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물의 소리가, 바람엔 바람의 소리가 있듯 자연은 다양한 소리들이 끊임없이 합주를 한다. 물의 소리를 물의 소리답게, 바람의 소리를 바람의 소리답게 전달하고 들려줄 수 있는 분야가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음악을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린다.
음악에 대해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음악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제법 많은 연주자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지만 공연장을 찾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최근 몇 분 인연된 분들의 초대로 소규모 공연이 아닌 말 그대로 전문 공연장에서의 공연, 정확하게 말하면 연주를 들을 기회도 가졌다.
1980년대 초까진 녹음이 가능한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하며 라디오까지 들을 수 있던 제법 큰 재생도구를 사용해 영화음악이나 좋아하는 팝송을 들었다. 그리고 점차 소형화된 재생도구로 소형 헤드폰을 사용해 듣던 음악들은 탄노이 웨스트민스터(Tannoy Westminster) 스피커로 듣는 음악과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다면 미친놈 취급 받겠지만 실로 경이로웠다.
음악다방이 번성하던 1980년대 'JBL'이란 로고가 선명한 스피커를 통해 듣던 음악들도 실상은 시낭송 때문에 음악다방을 드나들게 되면서 익숙해졌다. 노래 한계령이 된 한계령에서를 1981년 10월에 썼으나 이를 처음 낭송한 때가 1983년이 된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이때부터 음악다방에서 시낭송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몇몇 DJ 친구들이 자신들이 일하는 시간에 맞춰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시간 불렀다.
모든 부탁을 다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에서 주중엔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었고, 주말 저녁과 일요일 저녁시간에 맞춰 때로는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음악다방까지 달려가기도 했다.
서두가 길어졌는데, 고음부와 저음부의 음역을 생생하게 현장감 살려 전달할 수 있는 스피커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해야 이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란 판단에서다.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듣는 음악이나 소리들도 실상 저음부를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스피커엔 미치지 못한다.
등부터 후려치며 심장을 관통해 뚫고 퍼지는 전율, 전쟁영화나 베토벤의 운명 도입부와 같은 박진감 넘치고 웅장한 소리를 이어폰과 헤드폰으로 오롯이 살려내기엔 무리다.
하지만 장점도 있다. 차량이 질주하는 도로의 상황이나, 멀리서 다가와 스치고 사라지는 발자국소리나 물과 바람 등 여리고 섬세하면서도 동적인 장면은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다.
웨스턴민스터 스피커나, 혼(Horn)이란 말 그대로 나팔을 뜻한다. 확성기 앞부분을 자세히 본 이들은 알겠지만 소리가 흩어지지 않도록 소리를 모아 큰 소리를 내게 제작된 스피커들이 대부분 JBL이다. 이런 장치를 통해 이젠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환경이 됐다.
물론 지금도 어느 정도 마음에 들도록 음향설비를 갖추려면 몇 백 만원은 지불할 용의가 있어야 되지만 예전에 비하면 높은 출력의 스피커들이 많아 선택의 폭이 넓다.
'어떤 명기로 연주를 해야 좋은 소리를 구현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한다. 작은 악기 하나가 수 천 만원을 호가하는 현실에서 '어떤 소리를 연주해야 될까'란 차이에 대해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분명한 건 반복적인 노력만큼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진실이다. 단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대단히 훌륭한 작품을 남길 수 있기도 하지만 이는 특수한 경우다. 직접적인 체험을 통하지 않고 유추만으로 작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이 또한 대단히 어렵고 신기한 일이다. 따라서 절대다수의 창작품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된다.
몇 번 기회가 되어 임동창 선생님과 동행했다.
이때 선생님은 항상 다른 가족들(여기에서의 가족은 임동창 선생님의 부인이신 이효재님이 아니라 풍류학교와 흥야라 단원들이다.)의 움직임에 방해되지 않도록 배려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가졌다. 1~2명의 제자가 곁을 지키지만 이 제자들도 반드시 그리해야 해서가 아니라 이 순간을 통해 또 다른 과정으로 넘어가기 위한 배움의 시간을 갖는다는 걸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임동창 선생님께서는 항상 자연 그대로의 소리들에 집중한다. 좋은 풍경도 물론 보지만 이 순간에도 물과 바람의 소리들에 더 집중해 귀를 기울였다.
지리산 달궁계곡과 노고단에서도 그런 모습이었고, 설악산 자락 오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철원의 고석정에서도 깊고 푸른 강물의 흐름과 소리에 집중하며 가족들의 즐거움을 구속하지 않았다.
숲에 들어 바람이 숲을 어루만지는 소리를 귀로 들으며 몸으로 느끼고, 작은 여울이 바위를 부딪치며 내는 소리나 깊고 푸른 큰 강의 흐름도 본연의 소리를 듣고자 했다.
자연 이상의 명작 다큐멘터리도 없고, 스케일이 웅장한 합주도 없다.
자연 이상으로 힘이 넘치는 연주를 만나기도 어려우며, 풍부한 입체적 음향을 재현하기도 어렵다.
이 소리들을 듣고자 하는 이들의 만족할 줄 모르는 집요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음향기기를 제작하는 곳은 끊임없이 연구를 거듭하며 명품들을 제작하고, 음악가와 시인들은 일생을 자연의 모습과 소리들을 쓰고 그려내고자 한다.
임동창 선생님의 음악이 대단한 것은 바로 이런 노력들이 있음으로 가능하다.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무궁의 소리를 길어 올려 궁극을 도모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