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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릉 지궁
 건릉 지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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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태공주묘 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우리는 잠시 노조포(老粗布) 판매점엘 들린다. 노조포란 천연섬유를 수공방식으로 짠 직물이다. 통기성이 좋고 감촉이 좋으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고 한다. 이곳에는 이들 직물을 짜는 배틀도 전시되어 있다. 영태공주묘는 원래 무덤이지만 이제는 관광지가 되어 식당과 상점 등이 주위에 차려져 있다.

영태공주묘 입구로 가니 먼저 화표가 보인다. 화표는 건릉에서 봤던 것과 같은 모양으로 크기가 조금 작을 뿐이다. 화표 오른쪽으로 최근에 만든 건릉 지궁이 있다. 건릉의 내부를 재현한 것으로 사자 두 마리와 직각장군 두 쌍이 좌우를 지키고 있다. 우리는 지궁으로 들어가지 않고 영태공주묘 입구 건물로 들어간다.

 영태공주묘
 영태공주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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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보니 건릉박물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곳은 원래 영태공주묘지만, 한쪽에 건릉박물관을 조성해놓았기 때문이다. 건릉박물관은 1960년 설립된 건릉 문물관리소가 1978년 박물관으로 확장 개관되었다. 이곳에는 건릉의 배장묘 장회태자, 영태공주, 의덕태자 묘에 있는 벽화, 부장품 등을 진열해 놓았다. 1987년부터 1991년까지 동서진열실을 중건해 전시면적이 600㎡에 이르게 되었다.

영태공주묘 안으로 들어가다

 백호도
 백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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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태공주묘로 가는 길에는 석물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직각장군으로 불리는 무인석이 두 쌍 있고, 그 안쪽으로 사자상이 있다. 규모와 숫자가 작아서 그렇지 건릉의 석물 배치를 모방했다. 묘도로 들어가는 건물 안에 이르니 시원한 기운이 뻗쳐나온다. 이곳 묘도 역시 아래로 경사져 있다. 묘도의 폭은 3.9m이며, 묘실까지의 길이는 87.5m이다. 그리고 묘실의 깊이는 16.7m나 된다.

묘도는 좌우에 목책을 설치해 벽화를 보호하려고 했다. 그것은 이곳의 벽화 훼손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습기로 인해선지 석회가 하얗게 들뜨기까지 했다. 이 그림에는 의장대로 보이는 관원들이 도열해 있다. 그리고 창을 든 무인들도 보인다. 벽 양쪽으로는 청룡과 백호가 그려져 있다. 또한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기와를 얹은 목조건축도 보인다.

 삼채용: 명기
 삼채용: 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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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나타나는 명기들은 색깔이 많이 퇴색했다. 당삼채인 건 확실한데, 제 색이 나질 않는다. 마용, 시종용, 시녀용, 기마용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병, 합, 접시, 촛대 모양의 도자기, 가옥 등 생활용품이 진열되어 있다. 천장에는 사각형 무늬를 가지런히 배열하고, 그 안에 꽃을 그려 넣었다. 벽에도 꽃나무가 그려져 있는데, 꽃의 종류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묘지를 통해 영태공주의 삶을 알아보다

 영태공주 묘지
 영태공주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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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용도가 이어지고, 초입에 영태공주 묘지(墓誌)가 있다. 묘지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쪽에 전서로 대당고영태공주지명(大唐故永泰公主誌銘)이라고 쓰고, 아래쪽에 예서체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태상소경(太常少卿)이자 수국사(修國史)인 서언백(徐彦伯)이 찬했다. 비문에 의하면 공주의 이름은 선혜(仙蕙)고, 고종의 손녀이며, 황상(皇上: 중종)의 제7녀다.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영태공주에 대한 찬양과 미화 일색이다. 공주는 요대(瑤臺)의 빛을 발하고, 주수(珠樹)의 향기를 내뿜고 있다. 영혼이 아름답고, 사람들과 잘 어울려 상서로움을 만들어낸다. 하늘로부터 네 가지 덕을 받고 태어나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다 알고 있다. 여기서 요대는 옥으로 만든 천상의 누대고, 주수는 옥으로 된 열매로 맺는다는 곤륜산의 나무다.

 무측천
 무측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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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에 영태군주(永泰郡主)로 제후에 봉해졌고, 20세 정도의 무연기(武延基)와 결혼했다. 무연기는 위왕(魏王) 무승사(武承嗣)의 아들로, 무측천이 고모 할머니가 된다. 그런데 그녀가 701년 17살의 나이에 할머니 무측천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그것은 아버지 중종이 684년 황제의 지위를 잃은 것과 관련이 있다. 무측천이 직접 황제가 되면서 나라 이름까지 주(周)나라로 바꾸고 말았다.

