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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힘의 논리로 억압하지 않는 생명의 순환을 이어가고자 세계의 지성들을 만난 것으로 2013년 책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를 펴냈다. 4년이란 시간이 지난 오늘날 더욱 다가오는 석학의 조언이다. 내일은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길 희망하기에 당시 공개되지 않은 영상을 공개하며 독자들과 소통하고자 글을 쓴다. [편집자말]
 피터 싱어 교수와 안희경 시민기자
피터 싱어 교수와 안희경 시민기자 ⓒ 안희경

한 세대 전까지 우유에 대한 믿음은 완벽했다. 완전식품으로 아침에 배달되는 우유는 부모의 사랑을 상징했고, 하루 한 팩의 학교 급식은 미래 세대를 튼튼히 키우려는 국가의 의지를 보여줬다. 수많은 나라에서 우유 생산 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현재는 인터넷상에 '우유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연일 클릭 되며 업체와 민간 사이에 논박이 뜨겁다. 그 자체로 우유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가 생성되었다. 영양보다 해로움을 줄 수 있다는 경보이다. 갑론을박의 내용은 여러 가지나 그 가운데, 현대의 축산 시스템 속에서 생산되는 우유에 함유된 성장 촉진제와 항생제의 부작용 논란이 대표적이다.

가치가 추락한 음식이 어디 우유뿐인가? 달걀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산후조리 음식으로 산모에게 먹이던 영양가의 결정체인 달걀도 안전성 논란의 중심에 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역시 인체 유해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귀하던 식재료들이 음식 산업화가 되면서 대량 생산 체제에 들어갔고, 덕분에 더 자주 일반인의 밥상에 오르게 됐다. 하지만, 기가 막히게도 그럴수록 밥을 나눈 식구들은 위험에 빠지는 처지가 되었다.

가격이 저렴해졌다는 것은 음식이 제품이 되어 단가 경쟁을 한다는 뜻이다. 돼지를 도살하기 전 마취를 하고 싶어도 농부는 할 수가 없다. 주사약 하나에 들어가는 비용이 생산 단가가 되어 가격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닭장에 더 많은 닭을 넣을수록 가격이 싸지니 닭이 날개를 펼 공간을 만들어 주기보다는 부리를 잘라 쪼아대는 본능을 차단하고 밀집도를 높이는 것이 이득이 된다.

좁은 우리에 사지를 펼 공간이 없는 돼지는 행여 몸을 뒤척이다 새끼 돼지를 깔아뭉갤까 봐 아예 쇠창살 너머에 새끼를 두고 젖을 빨리게 한다. 흙 없는 쇳덩이 맨바닥은 분뇨 청소 시간을 줄이고 인력 고용을 줄이는 묘책으로 사용된다. 생산할 능력도, 젖을 만들 능력도 없는 수소는 태어나자마자 도살된다.

생명을 살찌우는 음식이 될 가축(생명체)들이 단추나 지퍼, 볼트나 너트처럼 취급되고 있다. 그 음식을 먹을 인간 역시, 거대한 생산 시스템 속에서는 부품보다 나은 위치라 말하기 어려울 듯하다. 저렴한 인력들의 식탁은 저렴한 식품으로 차려지고, 인간 부품들은 모양만 풍성한 만찬을 즐긴다.

2012년, 오늘 우리 사는 세상의 급박한 현안을 살피던 때, 밥상의 위기, 생명의 위기를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윤에 눈먼 인간이 흔드는 먹이사슬의 위기는 돈이 많고 적은, 부의 순위로 휩쓸고 나가지 않기에, 하나의 생명체인 지구의 위기는 곧 모든 생명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대표적인 윤리학자이자 환경, 반빈곤, 평화운동가인 프린스턴대학교 생명윤리학과 석좌교수 피터 싱어를 만났다. 그는 우리에게 <죽음의 밥상> <동물해방> 등의 책으로 친숙한 인물이다.

