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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작가는 개교기념일에도 연수동 화실에 김밥 세 줄과 컵라면을 갖고 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움직이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오일 아트 페인터(Oil Art Painter). 귀에 익은 단어가 아니어서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니 풀이가 없다. 구글에 단어를 입력하니 제법 많은 정보가 나온다.

"외국 작가들은 아티스트라는 단어보다 페인터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컴퓨터그래픽이나 사진예술을 하는 사람들과 차이를 부각하려는 거죠. 서양의 현대 작가들은 페인터라는 단어를 즐겨 씁니다."

자신을 오일아트 페인터라고 소개한 안미경(50) 서양화가를 지난 10일 부평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유화(Oil Painting) 작업을 주로 해온 안 작가는 요즘 드로잉의 재미에 빠졌단다.

14년 만에 다시 잡은 붓
   
 안미경 오일 아트 페인터.
안미경 오일 아트 페인터. ⓒ 김영숙

안 작가는 27년차 초등학교 교사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다니던 학교에 교사들 동아리가 생겼다. 그림과 바이올린 동아리였는데, 안 작가는 '악보 보는 게 싫어 그림을 선택'했다.

"당시 우리 동아리를 장명규 선생님이 지도해주셨어요. 장 선생님은 1983년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받으신 분이에요. 보통 꽃을 그리면 수강생한테 같은 꽃을 그리게 해요. 그런데 장 선생님은 좀 독특했어요. 모든 사람에게 다 다른 꽃을 그리게 했어요. 2년간 그 선생님한테 배웠죠."

다른 학교로 옮긴 후 이전 학교를 찾아가 그림을 배우는 게 쉽지 않아 그만뒀다. 1999년에 둘째를 임신하고는 아이한테 좋지 않을 것 같아 유화 그림도구를 모두 버렸다.

14년이 흐른 2013년, 둘째가 중학생이 되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때마침 연수구 연수동에 있는 한 화실을 지인의 호의로 사용할 수 있게 돼 일주일에 한 번씩 그곳에서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역시 장명규 선생님이 함께 했다.

여러 미술 장르 중 유화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궁금해 물었다.

"장 선생님한테 처음 배울 때 그러시더라고요. '유화는 오백년이 가도, 천년이 가도 훼손되지 않는 독보적인 장르다'라고요. 그 영향으로 물감이 잘 마르지 않고 후속작업이 많은데도 유화를 했습니다."

14년 만에 다시 잡은 붓이지만, 그동안 미술 활동을 멈춘 건 아니었다. '한 번 좋으면 파고드는 성격'이라고 자신을 표현한 안 작가는 미술관련 책도 많이 읽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유명 화가들 전시회도 빼놓지 않고 찾아다녔다. 뭉크·로댕·샤갈 등, 대가들의 국내 전시회는 물론, 배낭여행으로 해외에 나갈 일이 있으면 꼭 미술관에 들렀다.

"주로 관람객이 없을 때 가요. 이유는 몇 시간씩 앉아서 드로잉을 하기 위해서요. 색연필과 드로잉 북을 가지고 대가의 작품 앞에서 바로 그려요. 사진으로 찍은 걸 보고 그리면 생동감이 떨어지거든요."

그렇게 쌓인 예술적 역량으로 연수동 화실에서 만난 동료들과 몇 차례 그룹전시회를 열었다. 그때 누군가 그녀의 그림을 보고 구입하겠다고 했다. 그후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북 등, SNS에 그림을 올렸고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즈음 동구 창영동에 있는 뫼비우스 띠 갤러리의 김경미 대표가 개인전을 제안했다. 2014년 초였다.

내 예술행위가 정말 가치 있는가?

 학생의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 현재 인천시교육감 집무실에 걸려있다.
학생의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 현재 인천시교육감 집무실에 걸려있다. ⓒ 김영숙

개인 작업실도 없는 그녀에게 개인전 제안은 부담이었다. 보통 전시회를 한다면 작품이 최소 10개 이상이어야 하는데 5개밖에 없었다. 개인전을 결심한 후,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간 다음부터 교실이 작업실이 됐다. 휴일에도, 방학에도 나와서 그림을 그렸다. 그 전에 그렸던 작품 5점을 버리고 15점을 새로 그렸다.

"할 때는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그림을 그리고 방학 때도 학교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중학생인 둘째아이가 떠올랐어요. '아이를 챙기지 않고 하는 내 예술행위가 정말 가치 있는가?'라고 자문하면서 검증받고 싶어지더라고요."