이로 인해 중종의 큰 아들인 이중윤(李重潤)과 이선혜가 서인(庶人)으로 강등되고 말았다. 당시 이들은 너무 어려 상황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 들어 관작이 회복되고 결혼도 하면서 할머니의 전횡을 알게 되었고, 이를 비판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705년 할머니 무측천이 죽고 아버지 중종이 황제로 복위하면서, 자식들에게 의덕태자와 영태공주라는 시호를 내리고 능에 준하는 규모로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전실의 궁녀도가 벽화예술의 백미다

 상아홀을 든 시종
 상아홀을 든 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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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를 보고 나면 길은 자연스럽게 전실로 이어진다. 전실의 사방벽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 인물은 영태공주를 모시는 시종과 시녀들이다. 전실 입구쪽 양쪽 벽에는 시종이 상아홀((象牙笏)을 들고 읍하고 있다. 주실 입구쪽 양쪽 벽에는 시녀 두 명이 예를 갖추고 있다. 이 시녀들은 주실인 무덤으로 들어가는 주인에게 예를 표하는 모습이다.

전실의 긴 벽쪽에는 시녀도가 그려져 있다. 모두 4개의 그림이 있는데, 7명의 시녀를 그린 것도 있고, 9명의 시녀를 그린 것도 있다. 그래서 이 그림을 9인 사녀도(九人仕女圖) 또는 궁녀도라 부르기도 한다. 그림에서 여인들은 손에 물건들을 하나씩 들고 자신이 할 일을 하는 모습이다. 부채, 촛불, 컵, 털이개 등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봄날 예물을 들고 행사장으로 가는 모습이다. 

 궁녀도
 궁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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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궁중생활의 단면을 짐작할 수 있다. 궁녀들은 대부분 통통한 얼굴에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옷은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리고, 목에서 가슴 위까지는 드러냈다. 그 위로 사리 형태의 스카프를 둘렀다. 색깔은 붉은 계열이 많다. 머리는 틀어 올려 우아함을 더했다. 전체적으로 단아하면서도 편안한 모습이다. 

건릉박물관의 삼채용과 금은옥기 그리고 석곽

 건릉 문물정품전
 건릉 문물정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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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실을 지나 주실로 가는 통로에는 그림이 없다. 주실에도 벽화가 없고 석곽만 있다. 석곽 안에 목관이 있고, 부장품이 있었을 텐데, 이곳에는 없다. 영태공주묘에서는 금과 은 그리고 옥기와 도자기가 많이 나왔다. 그것을 건릉박물관에 옮겨 중요한 것만 전시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보기 위해 영태공주묘를 나와 건릉박물관 건릉문물 정품전(精品展)으로 간다.

건릉박물관은 동서 두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하나가 무측천시대전(武則天時代展)이고, 다른 하나가 건릉문물 정품전이다. 무측천시대전은 패널을 통해 고종과 무측천으로 이어지는 7세기 후반 당나라의 정치와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증명하는 당삼채용, 묘지명 등을 전시하고 있다. 맞은편에 있는 건릉문물 정품전은 장회태자묘, 영태공주묘, 의덕태자묘 등에서 나온 삼채용, 기명(器皿), 금은옥기, 벽화 등을 전시하고 있다.

 녹유 쌍용손잡이 병
 녹유 쌍용손잡이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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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모두 다른 박물관에서 수도 없이 본 것이지만, 건릉 배장묘에서 나온 것이라 하니 자세히 살펴본다. 그중 삼채용이 가장 많다. 남녀 기마용, 마용, 장군용, 부인용 등이 있다. 낙타용도 보인다. 마용의 경우 안장까지 장식이 있어 화려하다. 기마용은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에 따라 궁사용, 수렵용, 악무용으로 나누어진다. 악기를 연주하는 기마악무용이 인상적이다.

무덤을 지키는 진묘수와 천왕용도 여기 있다. 무섭게 보이기 위해 진한 갈색과 녹색을 사용했다. 특이한 삼채는 병기걸이(兵器架)다. 무슨 병기가 걸렸을지 궁금하다. 기명은 대부분 도자기다. 녹유 쌍용 손잡이 병(綠釉雙螭把罐)과 탑 형태의 물동이가 인상적이다. 잔과 그릇, 병, 솥, 향로 등 다양한 물건이 있다. 소, 돼지, 개 같은 동물도 있다. 이들은 녹유만이 아니라 황유로도 만들어졌다.

 의덕태자묘 석곽
 의덕태자묘 석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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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옥기도 다양하다. 금으로 만든 말장식 소품이 있다. 금도금을 한 문고리도 보인다. 금속으로 만든 문관과 무관이 있는데, 이들은 시신을 지키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무덤에서 많이 나오는 동경도 있다. 문양을 보니 상서로운 동물과 포도문이 양각되어 있다. 옥으로 만든 패물이 있는데, 용이나 상서로운 짐승을 새겨 넣었다. 옥제품은 영태공주묘에서 출토되었다.

이곳에는 또한 의덕태자묘 주실에 있는 석곽을 재현해 놓았다. 석곽 벽에는 선각으로 꽃밭의 사녀도가 그려져 있다. 그림보다도 더 정교하게 표현했다. 의덕태자묘 벽화로는 부채를 든 사녀도와 궐루도가 특이하다. 궐루는 건릉의 궐루처럼 아래는 벽돌로, 위는 누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덕태자묘를 가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박물관의 유물로 대리만족한다.


#영태공주묘#건릉 지궁#건릉박물관#영태공주 묘지#궁녀도(사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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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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