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내 푸르던 들은 가으내 노랗습니다. 한가을이 깊으면서 노란 들은 차츰 사라집니다. 잘 익은 벼를 베어내어 노랗게 가득하던 들마다 빈들로 바뀌어요.
바람 따라 솨락솨락 노래하며 춤추던 나락이 사라지는 들은 텅 비면서 새로운 빛이 됩니다. 곧 가을 끝자락으로 접어들고, 머잖아 겨울로 들어설 텐데, 차츰 겨울빛이 곳곳에 나타납니다.
가을 들길을 걷다가 달립니다. 새삼스럽게 달라진 빛물결을 잔뜩 받으면서 걷다가 달립니다. 두 팔을 벌리면서 달리고,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면서 달립니다.
나비처럼 날갯짓을 합니다. 잠자리처럼 날갯짓을 하고요. 제비처럼 날갯짓을 해 보기도 하면서 차츰 비어 가는 들길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한가을 바람은 노란 바람일까요. 늦가을 바람은 누런 바람일까요. 구월에서 시월로 넘어설 즈음에는 차츰 노랗게 물들다가, 시월에서 십일월로 넘어설 무렵에는 차츰 허옇게 물듭니다.
"보라야, 하늘을 나는구나." "응, 난 비행기가 되었어. 슈우우우."
손으로 다리로 머리로 온몸으로 바람을 가르며 시골마을 가을은 호젓합니다. 이 가을길을 달리고 걷다가 문득문득 멈추어요.
"노란 꽃아, 너 꺾어도 되니?" 작은아이 곁에 다가가니 시월 끝자락에 돋는 산국을 톡 꺾습니다. 큰아이도 동생 곁에 서서 산국을 똑 땁니다. "얘들아, 우리가 늦가을에 따서 햇볕에 말린 뒤 차로 끓여서 마시는 꽃이야." "그래? 생각 안 나는데."
지난해 가을에 누린 산국차를 못 떠올리는군요. 그러나 십일월로 접어들면 흐드러질 산국을 신나게 훑어서 햇볕에 잘 말려 겨울에 따뜻하게 차로 끓여서 마시면 그때에는 비로소 "아, 그래! 마셔 봤어! 냄새 좋아! 생각나!" 하고 외치겠지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