그는 산업화 속에서 생산 단위로 전락하는 생명의 위태로움 뿐 아니라 또 다른 지점을 지적했다. 인간의 마음이 뻗어가는 방향이다. 고통에 대해 공명하는 우리의 공감 능력은 지금까지 혈육을 넘어 남녀 성적 차이와 국경 너머까지 확산되어 왔다. 피터 싱어는 이제 고통받는 다른 종에 대한 공명, 가난 속에 죽음으로 치닫는 이들에 대한 공명까지 마음을 뻗어 보라고 당부한다.

그와 만났던 시기는 지난 2012년 봄이었다. 2011년 구제역 파동으로 돼지들을 대량 살처분하면서 온 산을 울리던 돼지들의 비명, 어미 소 잃은 송아지마저 쫓아가 죽여야 했던 악몽이 채 지워지지 않은 2012년의 봄.

그에게 한국에서 있었던 350만 마리가 넘는 대량 살처분 소식과 그때 차출된 수의사의 이야기를 꺼냈다. 1년이 되도록 매일 새벽, 참회의 기도를 올리지만,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연을 전하던 순간부터 옮겨본다. 다음은 4월 18일 캘리포니아 UC 버클리대학교에서 피터 싱어와 나눈 대화 중 일부이다.


"엄청난 주제를 꺼냈어요. 산업화된 축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돼지를 산 채로 묻어서 손쉽게 재빨리 죽이는 일은 정말이지 끔찍하죠.  근본적인 문제는 가축을 산업화된 대규모 축사에서 사육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동물에게 잔인한 짓이죠. 살아있는 내내 고통을 가하는 환경입니다. 그들은 이런 조건에 살도록 진화되지 않았어요. 일생을 사는데 맞는 조건이 아니죠. 괴로움과 잔혹함 뿐입니다.

두 번째로 신종 질병이 생기기에 최적화된 온상지에요. 축사 안에 많은 수가 밀집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가 병에 걸리면 매우 급속도로 번져나가죠. 돌연변이가 나올 수 있기에 다양하게 증식되고 그 중 어떤 경우는 인간에게도 위험합니다.

공장형 축사로부터 유발되는 심각한 공중보건 위협이 있고, 역시 환경적인 위협도 있어요. 지역적으로 생산되는 엄청난 양의 분뇨에서 발생하는 오염이 매탄 가스로 기후변화로 이어집니다. 이 또한 치명적이죠.

우리는 고기를 덜 먹고 동물성 식품을 더 적게 먹어야 해요. 육류를 많이 찾는 소비가 공장형 축산의 원인입니다. 육류를 많이 먹는 식습관은 몸에 좋지 않습니다. 수많은 질병이 다량의 육류섭취에서 와요. 소화기계통의 암과 심장질환이 그렇죠.

자본주의는 상품을 생산하는데는 효율적인 시스템입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죠. 대량의 제품을 싸게 생산하죠. 성과급을 이용해 사람들을 열심히 창의적으로 일하게 만드니까요. 이런 면에서는 더 나은 생산 시스템을 보질 못했어요. 문제는 자본주의에는 규제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안그러면 계속 팽창합니다. 모든 것을 단기적 가치로 바꿔버려요.

숲의 가치도 단순해져요. 목재 뿐입니다. 숲의 아름다움이나 안에 사는 동물을 보호하는 일이 모두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쓸모 없어지는 거죠. 모든 것이 가격으로 환산됩니다. 이런 방식의 사고는 옳지 않아요."

- 우리의 문명이 곧 몰락하리라 느끼는가요?
"우리 문명의 가장 큰 위기는 기후변화라고 봐요. 심각한 문제지만, 이 문명은 아마도 다음 세기까지는 살아남겠죠. 그때까지는 어쩌면 새로운 기술이 나올 겁니다. 살아남을 거라는 말이 아주 엄청난 생명 피해가 없을 거라는 뜻은 결코 아니에요. 기후변화로 수십 억의 사람들이 피난민이 될 겁니다.

심지어 수 억의 사람들이 죽겠죠. 비극이지만 그렇다고 문명이 몰락하진 않을 거예요. 충분한 사람들이 살아갈 충분한 장소가 있겠죠. 이 문명을 계속 끌고 갈만한 만큼요. 다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문명의 몰락이 아닙니다. 불필요한 죽음이에요. 기후변화로 들이닥칠 고통 말이에요."

