 자주 한다. 그런데 정작 평소에 관리가 안 된다. 학교에는 학교폭력 상담 우체통 같은 게 있다. 그런데 복도 한가운데에 있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장소에서 신청서를 넣을 '용자'는 많지 않다. 그뿐만이 아니다. 신장 180cm 이하는 신청을 할 수도 없다. 좀 낮은 곳에 설치할 생각은 하지 못한 것일까. 키 작은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원.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관심을 쏟지 못하신다. 난 절대 선생님들을 탓할 생각이 없다. 이건 구조의 문제이다. 업무는 쏟아지고 시험문제 제출도 해야 하는데 20명이 넘는 아이들을 대체 어떻게 완벽하게 보살피겠는가. 참 극한직업이다.

결국, 구조를 바꿔야 한다. 어떤 곳이라도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건 '사람'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살고자 한다면 사람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항상 학교는 교육과 대입이 먼저다. 학생들은 뒷전이다. 그리고는 한 반에 30명 정도를 집어넣는다.

물론 모두 같은 교육을 받는다. 수준별로 나누기는 하다만. 진심으로, 현재 학교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학교폭력은 영원히 추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선생님들께서 학생들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고 관심 있게 지켜보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항상 사람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학교의 눈물, 학교폭력 학교폭력은 반드시 추방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 다시 고민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학교의 눈물, 학교폭력학교폭력은 반드시 추방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 다시 고민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 국무총리실 블로그

7.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세월호 참사가 있고 난 뒤부터 난 정치와 사회 이슈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지금은 더러운 정치판을 보며 환멸 대신 희열을 느끼는 변태의 열반에 올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문제를 알리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장소는 학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재밌게도 단 한 번도 학교에서 내 목소리를 제대로 내본 적이 없다. 항상 누군가가 방해한다!

학교에선 동아리를 통해 주로 활동을 하는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바로 동아리 담당 선생님께선 호출당하신다. 한 번은 수능 직전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관한 대자보를 붙이려고 했다. 물론 제지당했는데 그 사유가 '수능 직전인데 학생들 집중하는 데 방해된다'였다. 그런데 그건 핑계였다. 실상은 교감 선생님께서 승진을 앞두고 계셨는데 대자보가 붙으면 평가가 안 좋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학교라는 곳이 굉장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장소란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경기도 학생 인권조례에 따르면 학생은 정치적 의견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인권조례까지 갈 것도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있다.

학생도 정치적 의견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 이 권리가 제한당하는 일이 빈번한 나라는 진정한 민주국가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정말 헌법 제1조 1항을 온전히 실현하고자 한다면 학교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의견을 향한 억압부터 없애야 한다.

8. 오늘 급식은 코다리 강정이야...

고등학교 급식은 유상이다. 의무교육이 아니니까 당연하다 할 수도 있다(고등학교를 의무교육화하겠다던 사람이 있었던 거 같지만 넘어가자). 하지만 '먹을 거 가지고 치사하게 군다'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사정이 좋지 않아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학생들도 분명 있다. 그럼 그 학생들은 밥도 먹지 말라는 것인가? 현실이 어떻다 이래서 안 된다라는 핑계대신 학생들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들어줬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세금은 강에 처박으라고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질의 문제다. 지금 다니는 고등학교는 괜찮은 편이다만 중학교는 정말 충격과 공포였다. 제육볶음은 고무 같고 탕수육은 씹히지도 않고 국은 또 맹탕이다. 거기다 코다리 강정까지 더하면 완벽하다. 급식 비리가 의심되지 않을 수가 없달까나. 다음 정권에는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파악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급식이다. 진지하게. 놀랍게도 이걸 학생들에게 밥이라고 준단다.
급식이다. 진지하게.놀랍게도 이걸 학생들에게 밥이라고 준단다. ⓒ 엄지뉴스

9. 앉을 수 없는 의자, 휴지가 없는 화장실

난 가만히 앉아있는데 자기 멋대로 춤을 추는 의자. 아마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이 공감할 것이다. 또 화장실은 어떤가. 무슨 화장실에서 휴지를 찾기가 이렇게 힘든 것인지. 시설과 환경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하루의 반 이상을 보내는 공간이 이렇게 불쾌한 환경이라면 그 누가 불만이 없겠는가. 학교의 시설관리는 놀라울 정도로 미흡하다. 소수의 아주머니께서만 항상 고생하시는 형편이다. 이건 좀 아니다란 생각이 자주 든다.

10. 학생을 위한 민주주의는 없다

학생들은 대체 학교에서 어떤 것이 논의되고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학생들은 항상 공지만 받는다. 학생들의 의견을 받기 위한 자리는 없다. 낸다 해도 선생님 선에서 무시당하기 일쑤다. 한 번은 '수능 떡값 걷기'에 관한 찬반을 조사하기 위해 학급회의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하는 말이 가관이다. 이왕이면 찬성 쪽으로 나오게 하라는 것이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럴 거면 설문조사를 왜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대한민국의 학교는 너무나도 비민주적이다. 학교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경험해보지를 못하니 사회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학교에서 전교회장 등의 선거를 하긴 하지만 후보의 생각을 들어볼 기회가 거의 없다. 복도에 붙어있는 공약 3가지가 전부이다. 공개토론회 같은 자리는 아예 없다. 후보의 자질을 유권자가 전혀 파악할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청탁이 오가고 뇌물이 오간다. 친한 후보만 뽑고 감정이 좋지 않은 후보는 절대 뽑지 않는다. 학생들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전혀 배우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건강한 민주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학교부터가 민주적이어야만 한다.


#학교#학생#청소년#사회
댓글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