전문가의 평론이 듣고 싶었고, 공무원 연수 때 강의한 미술사가 조이한씨가 떠올랐다. 조씨는 그림을 직접 본 다음 결정하겠다고 해, 그를 위한 1인 전시를 준비했다.

"개인전을 2015년 1월에 했는데, 2014년 11월에 평론을 받기 위한 1인 전시를 했어요. 보시고 나서 흔쾌히 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이틀간 전시했는데 평론가인 조씨 외에 갤러리를 찾은 사람들이 더 있었다. 폴 김 스탠포드대 교육대학원 부학장 가족이다. 교육공학 전공인 김 교수는 인천 출신으로 그의 어머니는 안 작가와 같은 동네인 부평구 산곡동에 산다. 페이스북으로 안 작가의 그림과 글을 본 후 연락을 했다. 김 교수는 아프리카 등지에서 어려운 아이들을 만난 경험을 동화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안 작가에게 삽화를 의뢰하기 위해서였다.

1인 전시를 하는 기간에 잠깐 귀국해 어머니와 전시회에 온 것이다. 김 교수는 안 작가의 모든 작품에 영어로 만든 제목을 선물했고, 안 작가는 김 교수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 하는 그림을 선물했다.

좋아하고 잘 하는 것, 예술
  
 담임을 맡았던 1학년 학생이 안 작가에게 준 편지.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이라고 쓰여있다.
담임을 맡았던 1학년 학생이 안 작가에게 준 편지.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이라고 쓰여있다. ⓒ 김영숙

모범적이고 순종적이었다고 자신을 표현한 안씨는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기보다는 부모가 원해서 교대에 지원했고, 지난 27년간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몇 년 전에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걸 발견했어요. 그게 예술이에요. 최근에 가톨릭 신자가 됐어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신의 선물인 거 같아요. 얼마 전에 안 심은록 미술평론가한테 '그림과 글의 문이 터진 것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그 분이 '자각하는 게 쉽지 않은데 자연스럽고 좋은 거'라고 조언해주시더라고요."

안 작가는 개교기념일에도 연수동 화실에 김밥 세 줄과 컵라면을 갖고 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움직이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그녀는 '사람이 미치지 않고는 어떤 능력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 '마이클'이라는 원어민 교사가 있었어요. 같이 사진 전시회를 갔고, 마이클이 어떤 사진 앞에서 사진을 찍는데 그 뒷모습과 각도가 마음에 들어 느낌이 '확' 왔어요. 그 장면을 내가 사진으로 찍어서 그걸 그림으로 10시간 동안 그렸어요. 미치지 않고는 못하죠.(웃음)"

안 작가는 몇 년 전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한 적이 있다. 건축가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그녀를 위해 멋있는 궁전을 그려서 선물로 줬다. 그녀는 아이에게 그것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페이스북 친구인 교육감은 안 작가의 개인전을 보러 왔고, 그 그림을 개인전이 끝난 후 현 인천시교육감에게 기증했다. 현재 교육감 집무실에 걸려있다.

우주와 생명 탐구는 계속

"우주와 생명에 대해 그리고 싶어요. 우주는 미지의 영역이잖아요. 영화 '인터스텔라'를 다섯 번이나 볼 정도로 모험심도 강하고 그런 분야에 관심이 있어요. 생명이나 생명력에 대한 관심은 인간성 회복이에요. 선악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전 긍정의 힘을 믿어요."

안 작가의 장점 중 하나는 궁금해 하는데 머물지 않고 늘 실천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 서울로 가 강의를 듣는데, 목요일에는 서대문구에 있는 자연사박물관, 금요일에는 인문학협동조합에서 진행하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철학 강의다.

"예술이란 그림만 잘 그린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문학 공부도 계속하고 많은 사람과 교류도 해야 해, 몹시 바쁩니다. 2회 개인전은 서울 인사동에 있는 인사아트센터에서 할 거예요. 내년 9월 13일부터 일주일간 열 건데, 장소 계약은 끝났습니다. 1회 개인전 제목은 '사랑은 외롭고 강하다(The lonely, but strong)'였어요. 2회 제목은 아직 안 뽑았어요. 절반은 우주와 생명에 대해, 나머지 절반은 사람을 그릴 겁니다.

나중엔 추상화를 그릴 거예요. 지금은 오브제(생활에 쓰이는 갖가지 물건들을 작품에 이용한 것)들이 그려달라고 손짓을 하는데, 추상화를 그리겠다는 목표는 명확합니다. 장명규 선생님이 전업 작가가 되는 것을 반대하더라고요. '천형(天刑)'이라면서요. 저는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안미경#오일아트 페인터#우주#생명#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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