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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혼밥'을 즐긴다는 아침뉴스가 들립니다. '혼밥'이란 말이 생소합니다. 무슨 말을 줄여 쓴 것 같기는 한데….

"여보, '혼밥'이 뭐야?"
"그것도 몰라요?"
"혼합잡곡밥인가?"
"그것이 아니고, '혼자서 밥 먹는다'는 것이래요."

말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됩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신조어인 것 같습니다. 이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언어생활에서도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 듭니다.

'혼밥'은 대충 때우기 쉽상

아내가 생뚱맞게 내게 '혼밥'을 갖다 붙입니다.

"당신도 점심 때 '혼밥' 먹으면서 그래요?"

 '혼밥'으로 손수 끓인 떡국과 김장김치. 소박한 점심상입니다.
'혼밥'으로 손수 끓인 떡국과 김장김치. 소박한 점심상입니다. ⓒ 전갑남

아내 말을 듣고 보니 나도 그런 것 같습니다. 나는 현직에서 물러나고, 아내는 직장 생활을 합니다. 텃밭에 딸린 자그마한 농사지으며 생활하는 나도 점심이면 노상 혼자 밥을 먹습니다.

다시 대통령 관련 뉴스로 돌아갑니다. 대통령은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혼자 식사하는 것을 좋아하고, 해외순방 때도 일정이 없으면 호텔에서 혼자 드신다고 합니다.

가족은 물론, 여럿이 어울려 함께 식사하는 것은 담소를 나누면서 돈독한 유대를 맺는 중요한 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식사는 소통의 장입니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께서는 독특한 식습관을 가지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경우에 비추어보면 혼자 밥을 먹으면 입맛도 없고, 대충 때운다는 기분이 듭니다. 혼자 먹을 때는 간단한 간식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누가 밥을 차려주기라도 하면 그런 마음이 들지 않겠지만, 손수 해 먹어야 하는 밥은 귀찮을 때가 있습니다.

아내가 쓰레기통을 가리키며 말을 합니다.

"당신, 어제 점심 라면 끓여 먹었죠?"
"어떻게 알았지?"
"저기 라면봉지가 보이잖아요!"
"라면도 가끔 한 번씩 끓여 먹으면 맛있던데."

얼버무려는데, 아내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내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은 모양입니다.

나도 현직에 있을 때는 급식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맛난 점심을 먹었습니다. 30년이 넘게 여럿이 점심을 함께 먹어서 혼자 먹는 밥에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습니다.

요즘 '혼밥족'이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1인 가족이 늘고, 사람들의 성향이 개인주의화 되다 보니 혼자 밥 먹는 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세태가 되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편의점 대용식으로 간단히 때우고, 컵밥 같은 것이 있어 편리해졌습니다.

오후 늦게 퇴근한 아내가 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내 떡살을 넉넉히 뽑아 왔어요. 쇠고기도 좀 사 오고요. 이제 혼자서 라면 같은 거 먹지 말고, 떡국을 끓여 드세요. 떡국 끓이는 게, 라면 끓이는 일만큼이나 쉬운 거니까요."

 아내가 방앗간에서 뽑아온 떡쌀입니다.
아내가 방앗간에서 뽑아온 떡쌀입니다. ⓒ 전갑남

아내의 배려가 참 고맙습니다. 아내가 떡국 끓이는 요령을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듣고 있자니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혼자서 떡국 끓이기

떡국은 설날 아침에 먹는 풍습이 있습니다. 설날 이른 아침, 세배와 함께 떡국을 먹으면서 가족 간에 덕담을 나눕니다. 흰색의 떡국은 새해 새 아침에 한해를 무사히 보내기 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또 긴 가래떡은 집안의 번창과 무병장수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꼭 설날뿐만 아니라 별식으로 떡국을 많이 끓여 먹습니다.

 떡쌀은 물에 담가 불려놓습니다.
떡쌀은 물에 담가 불려놓습니다. ⓒ 전갑남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떡국을 끓여볼 참입니다. 떡살을 찬물에 한 30분 동안 담갔습니다. 아내 말을 빌리면 그래야 떡살이 부드러워진다고 합니다.

재료로는 쇠고기, 마늘, 파를 준비하였습니다. 거기에 계란 하나, 고명으로 쓸 김도 한 장 찾았습니다.

 떡국을 끓일 때 미리 준비한 육수에 쇠고기를 넣고 끓입니다.
떡국을 끓일 때 미리 준비한 육수에 쇠고기를 넣고 끓입니다. ⓒ 전갑남

국물은 아내가 간밤에 만들어놓은 육수를 이용할 생각입니다. 무, 다시마, 멸치를 넣어 만든 육수입니다. 육수에 불을 올리고 소고기를 잘게 썰어 넣습니다. 국물이 팔팔 끓어오르면 지저분해 보이는 거품은 국자로 건져냅니다. 얼려서 다진 마늘도 넣고, 좀 전에 불려놓은 떡살을 붓습니다.

어제 아내가 당부한 것이 생각납니다.

"간은 조선간장으로 하세요. 그래야 맛이 순해요. 좀 싱겁다 싶으면 소금은 약간만 하구요. 계란 지단을 부치면 좋은 데 번거로우니까 대충 풀어서 넣으세요."

 떡국에 들어갈 대파와 고명으로 쓸 김입니다.
떡국에 들어갈 대파와 고명으로 쓸 김입니다. ⓒ 전갑남

나는 아내가 가르쳐준 대로 합니다. 마지막으로 파를 넣고 한소끔 끓이니 보글보글 떡국이 완성됩니다. 고명으로 구운 김을 썰어 얹으니 근사한 떡국이 차려집니다. 반찬은 배추김치가 전부이지만 혼자 먹는 소박한 점심상입니다.

숟가락을 드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이웃집 아주머니입니다.

"점심 드셨어요?"
"지금 막 먹으려던 참인데요."
"혼자서 뭘 해서 드시려나? 우린 호박죽 쑤었는데…."
"난 맛난 떡국 끓였지요."
"떡국을 혼자 드시게?"
"저희 집에 누가 있나요."

이웃집은 이런저런 색다른 음식을 하면 점심때 혼자 밥 먹는 나를 생각해 불러냅니다. 아주머니는 배 꺼지면 호박죽을 먹으러 놀러 오라고 합니다.

나는 아주머니께 고마운 말을 전합니다.

"다음엔 아저씨, 아주머니께 내가 맛난 점심 떡국을 끓여드릴게요. 내가 했는데도 맛이 괜찮아요."

 내가 끓여 완성한 떡국입니다.
내가 끓여 완성한 떡국입니다. ⓒ 전갑남

혼자 먹을 때보다 여럿이 먹으면 더 맛날 거라고 하자 전화기 너머 아주머니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새해를 앞두고, 떡국을 끓여 '혼밥'을 즐긴 나는 모처럼 제대로 된 맛난 식사를 한 것 같습니다.


#혼밥#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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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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