- 누가 윤리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요. 제 답은 모든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가 단 한 명의 윤리적인 지도자를 원한다 생각하지 않아요. 윤리는 우리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죠.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에게 귀 기울이는 겁니다. 저는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하기를 희망해요. 더욱 공감하길요.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 보는 거죠.

지독하게 가난한 나라에서 하루 1달러로 살아내는 일이 어떨지 생각해 봅시다. 지독한 가난으로 자식을 잃으면 어떠할지 생각해 봐요. 좀 더 나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그렇게 죽지 않았을 것을 말이에요. 공장식 축사에 갇힌 동물이라면요? 우리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물어야 해요. 그러니 우리에겐 윤리적 지도자는 필요 없답니다. 스스로 물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 다음 양심에 맞게 행동하는 겁니다."

피터 싱어는 동양의 전통에 배어있는 불교적 가르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각할 수 있는 모든 생명에 대한 자비 사상'을 좋아한다며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 사이에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갈 철학이기에 서구의 인간과 동물 사이를 분리해내려는 경향을 메워줄 수 있길 기대한다 했다. 더불어 맹자의 가르침을 새겨보자 당부한다.

"맹자의 글에 배고픔을 돕는 의무에 대해 나옵니다. 맹자가 양혜왕에게 한 말이죠. '왕께서는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는데도 창고를 열 줄 모르며,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일을 놓고 내 탓이 아니라 흉년 탓이라고 합니다. 이는 사람을 찔러 죽이고 내 탓이 아니라 무기 탓이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우리는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정부가 반드시 책임 있게 나서야 하고요. 정부가 개입해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곳엔 정부의 책임이 있어요. 타인이 배를 곯고 있는 것이 우리 책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거죠. 우리는 악에 대항하면 그 악을 막아낼 수 있고, 착한 정의를 이루고자 하면 그 선을 행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인터뷰 말미에 그에게 물었다. 만약에 선생이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그는 예의 잔잔한 표정으로 읊조리듯 이야기했다.

"저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주는 도움의 양을 엄청나게 늘릴 겁니다. 지구의 빈곤을 줄일 거예요. 공장식 축사도 없앨 겁니다. 그래서 동물이 비록 도살되어 고깃덩이가 되더라도 죽기 전까지는 동물다운 생을 살게 하겠어요. 그리고 전체적으로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데 노력할 겁니다. 의료보험제도가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용되도록 하고 싶어요."

담담한 대답이었지만, 마치 내게 꿈이 있다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처럼 진하게 밀려들었다. 그의 삶의 모습이 배어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1975년 '동물해방'을 발표하기 전부터 채식주의자가 됐다. 공장식 축사에서 길러지는 동물의 실태를 본 직후 그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육식을 끊었다.

점차 유제품을 비롯한 동물성 식품 섭취를 줄였고, 40년 넘도록 지켜오고 있다. 더불어 빈곤 퇴치를 위해 수입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기부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당신이 구할 수 있는 생명(the life you can save)'이라는 국제 구호 웹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

변화는 생각에서 오지만, 이는 인터넷상에서 포스팅으로 댓글로 외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물화 되지 않는다. 삶에서의 변화만이 실질적인 힘, 구체적인 꼴로 전환을 이뤄낼 수 있다. 깨달았다 느끼는 것은 그저 자기 만족일 뿐이고, 진정한 깨우침이란 오직 삶의 태도로 증명된다. 오직 행위로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와 만나고 돌아오는 길, 나라도 고기를 먹지 말아보자 다짐했다. 또 적지만 생기는 돈 일부나마 나눠보자 생각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그런대로 지키기는 한다. 그렇다고 별 대수로운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말고 얼마나 더 대단할 수 있을까 반문하면... 하지 않을 수 없다. 작은 것이라도 바꿔나가지 않을 때, 세상은 그 조그만 기회나마 또 놓치게 되는 것이기에, 우리에겐 조금씩이라도 습성의 변화를 늘려야 할 당위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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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경#피터 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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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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