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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내장 수술을 마치고 회복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 나는 즐겁게 아내의 생각으로부터 삶의 태도를 배웁니다.
 백내장 수술을 마치고 회복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 나는 즐겁게 아내의 생각으로부터 삶의 태도를 배웁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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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내는 몇 달 전부터 시야가 흐릿해진다는 소리를 이따금 했었습니다. 최근에는 운전대에 앉으면 맑은 앞유리를 닦고 또 닦곤 했습니다. 유리에 성에가 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이 더 흐려진 결과라는 것을 깨닫고 안과를 찾았습니다. 의사께서 백내장 수술을 권했다고 했습니다. 수술 날짜를 잡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저는 백내장은 나이 들면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으로 여겼습니다.
 
지난주에 그 수술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병원에서였습니다. 모든 수술에는 보호자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규정의 그 보호자로 제가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생각나지 않은 다른 약속을 지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 대신 처형께서 아내 옆을 지켰습니다.
 
일요일, 수술 후 처음으로 아내가 운전하는 차의 옆좌석에 앉았습니다. 아내가 수술에 대해 독백처럼 말했습니다.
   
"마치 짙은 안개가 걷힌 것 같아요.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퇴근 직후 병원 옆 대학 운동장의 육상 트랙 10바퀴씩을 도는 마라톤을 할 때였어요. 4km를 뛰고 가쁜 숨을 고르기 위해 운동장가 벤치에서 하늘을 보는데 청명한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문득 평생 앞을 보지 못하는 분은 눈부신 이 광경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누군가에게 내 눈의 하나를 주어 이 찬란함을 목도하는 선물을 드리고 싶다는 열망이 일었습니다. 마침 한 남자가 내 앞을 지나 운동장 너머 병원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어요. 나는 알지만 그분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리 병원의 안과의사였습니다. 그 의사를 불러 세웠습니다. "지금, 제 눈의 하나를 누군가에게 기증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그 의사는 확실치 않다는 것을 전제로 답했습니다. "법적으로 산 사람의 눈을 적출하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사후 기증만 가능하지 싶습니다.""
   
올 6월 말에 있었던 아내의 '뇌사장기기증'도 아내의 이런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2
 
아내의 눈이 갑자기 더욱 소중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눈 수술 후 아직 절대안정을 취해야 할 때라는 생각에 비로소 이르렀습니다.
 
"피곤하면 내가 운전할 테니 차를 갓길로 세워요."
 
하지만 아내는 운전대를 놓는 대신 가속을 택했습니다. 가평에서 군 복무 중인 아들의 첫 면회길에 자신의 눈보다 기다리는 아들이 더 중하다는 생각인 듯 했습니다.
 
직선 길이 나오자 다시 이야기를 이었습니다.
 
"수술실에서 점안마취로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집도의사가 온 듯 했어요. 손을 합장해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각종 주사와 의료장비의 선들이 연결되어 있어서 팔이 움직이질 않았어요. 잠시 팔을 풀어달라고 부탁한 뒤 합장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능력과 성심을 믿습니다. 더 밝은 세상을 대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의사선생님이 답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수술 뒤 당일 입원실인 통원수술센터에서 두어 시간 회복을 기다린 뒤 담당 의사가 계신 진료실을 방문했습니다. "제가 수술의사입니다. 수술방에서의 제 목소리 기억나시지요? 수술은 아주 잘 되었습니다." 아마 의사선생님은 수술실에서 마취 후 담당의사가 바뀌지 않았음을 목소리로 확인시켜주고 싶어 하는 듯 했습니다. 그분은 환자로 온 나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지난 여름 운동장에서 내가 한쪽 눈을 누군가에게 기증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던 그 의사였습니다."
 
오늘(12월 20일), 아내는 일찍 그 의사의 진료실로 갔습니다. 수술한 눈의 경과도 확인하고, 몇 년 전에 수술했던 다른 눈이 좀 혼탁해졌으니 간단한 레이저 치료를 받는 게 좋겠다는 권고에 따른 것입니다.
   
조금 전 아내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다른 쪽 눈을 외래에서 레이저로 지졌는데 숨도 안 쉬었어요. 움직이면 다른데 지질까 봐서... 정성 들여 해주셨어요. 환자가 편한지를 먼저 묻고...다시 한 시간 후 안압 재어야 돼서 기다리는 동안 점심 먹고 수납하고 일보고 있는 중입니다. 백내장 수술한 눈은 오늘 실밥 뽑았어요. 오른쪽 다시 혼탁해진 눈을 레이저치료받았어요. 뿌연 것을 레이저로 잘게 부셔놓았는데 그게 흡수되는 게 6개월은 걸린데요. 그 후 혹시나 다시 생기면 다시 치료해 주시겠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시술 후 혹 안압이 상승할까 염려해요. 오늘도 안압을 재어보고 낼도 여기 병원 못 나오면 가까운 곳에 가서 안압을 재어 보아야 된데요. 안압이 상승하면 눈이 튀어나올 듯 아프고 두통도 동반된다는군요."

덧붙이는 글 |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눈수술#백내장#아내#장기기증#안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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