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몇 주간 계속 부정청탁 금지법(속칭 '김영란법')에 대한 지적을 쏟아내더니 급기야는 '김영란법 때문에 돌잔치를 치를 수 없어 저출산 기조를 강화할 것'이라는 어이없는 이야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저널리즘 훼손, 내수 부진, 저출산 등 사회의 각종 문제가 김영란법 때문에 생겨난다고 봐야 한다.
이들이 인과관계와 상관관계(인지도 모르겠지만)의 차이를 몰라서 저런 '염치없는' 말을 쏟아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언론 권력' 행사에 가깝다고 본다.
기자의 임무는 사실관계, 흔히 말하는 '팩트'만 밝힌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사실의 연결, 그러니까 몇 가지 사실의 인과관계를 정확히 밝히고 충분한 증거를 '연결'하는 것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입증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사실을 전달하는 일' 그 자체가 아니라 사실을 연결하는 일, 바꿔 말하면 '빈칸을 채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론은 이 빈칸을 제멋대로 채우거나 의도적으로 빈칸을 누락하며 자신의 임무를 방기하기도 한다. 가령, "물대포를 쏘았다", "사람이 죽었다"는 두 개의 사실은 이미 거의 모든 사람이 안다. 그러나 국가폭력으로 백남기 선생이 쓰러지고 1년여의 사투 끝에 돌아가시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실'들과의 인과관계 논증이 필요하다.
이 죽음은 공식적으로 '병사'가 됐다. 주류 언론은 두 가지 사실 중 '물대포를 쏘았다'와 관련된 몇 가지 빈칸은 누락한 채 내보냈고 '사람이 죽었다'와 관련된 몇 가지 빈칸은 제멋대로 채웠다.
사인은 '병사'? 제멋대로 채운 빈칸에 두 번 죽었다
물대포를 쏘았다는 사실에서 언론이 누락하고 있는 것은 물대포를 사람에게 직접 겨누어 는 것은 규정 위반이라는 것이고 그것은 시위대의 불법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류 언론은 이 사실을 누락한 채 '불법 시위가 있었다. (그래서) 물대포를 쏘았다'는 부실한 인과관계를 그대로 확정했다.
반대로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불필요한 이야기를 덧댔다. '물대포에 맞았다 - 쓰러진 뒤 각종 합병증에 시달렸다 -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흘러보냈고 병사로 쓰인 사망진단서와 함께 이 죽음은 ('물대포에 맞았다 - 쓰러진 뒤 각종) 합병증에 시달렸다 - 사람이 죽었다'로 완성되었다. 부검이 이같이 '일부의' 사실에 더 힘을 보탤 거라는 추측과 의심이 강하게 들기에, 지금 사람들은 기를 쓰고 부검을 반대하고 있다.
김영란법에 대한 언론의 반응이 우스울 정도로 과하긴 하지만, 사실 새롭진 않다. 고백하건대 나도 예전에 콘텐츠 만들 때 몇 가지 사실관계를 누락한 적이 종종 있었다. 가령 어떤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이야기할 때 그 피해자가 투쟁 과정에서 했던 실언 같은 건 굳이 싣지 않았다. 나 아니어도 많이 물고 뜯을 테니 나라도 좀 치사하고 싶었다.
해보니 뻔한 말이지만, 사실 그냥 그 빈칸을 덮기 위한 이 일사불란한 대단위 기획이 늘 버거워서 하는 하소연이다. '선동'이 뭐 별건가. 없는 애들이 자기들 맘에 안 드는 이야기하면 그게 선동인 거지. 사실이야 어쨌든 무슨 상관인가.
여하튼 악을 쓰고 난리 치고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겨우 아주 작은 균열이나 낼 수 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다. 그냥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나라를 뜨고 싶은 생각뿐이다. 오늘도 유가족을 향한, 차마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생각까지 드는 말들을 몇 개나 봤다. 오롯이 그들에게만 향하는 고통이라서 더 미안하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어쩌겠나. 자리라도 채우고 있어야지. 외롭지라도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