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호, 추석방학이다. 내일 학교 안 가니까 오늘 늦게늦게 자야지."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아이가 환호성을 지른다. 한결이는 단양군 적성면에 하나뿐인 학교, 대가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다.
가방 던져놓고 텔레비전 앞에 앉는 녀석에게 고추밭 출동명령을 내렸다. 2학년 들어서는 부쩍 꾀를 내며 밭일 하기 싫어하는 녀석과 오늘은 기어이 고추 따기 작업을 함께 하려고. 그래봐야 해거름에 한 시간일 뿐이다.
밭에서는 종일 어머님이 청양고추 따느라 고생이다. 크기가 큰 일반고추는 하루에 20상자도 넘게 따는 어머님이 작은 청양고추는 하루에 열 상자 따기도 버겁다. 그래도 올해는 고추에 치명적인 탄저병이 별로 없어 작황이 좋아 붉게 익은 고추를 따는 재미가 있다. 어린 손주가 일을 거들러 밭에 오니 "모기 물리는데 뭐하러 나왔냐"면서도 손주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입가엔 웃음이 돈다.
할머니와 손주가 고추를 함께 딴다. 55년 경력의 할머니의 번개같은 속도에 고추따기 경력 5년차인 한결이도 실력 발휘를 한다. 시골에서 태어난 모태 농부 한결이는 한 살 때부터 논밭에 나왔고 네 살 때부터 고추를 땄다. 고추 따기 신공을 펼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역시 흙과 더불어 키운 보람을 느낀다.
제법 우쭐해진 한결이가 일을 마치고는 트럭 뒤에 타고 집에 가고 싶다며 훌쩍 뛰어 올라탄다.
"아빠, 할머니랑 뒤에 타고 갈래. 뒤에 타고 가는 게 훨씬 재밌거든."시골에서는 털털거리는 트럭 뒤에 앉아 바람 맞으며 시골경치 보는 운치가 제법 쏠쏠한 편이다. 9살 어린 농부는 이미 그 맛을 알고 있다. 영락없는 시골 아이다.
덧붙이는 글 | 유문철 시민기자는 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블로그 <단양한결농원의 유기 농사 이야기>에도 이 기사가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