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청명상하원
청명상하원 ⓒ 이상옥

청명절의 북송 도성
청명상하원(淸明上河園)에서 잠시 길을 잃고...
- 이상옥의 디카시 <장택단에게 길을 묻다>

정주 인근 개봉의 개봉부와 포청천의 사당 포공사는 둘러 봤지만 개봉에는 여러 명소들이 많다. 개봉에서 꼭 찾아 봐야 할 곳으로 청명상하원(淸明上河園)도 있다. 개봉은 칠조 고도(七朝古都)로 불릴 만큼 유명하지만, 고도 개봉은 황하의 범람으로 13미터 지하로 매몰돼 버렸다. 지금도 개봉 지하에는 칠조 고도의 유물들이 잠들어 있다. 발굴이 계속 되고 있어 앞으로 그 진면목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한다.

청명상하원이 왜 의미가 있느냐 하면, 북송의 화가 장택단(張擇端)이 1120년경 청명절의 도성 변경(汴京, 지금의 開封)을 그린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를 그대로 재현하여 당시의 풍속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토요일 정주경공업대학교 앞에서 오전 11시가 좀 지나 28번 버스를 타고 정주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개봉 가는 버스를 탔다. 기차표를 예매하지 못해 시간이 좀 걸리지만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는 예매를 하지 않아도 오후 1시경 바로 탈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는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개봉역 근처 터미널에 도착하여 택시로 청명상하원에 도착했다. 택시 요금은 20위안을 불러 그냥 탔다.

중국의 10대 명화의 하나 <청명상하도>

중국의 10대 명화의 하나로 불리는 <청명상하도>는 현재 북경 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북송의 도성 변경(汴京, 지금의 개봉)을 흐르는 강가 주변의 풍경을 그린 그림으로, 백성들을 비롯하여 집, 점포, 마차, 배, 가마, 가축, 선박 등 당시의 북송 도성을 세밀하게 그려낸 중국 고대의 최대 규모 풍속화이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과 동물 중 같은 표정이 없을 만큼 정교하게 그려졌다고 한다.

청명상하원 입장료는 100위안이었다. 청명상하도를 현실화한 청명상하원에 들어서자마자 장택단의 석상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으며 그 뒤로는 청명상하도를 새긴 거대한 조형물이 있었다. 청명상하원은 천여 명의 직원이 송나라 복장을 하고 당시 생활풍속을 재현하고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북송 시대로 거슬러 간 느낌이 들었다.

 청명상하원 입구
청명상하원 입구 ⓒ 이상옥

 <청명상하도>를 그린 북송의 화가 장택단의 석상
<청명상하도>를 그린 북송의 화가 장택단의 석상 ⓒ 이상옥

 청명상하도를 새겨 놓은 조형물
청명상하도를 새겨 놓은 조형물 ⓒ 이상옥

 북송 때 풍속을 재현하고 있다.
북송 때 풍속을 재현하고 있다. ⓒ 이상옥

 북송 때 제왕들의 인물화 전시
북송 때 제왕들의 인물화 전시 ⓒ 이상옥

 양이 끄는 수레
양이 끄는 수레 ⓒ 이상옥

 청명상하원의 아름다운 풍경
청명상하원의 아름다운 풍경 ⓒ 이상옥

각종 전시와 공연 등의 볼거리가 펼쳐지는 가운데 음악극 형식의 대형공연 <대송-동경몽화(大宋-东京梦华)>은 그 규모가 수백 명의 배우와 수십 필의 말이 등장하여 화려한 북송의 역사를 펼쳐 보여준다고 하는데, 보지는 못했다.

제왕들의 인물화도 이채

몇 군데 전시를 자세히 봤는데, 그 중 인상적인 것이 <송조제왕전(宋朝帝王展)>으로 제왕들의 인물화가 이채를 띠었다. 또한 말, 양이 끄는 수레도 호기심을 끌 만했다. 북송대 건물들을 재현한 것이 대부분 붉은 색채로 채색되어 강렬하게 보였다. 번화한 도성의 이미지도 오늘의 도시와는 사뭇 다르긴 해도 당대에도 오늘 못지않은 풍류와 낭만을 즐기며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것을 느끼게 했다.

이번 여정도 주마간산격이었지만 그림 속의 도성을 실제 모습으로 확인한 것이 큰 수확이었다. 정주로 돌아오는 길에는 청명상하원에서 개봉역으로 가는 시내버스가 있어, 1위안으로 개봉시외버스터미널로 와서 정주행 버스를 타고, 정주시외버스터미널에 잘 도착하여 다시 시내버스로 귀가하니, 저녁 10시가 조금 넘었다.     

덧붙이는 글 | 올 3월 1일부터 중국 정주에 거주하며 디카시로 중국 대륙의 풍물들을 포착하고, 그 느낌을 사진 이미지와 함께 산문으로 풀어낸다.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감흥)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공감을 나누는 것을 지향한다



#디카시#청명상하원#장택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 빈롱 소재 구룡대학교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